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6] 트램 대신 강을 따라 걸었다

리스본 여행기 · 6편
표지판 하나가 그날 걸음을
숫자로 만들어놨다.
2.8킬로미터 왔고
4.1킬로미터 남았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걸으면 벨렝이 나온다. 트램도 있고 버스도 있고 기차도 있다.

그날은 걸었다. 앞 편에서 무화과를 산 골목도 이 길 중간에 있다.

광장 끝에서 물이 시작됐다

강물이 닿는 모래밭에 사람들이 서 있고 개 한 마리가 걸어간다
광장 끝에서 모래가 시작된다. 강이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

광장 서쪽 끝에 모래가 있었다. 강인데 물가에 모래밭이 깔려 있고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서 있었다. 개 한 마리가 그 위를 걸어 다녔다.

강이라기보다 바다에 가깝다. 물이 얕게 밀려왔다 나가고 파도라고 부를 만한 게 생긴다.

조금 더 가니 계단이 넓어졌다. 강 쪽으로 낮은 돌계단이 층층이 깔려 있고 사람들이 아무 데나 앉아 있었다. 앉는 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고 강변 전체를 계단으로 만들어놨다.

*돌계단이 물속으로 그대로 내려간다*

강가 넓은 돌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고 앞쪽에 비둘기가 걸어다닌다
앉는 자리를 따로 만들지 않고 강변 전체를 계단으로 만들어놨다.
히베이라 다스 나우스
Ribeira das Naus
지금도 그대로다. 해 질 무렵에 사람이 제일 많다
가격
무료
주소
Av. Ribeira das Naus, 1200-450 Lisboa
코메르시우 광장 서쪽 강변을 계단식으로 정비한 산책 구간. 물가에 모래밭이 있고 계단 어디에나 앉을 수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카이스 두 소드레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걸어서 십오 분쯤 걸린다.

그늘이 거의 없으니 한낮은 피하는 게 낫다. 저녁에는 계단에 앉아 강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리스본에서 돈을 안 쓰고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자리다.

다리가 보였다

물속에 선 돌기둥 두 개 너머 멀리 붉은 현수교와 언덕 위 흰 조각상이 보인다
돌기둥 너머로 다리가 보였다. 아직 저만큼 멀었다.

물가 기둥 옆에 서서 서쪽을 봤더니 다리가 보였다. 붉은 현수교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고 건너편 언덕 위에 흰 상이 하나 서 있었다.

그때는 이름을 몰랐다. 나중에 보니 4월 25일 다리고, 건너편 언덕 위의 상은 강 이쪽을 향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이다.

멀어 보였다. 그런데 멀어 보인다는 건 걸어서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목표가 눈에 보이면 걷는 게 쉬워진다. 반대로 아무리 걸어도 크기가 안 변하면 그때부터 지친다. 그날은 둘 다 겪었다.

배는 계속 떠났다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 초록색 유리 통로와 개찰구가 있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초록 통로로 들어간다.

광장 옆에 페리 터미널이 있었다. 콘크리트 지붕 아래로 초록색 유리 통로가 물 쪽으로 뻗어 있고 그 앞에 개찰구가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카드를 찍고 통로로 들어갔다.

안내판에 노선이 주황색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강 건너 여러 마을로 선이 뻗어 있다. 이 강이 워낙 넓어서 건너편은 그냥 다른 도시다.

리스본 지도 안내판에 주황색 선으로 강 건너로 가는 배 노선이 그려져 있다
주황색 선이 배 노선이다. 강 건너는 그냥 다른 도시다.

배는 안 탔다. 노선도만 한참 봤다. 리스본 사람들에게 이 배는 관광이 아니라 출퇴근 수단이다.

시장 안에 식당이 들어와 있었다

흰 돔이 얹힌 시장 건물 앞으로 넓은 도로와 노란 택시가 지나간다
흰 돔이 얹힌 시장. 안에 식당이 들어와 있다.
메르카두 다 히베이라
Mercado da Ribeira (Time Out Market Lisboa)
지금도 운영한다. 점심·저녁 시간에는 자리 잡기가 어렵다
가격
입장 무료 · 음식값은 각 매장별
주소
Av. 24 de Julho 49, 1200-479 Lisboa
백 년 넘은 청과시장 건물의 절반을 식당가로 바꿔놨다. 리스본 유명 식당들의 작은 매장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한참 걸으니 흰 돔이 얹힌 큰 건물이 나왔다. 옛날 시장 건물인데 정면에 붉은 배너가 걸려 있었다.

