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리스본 7] 대항해시대는 돌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대항해시대는 밟고 지나갔다.
표를 안 받았다.
4월 25일 다리를 지나고 나서 한 시간쯤 더 걸었다. 그러다 표지판이 또 나왔다.
앞 편에서 본 것과 똑같이 생긴 표지판인데 숫자만 달랐다.
같은 표지판이 또 서 있었다

카이스 두 소드레 5.2킬로미터. 벨렝 탑 1.7킬로미터.
아까는 2.8과 4.1이었다. 이번에는 5.2와 1.7이다. 그러니까 그사이에 2.4킬로미터를 걸었고, 남은 거리도 정확히 그만큼 줄었다.
현재 위치 칸에는 벨렝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착한 것이다.
지도에 손가락으로 훑던 게 두 시간 반 걸렸다. 그런데 표지판이 계산을 대신 해주니까 힘든 게 좀 덜하다. 남은 게 얼마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길이 아주 곧았다. 자전거 도로가 강을 따라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그 옆에 보도가 붙어 있다. 리스본 시내에서는 이런 직선을 볼 일이 없다.

물이 보도까지 올라와 있었다

물가에 난간이 없는 구간이 있었다. 육각형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그 끝에서 바로 물이 시작된다. 블록 몇 개는 물에 잠겨 있었다.
바다처럼 밀물 썰물이 있다. 시간에 따라 물이 블록 몇 줄을 먹었다 뱉었다 한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해파리가 떠 있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여럿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강이라고 불렀는데 해파리가 산다. 여기는 이미 바다에 가깝다.
유리에 다리가 같이 비쳤다

길가 건물 유리벽에 내가 비쳤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든 모습이 그대로 찍혔는데, 그 옆으로 강과 다리가 같이 들어왔다.
한 시간 전에 그 다리 밑에 있었다. 지금은 유리에 비친 풍경 한구석에 들어가 있다. 걸어온 거리가 사진 한 장에 그렇게 정리됐다.
기념비는 배 모양이었다

강 쪽으로 커다란 흰 돌덩이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니 배였다. 뱃머리가 물 쪽을 향해 비스듬히 솟아 있고 그 위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양이다.
발견기념비다.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기린 기념비이고, 그 시대를 연 왕자를 맨 앞에 세웠다.
계단 옆 벽에 글이 새겨져 있었다. 포르투갈어라 다 못 읽었는데 뱃길을 발견한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뜻이었다. 그 아래에 닻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도 계단을 조금 올라갔다. 그런데 위로 더 가려면 표가 필요했다. 안에 승강기가 있어서 꼭대기 전망대까지 가는데 그건 값을 받는다.
거기서 멈췄다. 무료 구간까지만 올라가고 그 위는 안 갔다. 그날 이미 두 시간 반을 걸어온 참이었고, 값을 내고 더 올라갈 마음이 안 났다.
전날 성에서도 같은 자리에서 멈췄다. 그때는 매표소 화살표 앞이었고 이번에는 계단 중간이다. 이틀 연속으로 같은 선택을 했다.
사람들이 조각을 안 보고 있었다

기념비 앞에 서서 뒤를 돌아봤는데 광장 전체가 무늬였다.
흰 돌과 검은 돌로 물결을 냈다. 리스본 인도 어디서나 보는 그 무늬인데 여기서는 규모가 다르다. 축구장만 한 면적이 통째로 물결이다.
그 한가운데에 커다란 나침반이 깔려 있다. 방위를 가리키는 별 모양이 있고 그 안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배가 어디로 나갔고 어느 해에 어디에 닿았는지가 바닥에 적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그냥 걸어 다녔다.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 아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사람, 사진을 찍느라 뒷걸음질 치는 사람. 발밑에 뭐가 있는지 대부분 안 보고 있었다.
이게 이 광장의 이상한 점이다. 대항해시대를 기념하려고 돌을 사십 미터 높이로 세워놨는데, 정작 그 시대의 내용은 바닥에 깔려 있다. 위를 보면 사람들이 서 있고, 아래를 보면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가 있다.
그리고 위는 표를 받고 아래는 안 받는다.
조각은 한 줄로 서 있었다

기념비 옆면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맨 앞이 왕자고 그 뒤로 이십 명이 넘게 이어진다. 다들 앞을 보고 있고 몸이 앞으로 기울어 있다.
손에 든 게 사람마다 달랐다. 두루마리를 든 사람, 지도를 든 사람, 깃발을 든 사람, 십자가를 든 사람. 배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사람도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간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지도를 그린 사람, 별을 계산한 사람, 글을 쓴 사람이 같이 서 있다. 나가는 일에는 나가지 않은 사람의 몫도 들어간다는 뜻으로 읽혔다.
조각이 워낙 커서 한 장에 다 안 들어왔다. 뒤로 물러날수록 사람이 작아지고 가까이 갈수록 얼굴만 나온다.

반대편으로 돌아가니 해를 정면으로 받았다. 기념비가 통째로 검게 나왔다.

