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4] 성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앞에서 돌아섰다.
들어간 데가 하나도 없다.
바이샤에서 언덕을 올려다보면 꼭대기에 성벽이 보인다. 상 조르제 성이다. 리스본에 오면 다들 거기부터 간다.
나도 그쪽으로 걸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성벽 안으로는 안 들어갔다.
계단부터였다

성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사람 두엇 지날 폭으로 계단이 나 있고 그게 언덕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계단 아래에 자전거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이 경사에서 저걸 타고 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계단마다 가운데에 파란 쇠난간이 박혀 있었다.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세운 것이다. 그만큼 폭이 좁다.

벽이 먼저 있었다

올라가다 보니 양쪽 벽이 전부 낙서였다. 아래쪽만 그런 게 아니라 손이 닿는 높이까지 빈 데가 없다. 창문 쇠창살 옆에도 글자가 있고 그 아래 벽돌에도 있다.
그러다 벽 하나가 통째로 그림인 데가 나왔다. 낙서를 겹쳐 쓴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한 사람이 벽 전체를 하나로 그린 그림이었다.

한쪽 끝에서 시작해 다른 쪽 끝까지 도형이 이어진다. 눈알, 벽돌 무늬, 물방울, 달러 표시. 오른쪽 끝은 민트색 바탕에 검은 토끼 머리가 크게 그려져 있고 옆에 알파벳 세 글자가 박혀 있다.
아래쪽 구석에 작게 서명이 있었다. 연도 두 자리와 도시 이름 두 글자. 그러니까 이 벽은 내가 보기 한 해 전에 그려진 것이다.
이 벽 앞에서만 사진을 세 장 찍었다.

벽에 연도가 적혀 있었다

계단이 꺾이는 자리에서 담벼락 너머로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주황 지붕이 아래로 쭉 깔리고 그 사이에 큰 교회 하나가 솟아 있다.
전망은 그냥 거기 있었다. 표를 사지도 않았고 줄을 서지도 않았다.
담벼락에는 야구모자를 쓴 초록색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손에 스프레이 캔을 들고 있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벽에 그려놨다.
그 옆에 노란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끝자리가 2013이다. 이름도 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사람이 초록색으로 또 다른 날짜를 겹쳐 썼다.
누가 언제 왔다고 적으면 다음 사람이 그 위에 자기 날짜를 겹쳐 쓴다. 성벽은 육백 년을 그대로 서 있는데 그 아래 담벼락은 두 해 만에 두 번 덮였다.
문을 지나니 또 문이 있었다

계단이 끝나니 돌로 된 아치 통로가 나왔다. 성벽 아래를 뚫어놓은 길이다. 통로 안은 그늘이고 바닥은 조약돌이다.
조금 더 가니 사람이 많아졌다. 문 위에 방패 모양 조각이 붙어 있었다. 여기가 성 정문이다.

문 안쪽은 소나무 그늘이었다. 넓적한 돌을 깐 길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그 위로 소나무 가지가 낮게 덮여 있다. 사람들이 저 앞 밝은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문을 지났으니 성에 들어온 줄 알았다. 아니었다.
매표소 화살표에서 멈췄다

길 끝에 노란 건물이 있었다. 벽에 금속 글자로 성 이름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 화살표가 하나 그려져 있다. 화살표 밑에는 두 줄로 적혀 있었다. 위는 포르투갈어, 아래는 영어. 매표소.
초록색 문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모자를 쓴 사람, 배낭을 멘 사람. 저 문이 진짜 입구였다.
그러니까 아까 그 아치문은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었다. 표를 사는 데까지 가는 문이었다.
나는 거기서 돌아섰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값이다. 입장료가 은근히 비쌌다. 유럽에서 성 하나 들어가는 값이 그 정도구나 싶은 액수였고, 그 돈이면 다른 데 쓰는 게 낫겠다는 계산이 바로 섰다.
다른 하나는 기대치다. 저 안이 그 값을 낼 만큼 감동적일 것 같지가 않았다. 십 분 전에 담벼락 옆에서 이미 도시를 내려다봤고, 성벽 위에 올라간다고 저것보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둘을 합치면 결론이 하나다. 아깝다.
돌아서서 성벽 바깥을 따라 걸었다. 벽 가운데에 노란 테를 두른 작은 사당이 박혀 있었다. 아치 안에 타일 그림이 들어 있고 그 아래 좁은 턱에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었다. 옆에는 엽서를 걸어놓은 노점이 하나 있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표를 샀고, 성벽 밖에 있는 사람들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벽 하나를 두고 양쪽 다 사람이 있었다.
정문에서 매표소까지 구간은 그냥 걸어 들어가면 된다. 소나무 그늘 길과 성벽 밖 골목이 여기 해당한다. 성벽 위 산책로와 안쪽 정원, 전망 테라스가 유료 구역이다.
전망만 목적이라면 언덕을 오르는 길목의 담벼락이나 근처 전망대에서도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성벽 위에서만 보이는 각도가 따로 있으니 그건 값을 치를지 말지 정하기 나름이다.
로마 극장은 철망 너머에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길가에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안에 골함석 지붕이 낮게 덮여 있고 지붕 아래는 어두웠다.
울타리에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검은 판에 흰 글씨와 빨간 글씨. 포르투갈어 아래 영어가 같은 내용으로 붙어 있었다. 리스본 로마 극장.
위쪽 길로 조금 더 올라가니 안이 내려다보였다. 땅이 사각형으로 파여 있고 그 안에 낮은 돌기둥이 줄줄이 서 있다. 사람 무릎 높이쯤 되는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극장이 통째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바닥만 남아 있었다. 그 위로 천 년 넘게 집이 계속 지어졌고 지금 남은 건 파낸 자리다.
발굴 현장은 검은 가림막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가림막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 여럿이 옆으로 이어지는데, 눈은 부릅뜨고 볼은 동그랗게 발갛다. 고대 극장에서 쓰던 가면 같은 얼굴이다.