시장 절반을 걷어내고 식당들을 한꺼번에 들여놓은 곳이다. 문을 연 지 일 년쯤 된 시점이었고, 지금은 리스본에서 제일 붐비는 데 중 하나가 됐다.

그때는 안 들어갔다. 배가 안 고팠고 사람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여기 들어가 봤어야 했는데, 안 들어간 덕분에 다리까지 갈 시간이 남았다.

한쪽은 여전히 재래시장이고 다른 쪽이 식당가다. 아침에 가면 시장 쪽이 살아 있고, 저녁에 가면 식당 쪽만 붐빈다.

여러 가게 음식을 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어서 혼자 여행할 때 편하다. 자리를 먼저 잡고 음식을 사러 가는 게 순서다.

물 한 병으로 버텼다

손에 든 일 점 오 리터짜리 생수병 뒤로 주차된 차와 길이 이어진다
1.5리터 한 병. 그늘이 없는 구간을 이걸로 버텼다.

가게에서 생수를 한 병 샀다. 일 점 오 리터짜리다. 팔월의 리스본에서 낮에 강변을 걷는데 이보다 작은 걸 사면 금방 없어진다.

배낭에 넣지 않고 손에 들고 걸었다. 어차피 계속 마실 거였다.

그늘이 없었다. 강변 산책로는 시원해 보이지만 나무가 거의 없다. 걷다가 그늘이 나오면 무조건 앉았다.

관광 구간이 끝나고 항구가 나왔다

도로와 철로 너머로 항만 크레인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에 붉은 다리가 보인다
관광 구간이 끝나고 크레인이 나왔다. 여기서부터 관광객이 안 보였다.

어느 지점부터 풍경이 바뀌었다. 카페와 산책로가 끊기고 화물 크레인이 나왔다. 도로 옆에 철로가 붙어 있고 그 너머는 컨테이너 야적장이다.

그 뒤로 다리가 서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커졌다.

여기서부터는 관광객이 안 보였다. 리스본 강변은 통째로 산책로가 아니다. 예쁜 구간이 끝나면 일하는 항구가 나온다.

지하보도에 그림이 있었다

지하보도 양쪽 벽에 알록달록한 그림이 길게 이어져 있다
도로와 철로를 건너려면 여기로 내려가야 했다. 양쪽 벽이 전부 그림이었다.

도로와 철로를 건너려면 지하보도로 내려가야 했다. 계단을 내려가니 양쪽 벽이 전부 그림이었다.

벽에 그려진 건 이 동네였다. 색색으로 칠한 집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에 붉은 다리가 그려져 있다. 지금 머리 위에 있는 그 다리다.

지하보도 벽에 그려진 알록달록한 집들 앞에서 찍은 셀카
벽에 그려진 건 이 동네였다. 한참 서서 봤다.

지하보도는 대개 빨리 지나가는 데다. 여기는 안 그랬다. 한참 서서 벽을 봤다.

표지판이 숫자를 알려줬다

강변 표지판에 벨렝 탑까지 4.1킬로미터 카이스 두 소드레까지 2.8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벨렝 탑까지 4.1, 왔던 쪽으로 2.8. 트램을 안 탄 대가가 이 숫자다.

지하보도에서 올라오니 표지판이 서 있었다. 위쪽에 붉은 띠 두 개가 붙어 있고 각각 지명과 숫자가 적혀 있었다.

벨렝 탑 4.1킬로미터. 카이스 두 소드레 2.8킬로미터.

그 아래 큰 글씨로 현재 위치가 적혀 있었다. 알칸타라. 더 아래에는 강변 산책로 전체가 붉은 선 하나로 그려져 있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동그라미로 표시돼 있었다.

그날 걸음이 여기서 숫자가 됐다. 시장을 지나 여기까지 2.8킬로미터를 걸었고, 벨렝까지는 그보다 더 남았다. 둘을 합치면 칠 킬로미터에 조금 못 미친다.

트램을 안 타기로 한 대가가 이 숫자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니까 도시가 얼마나 긴지가 몸으로 들어왔다.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훑으면 한 뼘인 거리가 실제로는 두 시간이다.

다리 밑은 정박지였다

요트가 빽빽하게 정박한 항구 뒤로 붉은 현수교가 가로지른다
물이 안쪽으로 들어온 정박지. 요트 위로 다리가 지나간다.

표지판을 지나니 물이 안쪽으로 들어온 항구가 나왔다. 요트가 빽빽하게 매여 있고 그 뒤로 다리가 지나간다.

입구에 종이배가 하나 놓여 있었다. 사람 키보다 큰 종이배 모양 조형물이고 옆면에 항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카 드 산투 아마루.

