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5] 맥주가 2리터 페트병으로 팔리는 나라에서, 나는 술을 못 마신다

프라하 여행기 · 5편
맥주가 2리터 페트병에
담겨 쌓여 있었다.
하필 나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다.

전날 파티가 늦게 끝나서 아침에 겨우 일어났다.

아침은 카레였다. 한국식 카레에 김치. 유럽 한복판에서 이틀 연속 한식을 먹고 있으니 이 숙소를 고른 게 점점 더 잘한 일처럼 느껴졌다.

민박집 조식으로 나온 한국식 카레와 김치
유럽 한복판에서 이틀 연속 한식이다

광장 끝에 박물관이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 끝의 국립박물관과 기마상
광장이라기보다 아주 넓은 길에 가깝다

밥을 먹고 시내로 나갔다. 바츨라프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 아주 넓은 길에 가깝다. 완만하게 올라가는 대로가 쭉 뻗어 있고 그 끝에 국립박물관이 서 있다. 그 앞에 기마상이 하나 있는데, 프라하 현대사에서 사람들이 모이던 자리가 여기다.

슈퍼에 들어갔다

프라하 슈퍼마켓 입구에 적힌 체코어 환영 문구
그 나라 물가를 제일 빨리 아는 방법

여행 중에 그 나라 물가를 제일 빨리 아는 방법은 슈퍼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관광지 식당 가격은 그 나라 물가가 아니라 관광지 물가다.

빵부터 봤다. 바게트에 10코루나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 몇 가지가 더 있는데 다들 한 자릿수에서 십몇 코루나 사이였다.

빵 코너의 가격표, 바게트가 10코루나대다
바게트가 10코루나대. 한 자릿수짜리도 있다

페이스트리 쪽으로 가면 조금 올라간다. 콜라치라고 부르는 체코식 페이스트리가 종류별로 쌓여 있고 가격표가 16, 18코루나쯤 붙어 있었다.

체코식 페이스트리 콜라치가 진열된 코너와 가격표
콜라치라고 부르는 체코식 페이스트리

페트병에 담겨 쌓여 있었다

2리터 페트병 맥주가 콜라와 나란히 쌓인 진열대
맥주가 2리터 페트병에 담겨 콜라 옆에 쌓여 있다

음료 코너에서 좀 놀랐다.

맥주가 2리터 페트병에 담겨 콜라 옆에 쌓여 있었다. 할인 스티커가 붙어서 27.90코루나. 바로 옆 콜라가 19.90코루나였으니 가격대가 비슷하다. 우리로 치면 생수 사러 갔다가 같은 매대에서 맥주를 집는 셈이다.

병맥주 쪽도 마찬가지였다. 코젤 한 병에 11.90코루나. 빵 한 개 값이다.

코젤 병맥주가 진열된 선반과 가격표
코젤 한 병 11.90코루나. 빵 한 개 값이다

과자는 할인 중이었다. 짭짤한 크래커가 15퍼센트 할인 딱지를 달고 매대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할인 표시가 붙은 과자 진열대
매대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15퍼센트 할인 중

그런데 나는 술을 못 마신다

여기까지 보면 결론이 뻔하다. 프라하에서는 맥주가 싸니까 실컷 마셨겠구나.

아니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몸이 안 받는다.

전날 밤 코젤을 마셔보고 "이건 맛있다"고 생각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사서 쟁여놓고 마시지는 않았다. 이 여행에서 나는 돈을 거의 안 쓰려고 다녔고, 안 마시는 술에 돈을 쓸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이 나라 물가가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는 못 누렸다. 맥주가 물처럼 팔리는 도시에서 생수를 사 마시는 사람. 그게 그때의 나였다.

장바구니에 담은 건 바게트 하나, 크래커 한 봉지, 마시는 요구르트, 시리얼 바 몇 개였다. 하루치 식량이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장바구니에 담긴 바게트와 과자, 요구르트, 시리얼바
하루치 식량이 이 정도면 충분했다

강을 건넜다

슈퍼를 나와 블타바강 쪽으로 걸었다. 다리로 들어가는 문이 탑처럼 서 있고 그 아치를 지나면 카를교다.

카를교로 들어가는 다리탑 아치와 사람들
이 아치를 지나면 카를교다

다리 위는 사람이 빽빽했다. 양옆으로 성인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 초상화가와 기념품 좌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자리를 몇 번 옮겨야 했다.

동상 하나 아래에 청동 부조가 있는데 거기만 유독 반질반질했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그 부분만 금색으로 닳아 있었다.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길래 나도 줄을 서서 부조에 손을 얹었다.

카를교 동상 아래 청동 부조에 손을 얹은 모습
손이 하도 닿아서 그 부분만 금색으로 닳아 있다

11년이 지났는데 아직 안 갔다.

프라하 물가와 카를교, 실전 정보

슈퍼가 답이다. 관광지 식당은 다른 유럽 도시와 비슷하지만, 슈퍼 물가는 확실히 낮다. 빵·과자·유제품·맥주가 특히 그렇다. 아침이나 이동 중 끼니를 슈퍼에서 해결하면 하루 식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체코는 유로가 아니라 코루나(CZK)를 쓰니 환전이나 카드 결제 통화를 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다.

카를교는 시간대가 전부다. 낮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리 위에서 걷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이른 아침 7시 전후가 가장 한산하고, 이때가 사진도 제일 잘 나온다. 다리 통행 자체는 무료다.

부조 전설. 다리 중간쯤 얀 네포무츠키 동상 아래에 청동 부조가 두 개 있다. 그가 강에 던져지는 장면을 만지면 프라하에 다시 온다고 하고, 옆의 기사와 개 부조를 만지면 좋은 인연이 따른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줄이 길지는 않으니 지나는 김에 한 번씩 만져보면 된다.

다녀와서

물가가 싼 나라에 갔을 때 그 혜택을 다 누리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소비하는 방식과 내 취향이 맞아야 한다.

프라하는 맥주가 싼 도시다. 그런데 그건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싼 것이다. 나한테 싼 건 빵과 과자였고, 그래서 나는 이 도시에서 빵과 과자를 먹었다.

다음 편에서는 정해진 길을 벗어난다. 언덕으로 잘못 올라갔다가 더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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