한가운데 얼굴은 입이 뻥 뚫려 있었다. 가림막에 난 가로로 긴 창을 입 자리에 맞춰 그려놓은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려면 그 입으로 봐야 한다.
가려놓은 판에 얼굴을 그리고 그 입으로 안을 보게 만들었다. 유적은 못 봤는데 가림막이 기억에 남았다.
내가 갔을 때는 철망과 가림막 너머로만 보였다. 지금은 길 건너편 건물이 전시관이라 유적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 사이라 일부러 찾지 않아도 지나치게 된다. 나는 철망만 보고 그냥 지나갔다가 나중에 입구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다.
감옥이었던 건물을 지나쳤다

더 내려오니 모퉁이에 흰 건물이 하나 있었다. 벽에 검은 글씨가 두 줄로 붙어 있었다. 박물관 이름과 그 아래 다섯 글자. 저항과 자유.
옆에 붙은 로고가 눈에 걸렸다. 검은 사각형 안에 굵은 세로줄이 여러 개 그어져 있다. 창살이다. 박물관 로고에 창살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기가 감옥이었다.
포르투갈은 이십 세기에 사십 년 넘게 독재를 겪었고, 이 건물은 그 시절 정치범을 가둬둔 곳이다. 감옥을 헐지 않고 박물관으로 바꿔놨다. 그것도 내가 지나간 그해에 문을 연 참이었다.
건물 앞을 그냥 지나쳤다. 벽에 붙은 글자만 읽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때는 이게 어떤 건물인지도 몰랐다.
대성당 바로 옆이라 성당을 보러 가면 자연히 지나간다. 건물이 작아서 한 시간 반이면 다 본다.
리스본에서 파두와 타일과 에그타르트만 보고 가면 이 나라가 사십 년 독재를 겪었다는 걸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그 반대쪽을 보여주는 곳이 여기다.
트램이 옆으로 지나갔다

언덕 아래쪽 골목에서 노란 트램이 정면으로 왔다. 28번이다. 길이 좁아서 트램이 지나갈 때는 사람이 벽 쪽으로 붙어야 한다.
앞에 가던 사람이 배낭을 멘 채 옆으로 비켰다. 나도 비켰다.
전날 정류장에서 저 트램을 안 타기로 했는데, 안 타고 걸으니까 트램이 나를 지나갔다. 줄을 서면 안에서 밖을 보고, 걸으면 밖에서 안을 본다.
표를 사고 들어간 데가 하나도 없다
그날 리스본에서 표를 사고 들어간 데가 하나도 없다.
성은 매표소 앞에서 돌아섰고, 로마 극장은 철망 너머로 봤고, 감옥이었던 박물관은 벽에 붙은 글자만 읽고 지나쳤다. 셋 다 값을 받는 곳이었고 셋 다 밖에서 봤다.
대신 그날 제일 오래 본 건 담벼락이었다. 벽화 하나 앞에서 사진을 세 장 찍었다. 누가 적어놓은 연도와 그 위에 겹쳐 쓴 다른 연도까지 읽었다. 그건 값이 없었다.
값이 없는 걸 오래 봤다고 해서 값을 치른 사람보다 잘 본 건 아니다. 성벽 위에서만 보이는 게 분명히 있다. 다만 그날 나는 그쪽을 안 골랐고, 안 고른 대신 벽을 봤다.
그날 유일하게 안까지 들어간 데가 거기였는데, 거기는 표를 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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