커다란 종이배 모양 조형물에 도카 드 산투 아마루라고 적혀 있다
입구에 사람 키보다 큰 종이배가 놓여 있었다.
도카 드 산투 아마루
Doca de Santo Amaro
지금도 식당가로 운영한다. 다리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자리로 유명하다
가격
무료
주소
Doca de Santo Amaro, 1350-353 Lisboa
4월 25일 다리 바로 아래 요트 정박지. 옛 창고를 개조한 식당과 바가 물가를 따라 줄지어 있다

정박지 안쪽은 식당가였다. 옛날 창고 건물을 옆으로 길게 개조해서 식당과 바가 줄지어 들어가 있고 앞에 파라솔이 펴져 있다. 낮이라 한산했다.

다리 아래 창고를 개조한 식당들이 늘어서 있고 파라솔이 펴져 있다
창고를 길게 개조한 식당가. 낮이라 한산했다.

여기 있는 요트 중 하나에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대서양을 혼자 건넌 배라고 적혀 있었다. 정박지에 매인 배들이 다 놀이용은 아니다.

다리를 사진에 담기 제일 좋은 데다. 교각 아래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어서 올려다보는 각도가 나온다.

강변을 걸어서 오면 알칸타라 지하보도를 지나야 한다. 지하보도 벽화도 볼 만하니 표지판을 따라 그쪽으로 오면 된다. 걷기 싫으면 15번 트램이 근처까지 온다.

위에서는 계속 차가 지나갔다

붉은 다리 교각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본 철골 구조
교각 바로 아래. 위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계속 났다.

교각 바로 아래까지 갔다. 올려다보니 붉은 철골이 격자로 얽혀 있고 그 사이로 하늘이 조각조각 보였다.

소리가 계속 났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위에서 이어졌다. 다리를 밑에서 보면 풍경인데 소리는 도로다.

다리 밑을 지나 반대쪽으로 나왔다. 거기서 보니 다리 전체가 한 장에 들어왔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현수교 전체가 아래쪽 강변에서 보인다
다리 밑을 지나 반대쪽으로 나오니 전체가 한 장에 들어왔다.

아침에 광장에서 점으로 보이던 게 머리 위에 있었다. 두 시간 걸려서 그렇게 됐다.

붉은 다리를 배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찍은 셀카
아침에 점으로 보이던 게 머리 위에 있었다. 두 시간 걸렸다.

아직 사 점 일 킬로미터

다리를 지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넓은 강변 산책로에서 찍은 셀카
여기서부터 다시 서쪽이다. 옆으로 화물열차가 서 있었다.

다리를 지나고 나니 길이 다시 넓어졌다. 강 쪽으로 산책로가 곧게 뻗어 있고 그 옆에 자전거 도로가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가 표지판이 말한 4.1킬로미터다. 목표였던 다리를 지났는데 아직 절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목표를 하나 지나면 다음 목표까지의 거리가 새로 보인다. 걷는 여행이 대체로 그렇다.

표지판이 알려준 중간 지점

그날 걸은 거리는 표지판 하나가 알려줬다.

숫자를 보기 전까지는 그냥 오래 걸었다고만 생각했다. 2.8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니 그게 얼마만큼인지가 정해졌다. 그리고 4.1이 남았다는 것도 같이 정해졌다.

여행에서 거리를 재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모르고 걸으면 지치는 시점이 늦게 온다. 그런데 그날은 숫자를 본 게 나쁘지 않았다. 남은 게 얼마인지 알고 나니 물을 언제 마실지, 어디서 쉴지가 정해졌다.

트램을 탔으면 이 표지판을 못 봤다. 그건 확실하다.

남은 4.1킬로미터 끝에 뭐가 있었는지.

리스본 · 8편 중 6편
#리스본 #리스본여행 #리스본자유여행 #포르투갈 #4월25일다리 #알칸타라 #도카드산투아마루 #카이스두소드레 #타임아웃마켓 #메르카두다히베이라 #히베이라다스나우스 #타구스강 #리스본강변 #리스본도보 #리스본산책 #리스본가볼만한곳 #리스본여행코스 #리스본무료 #벨렝 #배낭여행 #유럽여행 #포르투갈여행 #포르투갈자유여행 #포르투갈배낭여행 #리스본걷기 #리스본여행후기 #리스본여행기 #혼자여행 #세계일주 #90일세계일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90일간의 세계여행 - 배낭 메고 23개국

[중국 · 홍콩 3] 피크트램 줄 얼마나 길까, 한 시간 서보고 내린 결론

[말레이시아 · 쿠알라룸푸르 3] "팬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말레이시아에서 낯선 사람 차 타고 따라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