[포르투갈 · 리스본 5] 성당보다 무화과 하나가 더 오래 남았다
처음 먹어본 열매 하나.
열매 쪽이다.
성 매표소에서 돌아서서 언덕을 내려오면 중턱에 성당이 하나 있다. 리스본 대성당이다.
그날 유일하게 안까지 들어간 데가 거기였다.
성당이 요새처럼 생겼다

성당 앞에 서서 올려다봤는데 성당 같지가 않았다. 네모난 탑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 사이에 둥근 창이 하나 박혀 있다. 벽은 두껍고 창은 좁다.
탑 꼭대기에 톱니처럼 생긴 턱이 둘려 있다. 성벽 위에 병사가 몸을 숨기는 그 턱이다. 어제 성벽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이 성당 꼭대기에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성당은 십이 세기에 도시를 되찾은 직후에 지어졌고, 한동안 실제로 방어 시설을 겸했다. 기도하는 곳이면서 버티는 곳이었다.
지진을 몇 번 맞고도 서 있다. 1755년 대지진 때 리스본 아래쪽이 통째로 무너졌는데 이 건물은 남았다.
표를 안 받았다

문이 열려 있었고 사람들이 그냥 들어가고 나왔다. 매표소도 없고 줄도 없었다.
한 시간 전에는 표를 사야 하는 문 앞에서 돌아섰는데 여기는 그냥 들어가면 됐다. 나중에 찾아보니 본당은 무료고 회랑과 보물관만 따로 표를 받는다.
안에 들어가서 뒤를 돌아봤다. 열린 문틀이 밖을 네모나게 오려놨다. 어두운 데서 보니 바깥이 지나치게 밝았다. 나무 한 그루, 흰 건물, 사람들, 파란 하늘이 문 크기만큼만 보였다.
전날은 가림막에 뚫린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는데, 이번에는 안에서 밖을 봤다.
안은 어둡고 한 군데만 금색이었다

안은 어두웠다. 굵은 돌기둥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안쪽만 노랗게 밝았다. 기둥이 굵은 건 창이 작기 때문이고, 창이 작은 건 벽이 두꺼워야 했기 때문이다.
장식이 거의 없었다. 돌은 회색이고 표면은 오래 닳아 있었다. 포르투에서 본 성당들과 정반대다. 거기는 벽 안쪽 전체가 금이었는데 여기는 벽이 그냥 돌이었다.
정면에서 봤던 그 장미창을 안에서 다시 봤다. 밖에서는 벽에 박힌 원반 같았는데 안에서 보니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었다.

옆으로 난 방 하나만 달랐다. 벽은 하얗게 발라져 있고 안쪽 제단만 통째로 금박이었다. 금색 기둥이 비틀리며 위로 올라가고 그 사이에 조각이 빽빽하게 박혀 있다.

같은 건물 안에서 시대가 갈렸다. 몸통은 십이 세기 돌이고 곁방은 그보다 한참 뒤에 붙인 금이다.
본당만 볼 거면 표가 필요 없다. 문 열려 있는 시간에 그냥 들어가면 된다. 일요일은 미사가 있어 관람이 제한된다.
회랑은 유료인데 그 아래가 발굴 현장이라 다른 성당 회랑과는 성격이 다르다. 로마 시대 유적 위에 이슬람 시대 건물이 있고 그 위에 성당이 서 있는 구조를 한 자리에서 본다. 유적에 관심이 있으면 이쪽이 본당보다 볼 게 많다.
트램 28번이 성당 정면 바로 앞을 지난다. 노란 트램과 성당이 같이 나오는 그 사진이 여기서 찍힌다.
벽이 온통 뾰족한 집이 있었다

성당에서 강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이상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벽 전체가 뾰족한 돌로 덮여 있다. 사각뿔을 수백 개 박아놓은 것처럼 생겼는데 햇빛이 비스듬히 드니까 벽 전체가 격자로 반짝였다.
벽에 흑백 사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안경 쓴 노인의 얼굴과 이름 하나. 그때는 누군지 몰랐다.
포르투갈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한 명뿐이고 그 사람 이름이었다. 이 건물이 그 작가의 재단이다. 나중에 알고 나서 사진을 다시 봤다.
그 옆 가게 간판에는 또 정어리가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소녀를 크게 그려놓고 그 아래 가게 이름을 적었다. 이 도시는 정어리로 간판을 만든다.

조금 더 가니 문 하나에만 조각이 몰려 있는 성당이 나왔다. 벽은 밋밋한데 입구 둘레만 위아래로 조각이 빽빽하다. 밧줄과 잎사귀와 사람 얼굴이 뒤엉켜 있었다.

