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3] 트램 28번 줄을 보고 걷기로 했다
걷는 시간보다 길었다.
아무것도 안 탔다.
전망대에서 언덕을 내려오니 상점이 시작됐다. 여기부터가 시아두다.
시아두는 쇼핑거리였다

시아두는 리스본의 쇼핑거리다. 광장에 사람이 가득했고 위로 전차선이 몇 겹으로 지나갔다. 바닥에는 선로가 깔려 있고 그 위로 사람들이 그냥 걸어 다녔다.
오래된 건물 일층에 브랜드 매장이 들어가 있었다. 위층은 발코니가 달린 옛날 건물 그대로인데 아래층만 유리로 바뀌어 있다.

그 사이에 타일로 덮인 가게가 하나 있었다. 벽 전체가 파란 무늬 타일이고 문만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안이 어두워서 뭘 파는지는 안 보였다.

정어리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진열창에 커다란 정어리 그림이 세워져 있는 가게가 있었다. 서핑보드처럼 생긴 판에 정어리 한 마리를 그려놓고 그 안을 무늬로 채웠다.
정어리 통조림을 파는 가게였다. 포스터에 숫자가 크게 적혀 있었는데, 통조림 종류가 그만큼 된다는 뜻 같았다. 생선 통조림 하나를 이렇게까지 상품으로 만들어놓은 건 처음 봤다.
광장마다 기둥이 하나씩 있었다

시아두 아래쪽에 광장이 하나 있고 가운데에 돌기둥이 서 있었다. 꼭대기에 청동 인물상이 있고 기단 둘레에 작은 조각이 여럿 붙어 있었다. 카몽이스 광장이다.
기단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관광객도 있고 그냥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리스본의 광장은 대개 이렇게 생겼다. 가운데 기둥이 하나 있고 그 아래가 앉는 자리가 된다.
엘리베이터에도 줄이 있었다

바이샤로 내려오니 건물 사이에 철탑이 하나 서 있었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다. 언덕 아래와 위를 잇는 승강기인데 생긴 건 영락없이 탑이다.
층마다 뾰족한 아치 장식이 붙어 있고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다. 한쪽 면에는 비계가 세워져 있었다. 보수 중이었던 모양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리벳이 다 보인다. 철판을 겹쳐 못으로 박아 만들었다. 백 년 넘은 물건인데 아직 사람을 실어 나른다.

계단과 건널목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타려는 사람들이었다. 이 승강기가 이어주는 위쪽 언덕은 걸어서도 올라갈 수 있다.
승강기를 안 타고도 위쪽 전망대 옆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다. 카르무 광장 쪽에서 접근하면 언덕을 오르긴 해도 줄은 없다. 승강기를 꼭 타보고 싶은 게 아니면 걸어 올라가는 쪽이 빠르다.
바닥이 물결이었다

바이샤 거리는 격자로 곧게 뻗어 있다. 리스본이 큰 지진으로 무너진 뒤에 다시 계획해서 지은 구역이라 골목이 구불구불하지 않다.
특이한 건 바닥이었다. 검은 돌과 흰 돌을 작게 잘라서 무늬를 만들어놨다. 손바닥만 한 돌을 하나하나 박은 것이고, 그게 거리 전체에 깔려 있다.
문제는 이 바닥이 미끄럽다는 것이다. 오래 밟혀서 표면이 반들반들해졌다. 이 도시에서 신발이 중요한 이유가 언덕만은 아니었다.
호시우 광장은 바닥이 흔들려 보였다

호시우 광장은 그 물결무늬가 광장 전체에 깔려 있다. 흰 돌과 검은 돌이 굽이치는 모양으로 배치돼 있어서, 오래 보고 있으면 바닥이 정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가운데에 높은 기둥이 서 있고 꼭대기에 사람 형상이 있다. 광장 한쪽 끝에는 기둥이 줄지어 선 극장 건물이 있었다.
광장에 분수가 두 개 있었다. 청동으로 만든 층층 분수인데 물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여름 한낮이라 분수 가까이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분수와 극장과 물결 바닥이 한 장에 들어간다. 그 자리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는데 지금 보면 거의 똑같은 사진이다. 그때는 각도를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눌렀던 모양이다.

