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 프라하 3] 복숭아 하나 받고 반나절 동안 아들 노릇을 했다

프라하 여행기 · 3편
모르는 분이
복숭아를 하나 주셨다.
그날 반나절은
내 여행이 아니었다.

성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어느 쪽이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그냥 그렇게 된다.

납작한 복숭아였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납작복숭아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정말 납작했다

두 분이 복숭아를 하나 주셨다.

위아래로 눌린 것처럼 납작한 복숭아였다.

유럽 여름 과일 중에 이게 있는데, 그때는 처음 봤다.

받고 나니 그냥 헤어지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성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복숭아 하나였는데.

그래서 반나절 길잡이가 됐다

성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내가 앞장서게 됐다.

지도를 보고 어디로 갈지 정했다. 표 끊는 데를 알아보고, 사람 많은 데서는 뒤를 돌아봤다.

예능에 나오는 그 장면 있지 않나. 어른들 모시고 다니는 젊은 사람. 딱 그거였다.

성 앞에서 셋이 사진을 찍었다. 뒤로 대성당 첨탑이 서 있다.

프라하성 앞에서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과 함께 찍은 사진
뒤로 대성당 첨탑이 서 있다. 두 분 얼굴은 가렸다
프라하성
Pražský hrad / Prague Castle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한다. 입장료는 그동안 여러 번 올랐다
영업
성 구역은 매일 06:00 - 22:00, 건물 내부는 09:00 - 17:00(겨울 16:00까지)
가격
성인 450 CZK, 학생 300 CZK. 표는 이틀간 쓸 수 있고 건물마다 한 번씩 들어간다
주소
Hradčany, 119 08 Praha 1, Czechia
트램 22번을 타고 프라주스키 흐라트에서 내리면 언덕을 안 올라도 된다. 성 구역을 걷는 것만으로는 표가 필요 없고, 대성당·구왕궁 같은 건물에 들어갈 때만 낸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여행하면서 사람 만나는 걸 재미있어한다.

남의 여행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 사람이 뭘 보고 뭘 지나치는지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 다니면 못 하는 일이다.

두 분과 다닐 때는 우리 엄마를 모시고 다닌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해 여행이 끝나고 부모님과 어디를 갈 일이 생기는데, 그때 이날이 예행연습처럼 떠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안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성 안뜰
안뜰에 사람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다

성 안쪽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래가 다 보인다.

안뜰에 사람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고 건물이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돌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이 강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로 첨탑이 몇 개 솟아 있다.

프라하 사진 하면 떠오르는 그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프라하성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경과 블타바강
프라하 사진 하면 떠오르는 그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성벽 앞에서도 한 장 찍어드렸다. 벽돌 담에 걸터앉아 나도 한 장 남겼다.

프라하성 붉은 벽돌 성벽에 걸터앉은 모습
담이 낮아서 다들 여기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다
프라하성 성벽 앞에 선 두 분
두 분을 찍어드린 사진. 뒤로 도시가 깔린다

내려오는 길에는 지도를 펴 놓고 다음에 어디를 갈지 이야기했다.

트램 안에 앉아 지도를 펴 든 두 분
지도를 펴 놓고 다음에 어디를 갈지 이야기했다

셋이서 제일 작은 맥주 한 잔

저녁 식사는 내가 안내했다.

숙소 벽에 붙은 손그림 지도에서 봐둔 곳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화살표까지 그어놓고 체코 전통요리를 시키라고 적어둔 그 식당이다.

허니 치킨이 나왔고, 당근과 셀러리 스틱에 소스가 곁들여 나왔다.

꼬치는 세로로 세워져 나왔다 — 스탠드에 꽂아서 고기와 채소가 층층이 매달린 형태였다.

굴라쉬는 수프에 가까웠다.

으깬 감자도 한 접시 시켰다. 이건 셋이 나눠 먹기 좋았다.

걸쭉한 국물 위에 사워크림을 한 숟갈 얹어준다.

사워크림을 얹은 체코식 굴라쉬 수프
걸쭉한 국물 위에 사워크림을 한 숟갈 얹어준다

꼬치를 세워서 내주는 건 처음 봤다. 기름이 아래 접시로 떨어지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세로로 세운 스탠드에 꽂힌 돼지고기 꼬치구이
접시에 눕혀 나오는 게 아니라 스탠드에 세워서 나온다
나무 접시에 담긴 허니 치킨과 채소 스틱, 딥소스
나무 접시에 치킨과 채소 스틱, 소스가 같이 나온다

세 명이 먹기에 딱 맞게 시켰는데, 문제는 술이었다.

두 분 다 술을 안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체코까지 와서 맥주를 안 마셔볼 수는 없으니 맛만 보자고 합의를 봤다.

그래서 제일 작은 걸로 하나만 시켰다.

세 명이 앉아서 잔 하나를 시키고, 그마저도 남겼다.

손에 든 작은 맥주잔 하나
세 명이 앉아서 이 한 잔을 시켰고, 그마저 남겼다

주문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했을 거다.

시킨 건 필스너였다. 한국에서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어서 비교가 됐는데, 솔직히 생맥주랑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체코 맥주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건 이날 밤 다른 자리에서다.

밥값은 두 분이 내셨다

계산할 때 두 분이 내주셨다. 안내를 맡았으니 그렇게 하자는 흐름이었다.

여행 중에 밥을 얻어먹은 게 처음은 아닌데, 이날은 좀 달랐다.

얻어먹었다기보다 뭔가를 하고 받은 것에 가까웠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은 반나절이 그 값이었다.

그리고 금방 헤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두 분과는 금방 헤어졌다. 연락처를 주고받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에 연락이 닿은 적은 없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반나절을 같이 붙어 다니고, 밥을 같이 먹고, 사진도 찍는데, 헤어질 때는 인사 한 번이 전부다.

그게 서운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받은 복숭아는 나중에 혼자 들고 다녔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정말 납작했다.

프라하성을 두 번 봤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반나절이 통째로 남의 일정으로 채워지는 일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날 나는 프라하성을 두 번 본 셈이다.

한 번은 내 눈으로, 한 번은 처음 온 두 분을 데리고 다니면서.

복숭아를 받은 성 전망대

그날 밤에는 야경을 보러 나가려다 붙잡혔다.

프라하 · 6편 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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