대지진 때 건물은 무너졌는데 이 문만 살아남아서 나중에 뒤에 새 건물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문과 벽이 따로 논다.
건물 앞에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아래에 작가의 유해가 있다. 나무 옆 돌에 그의 소설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면 들어가 볼 만하다. 안 읽었어도 벽은 볼 만하다. 대성당에서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이라 일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지나간다.
광장은 강 쪽으로만 열려 있었다

골목이 끝나면서 갑자기 넓어졌다.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노란 건물이 세 면을 두르고 있고 한쪽 끝에 개선문이 서 있다. 나머지 한 면은 아무것도 없이 강이다. 광장이 강 쪽으로만 열려 있다.
여기가 원래 왕궁 자리였다. 1755년 대지진과 뒤이은 해일에 통째로 쓸려나갔고, 복구하면서 왕궁을 다시 짓는 대신 광장을 만들었다. 도시가 무너진 자리를 빈 공간으로 남겨둔 것이다.
가운데에 청동 기마상이 서 있었다. 대지진 때의 왕이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운 쪽이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광장 끝은 계단이었다. 돌계단이 물속으로 그대로 내려가고 그 양옆에 돌기둥 두 개가 서 있다. 배가 닿던 자리다.

사람들이 계단 끝에 일렬로 서서 물을 보고 있었다. 앉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다. 강이 여기서는 바다처럼 넓어서 건너편이 아득하게 보인다.
강가 계단은 카이스 다스 콜루나스라고 부른다. 돌계단이 물로 내려가고 양옆에 기둥 두 개가 서 있다. 해 질 무렵에 사람이 제일 많다.
광장 안쪽 아치문 위에 전망대가 있다. 유료지만 높지 않아서 금방 올라간다. 광장과 강을 위에서 한 장에 담고 싶으면 여기가 답이다.
봉지에 초록색 열매가 들어 있었다

광장을 나와 강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가 동네 가게에 들어갔다. 냉장 진열장이 있는 작은 가게였고 그 안에 초록색 열매가 있었다. 사과도 아니고 자두도 아니었다.
주인아저씨가 달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한 봉지를 샀다.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안 남았다. 값을 물어본 기억도 없으니 아마 망설일 만한 액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봉지를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한 장 찍었다. 비닐 안에 여섯 개쯤 들어 있었다.
봉지째 사서 골목에서 하나 꺼냈다. 손에 쥐니 물렁했다. 껍질이 얇고 꼭지 쪽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초록인데 안이 붉었다. 붉은 알갱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그게 전부 단맛이었다. 설탕을 바른 단맛이 아니라 과일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단맛 같았다.
무화과였다. 이름은 그날 알았다. 스물 몇 해를 살면서 무화과를 한 번도 안 먹어봤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골목 벽에 새 한 마리가 검은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부리가 길고 목이 꺾여 있다. 노란 벽에 선 몇 개로만 그렸는데 새라는 게 바로 보였다.

고양이는 쳐다도 안 봤다

차 옆에서 주황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나왔다. 앞발을 길게 뻗고 등을 낮추더니 기지개를 켰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먹을 걸 달라고 온 줄 알았다. 봉지에서 무화과를 꺼내 내밀었다.

쳐다도 안 봤다. 코를 대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고양이는 과일을 안 먹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때 찍은 영상이 남아 있다. 오십칠 초 동안 고양이는 다가오고, 발치를 돌고, 다리에 몸을 비비고, 무화과 옆을 그냥 지나간다.
*리스본 알파마 골목 — 고양이는 끝까지 무화과 쪽을 안 봤다*
이 사진이 그날의 요약이다. 초점은 반으로 베어 문 무화과에 맞아 있고 고양이는 뒤에서 등을 돌린 채 흐릿하다. 나는 무화과를 들고 있었고 고양이는 딴 데를 보고 있었다.
팔백 년과 십 초
그날 본 것 중에 제일 오래된 건 성당이고 제일 짧게 지나간 건 무화과다. 팔백 년과 십 초쯤 되는 차이다.
그런데 지금 그날을 떠올리면 무화과가 먼저 나온다. 초록 껍질을 물었을 때 안이 붉었던 것, 생각보다 훨씬 달았던 것, 그게 무화과라는 걸 그날 알았다는 것.
성당은 사진을 봐야 기억난다. 무화과는 사진 없이도 기억난다.
여행에서 뭐가 남을지는 고를 수 없는 것 같다. 큰 걸 보러 갔는데 작은 게 남는다. 그날 나는 팔백 년 된 성당에 들어갔다 나와서, 처음 보는 과일 하나를 먹고, 그걸 안 먹는 고양이를 만났다.
이 하루를 세 단어로 줄이면 대성당, 고양이, 무화과다.
그때도 셋을 나란히 놨다. 팔백 년 된 성당과 길고양이 한 마리와 과일 하나를 같은 줄에 놓고 그게 그날이라고 했다. 지금 다시 봐도 순서를 바꿀 생각이 안 든다.
무화과를 산 그 골목 전후로 강을 따라 서쪽으로 계속 걸었는데, 표지판 하나가 그날 걸음을 숫자로 만들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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