한쪽에서는 조각이 다 보이고 반대쪽에서는 윤곽만 보인다. 같은 돌인데 도는 방향에 따라 다른 게 나온다.
게임에서 먼저 와본 도시였다
이 조각 앞에 서 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온 데가 아닌 것 같았다.
어릴 때 「대항해시대 2」를 했다. 항구를 돌면서 물건을 사고팔고 항로를 뚫는 게임인데, 리스본이 그 안에 나온다. 주인공 하나는 아예 여기서 시작한다. 화면 속 항구 이름 목록에 리스본이 있었고, 나는 그 목록을 보면서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하곤 했다.
지금 눈앞의 조각은 그 게임에 나오던 사람들이다. 지도를 든 사람, 별을 재는 사람, 배를 받쳐 든 사람. 게임에서는 초상화 한 칸이었던 게 여기서는 사람 키의 몇 배짜리 돌이다.
교과서도 있었다. 사회과부도를 펴놓고 항로를 색연필로 따라 그은 기억이 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선, 대서양을 건너는 선. 그 선들이 어디서 출발하는지는 그때도 알고 있었다. 출발점이 여기다.
그러니까 리스본은 나한테 처음부터 로망이 있는 도시였다. 게임에서 이름을 외웠고 교과서에서 색을 칠했다. 그리고 스물 몇 해가 지나서 그 출발점에 실제로 서 있다.
스페인이 별로여서 떠나온 게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도 좋았다. 그런데 리스본으로 넘어오면서 마음이 달라졌던 건 이유가 하나였다.
인생이 게임처럼 되어가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그때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화면 속 항구 목록에서 골라 다니던 도시를 실제로 골라서 오고 있다는 것. 그게 이 구간 전체의 이유였다.
이게 이 편의 진짜 이유다. 기념비가 대단해서 오래 본 게 아니라, 오래 알고 있던 걸 처음 눈으로 봐서 오래 봤다.
기념비 앞 광장 바닥의 나침반 문양이 실제로는 지름 오십 미터쯤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기증한 것이고 안에 세계지도와 항해 연도가 들어 있다. 전체 무늬를 보려면 전망대에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 값이 아깝다면 광장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도 위를 걸어 다니면서 연도를 찾아 읽는 게 더 재미있다.
옆에는 요거트 트럭이 서 있었다

기념비 옆 주차장에 푸드트럭이 서 있었다. 민트색으로 칠한 옛날 승합차를 개조해서 프로즌 요거트를 팔고 있었다. 그 옆에 다른 트럭도 있었다.
오백 년 전에 배가 나간 자리 옆에서 요거트를 판다. 이상할 게 없는데 나란히 놓고 보면 좀 이상하다.
관광지는 대개 이렇게 생겼다. 유적이 있고, 그 옆에 유적을 보러 온 사람에게 뭘 파는 자리가 있다. 그 두 개를 합쳐야 지금의 그 장소다.
벽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기념비에서 수도원 쪽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현대 건물이 있었다. 벨렝 문화센터다.
돌로 지었는데 옛날 건물처럼 안 생겼다. 벽이 크고 평평하고 창이 거의 없다. 그 벽과 벽 사이에 사람 몇 지날 폭으로 통로가 나 있고 위가 하늘까지 뚫려 있다.
옆의 수도원이 오백 년 전 돌이고 이건 삼십 년쯤 된 돌이다. 같은 재료로 정반대로 지었다.
통로 한가운데에 유리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안에 전시물이 들어 있고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갔다.

여기도 안까지는 안 들어갔다. 통로만 지나서 반대쪽으로 나왔다.
건물 사이 통로는 그냥 지나다닐 수 있다. 여름 한낮에 그늘이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다.
옥상 정원에서 수도원과 강이 같이 보인다. 벨렝에서 사람이 제일 적은 전망 자리다.
수도원은 밖에서만 봤다

길 건너에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었다. 정면이 옆으로 길게 이어지고 한쪽에 뾰족한 탑 두 개가 솟아 있다. 흰 돌이 햇빛을 그대로 받아서 눈이 부셨다.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 여기서 출항 기도를 하고 떠났다. 기념비에 새겨진 그 사람들이 실제로 여기를 지나갔다.
문 앞에 붉은 배너가 줄지어 서 있었다. 전시 안내였다.

안 들어갔다. 본당은 무료고 회랑이 유료인데, 회랑은 다음에 보기로 했다.
이 도시에서 안 들어간 데를 세어보면 이게 세 번째다. 성, 문화센터, 수도원. 그런데 세 번 다 밖에서 본 게 아깝지 않았다. 밖에서 봐야 보이는 것도 있다.
나무 사이로 탑이 하나 보였다. 강가에 따로 떨어져 서 있는 작은 석조 탑인데, 표지판이 1.7킬로미터라고 한 그 벨렝 탑이다.

거기까지는 안 갔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양이 있다.
성당 본당은 무료로 들어간다. 회랑이 이 수도원의 진짜 볼거리이고 그쪽이 유료다.
대기줄이 리스본에서 손꼽히게 길다. 오전 일찍 가거나 예매를 하는 게 낫고, 아니면 나처럼 밖에서 정면만 보고 지나가게 된다. 바로 옆 에그타르트집 줄도 같이 길어서 시간 계산을 미리 해두는 편이 좋다.
기념비는 오십 미터가 넘는다
기념비는 오십 미터가 넘고 광장은 발밑에 있다. 계속 위를 올려다보게 됐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바닥 사진 한 장이 제일 많은 걸 담고 있다. 물결무늬 한가운데 나침반이 있고 그 위를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오백 년 전에 여기서 배가 나갔다. 그 항로가 지금은 바닥 무늬가 됐고 사람들은 그 위를 밟고 다닌다. 기념한다는 게 결국 그런 것 같다. 대단한 일도 시간이 지나면 발밑에 깔린다.
그리고 그 바닥은 표를 안 받는다. 세워 올린 쪽은 표를 받고 깔아놓은 쪽은 안 받는다. 그날 리스본에서 나는 계속 깔아놓은 쪽만 보고 다녔다.
벨렝까지 걸어온 진짜 이유가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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