옆 광장에는 말이 있었다

호시우 바로 옆이 피게이라 광장이다. 여기는 기둥 대신 기마상이 있었다. 넓고 텅 빈 광장 가운데에 말 탄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기단에 짧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A DOM JOÃO I — A CIDADE DE LISBOA`. 동 주앙 1세에게, 리스본시가. 그 아래에 로마 숫자로 연도가 있었다.
리스본 사람들이 이 왕에게 이걸 세워준 게 이십 세기 후반이었다. 십사 세기 사람인데 그렇게 한참 뒤에 광장 한가운데를 내준 것이다.

바로 옆 피게이라 광장까지 걸어서 이 분이다. 두 광장 사이에 트램과 버스가 다 지난다. 어디로 가든 이 두 광장을 한 번은 지나게 된다.
줄이 두 갈래로 서 있었다

피게이라에서 조금 더 가니 트램 정류장이 있었다. 28번이 출발하는 자리다.
리스본에서 제일 유명한 노선이다. 노란 옛날 트램이 좁은 언덕길을 비집고 올라가는 그 사진, 리스본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그 장면이 이 노선이다.
정류장 앞에 줄이 서 있었다. 인도 쪽으로 한 줄, 건널목 쪽으로 또 한 줄.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사진에 찍힌 것만 오십 명이 넘는다. 전광판에 노선 번호가 떠 있고 다들 그쪽을 보고 있었다.
정류장 옆에는 흰 툭툭이 여러 대 서 있었다. 삼륜 관광차인데 트램 줄이 길어지면 이쪽으로 옮겨 타는 사람이 생긴다. 줄 자체가 하나의 시장을 만들고 있었다.
걷기로 했다
트램 한 대에 사람이 몇 명 타는지를 생각해봤다. 옛날 차량이라 크지 않다. 앉는 자리가 스무 남짓이고 서서 타는 자리를 다 채워도 오십 명이 안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저 줄이 한 번에 다 타지 못한다. 한 대를 보내고 다음 대를 기다려야 하고, 배차 간격이 있으니 그만큼 서 있어야 한다. 그렇게 타고 나면 도착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트램이 가는 구간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언덕이라 힘들 뿐이지 못 걸을 길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그날 리스본에서 아무것도 안 탔다. 산타 주스타도 안 탔고 푸니쿨라도 안 탔고 트램도 안 탔다. 셋 다 줄이 있었고 셋 다 걸어서 대신할 수 있었다.
나중에 계산해보면 그게 손해는 아니었다. 줄 서는 시간이 걷는 시간보다 길었기 때문이다.
기점에서 타야 앉을 수 있는데 그래서 기점에 줄이 길다. 중간 정류장에서는 사람이 꽉 차서 못 타고 보내는 일이 흔하다.
붐비는 시간을 피하려면 이른 아침이 낫다. 아니면 같은 구간을 12번 트램이 일부 겹치게 다니니 그쪽을 보는 방법도 있다.
28번 트램 줄을 보고 걷기로 했다
줄을 서느냐 마느냐는 결국 계산이다.
트램에 몇 명이 타는지, 배차가 몇 분인지, 걸어서 몇 분인지를 세어봤다. 그날은 걷는 쪽이 빨랐다.
포르투에서도 같은 답이 나온 적이 있다. 거기서는 서점 앞에서 줄을 안 서기로 했다. 두 도시에서 줄을 두 번 안 섰고, 두 번 다 후회가 없었다.
물론 이건 그날 내 형편에 맞는 답이었다. 다리가 멀쩡했고 시간이 있었고 볼 게 이미 많았다. 조건이 다르면 답도 달라진다.
그다음은 성에 올라가지 않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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