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 프라하 3] 복숭아 하나 받고 반나절 동안 아들 노릇을 했다
복숭아를 하나 주셨다.
내 여행이 아니었다.
성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어느 쪽이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유럽 한복판에서 한국말이 들리면 그냥 그렇게 된다.
납작한 복숭아였다

두 분이 복숭아를 하나 주셨다.
위아래로 눌린 것처럼 납작한 복숭아였다.
유럽 여름 과일 중에 이게 있는데, 그때는 처음 봤다.
받고 나니 그냥 헤어지기가 좀 그랬다. 그래서 성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시작이었다. 복숭아 하나였는데.
그래서 반나절 길잡이가 됐다
성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내가 앞장서게 됐다.
지도를 보고 어디로 갈지 정했다. 표 끊는 데를 알아보고, 사람 많은 데서는 뒤를 돌아봤다.
예능에 나오는 그 장면 있지 않나. 어른들 모시고 다니는 젊은 사람. 딱 그거였다.
성 앞에서 셋이 사진을 찍었다. 뒤로 대성당 첨탑이 서 있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여행하면서 사람 만나는 걸 재미있어한다.
남의 여행을 따라가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 사람이 뭘 보고 뭘 지나치는지 관찰하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 다니면 못 하는 일이다.
두 분과 다닐 때는 우리 엄마를 모시고 다닌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해 여행이 끝나고 부모님과 어디를 갈 일이 생기는데, 그때 이날이 예행연습처럼 떠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본 안뜰

성 안쪽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래가 다 보인다.
안뜰에 사람들이 점처럼 흩어져 있고 건물이 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돌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지붕이 강까지 이어지고 그 사이로 첨탑이 몇 개 솟아 있다.
프라하 사진 하면 떠오르는 그 장면이 여기서 나온다.

성벽 앞에서도 한 장 찍어드렸다. 벽돌 담에 걸터앉아 나도 한 장 남겼다.


내려오는 길에는 지도를 펴 놓고 다음에 어디를 갈지 이야기했다.

셋이서 제일 작은 맥주 한 잔
저녁 식사는 내가 안내했다.
숙소 벽에 붙은 손그림 지도에서 봐둔 곳이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화살표까지 그어놓고 체코 전통요리를 시키라고 적어둔 그 식당이다.
허니 치킨이 나왔고, 당근과 셀러리 스틱에 소스가 곁들여 나왔다.
꼬치는 세로로 세워져 나왔다 — 스탠드에 꽂아서 고기와 채소가 층층이 매달린 형태였다.
굴라쉬는 수프에 가까웠다.
으깬 감자도 한 접시 시켰다. 이건 셋이 나눠 먹기 좋았다.
걸쭉한 국물 위에 사워크림을 한 숟갈 얹어준다.

꼬치를 세워서 내주는 건 처음 봤다. 기름이 아래 접시로 떨어지게 하려는 모양이었다.


세 명이 먹기에 딱 맞게 시켰는데, 문제는 술이었다.
두 분 다 술을 안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체코까지 와서 맥주를 안 마셔볼 수는 없으니 맛만 보자고 합의를 봤다.
그래서 제일 작은 걸로 하나만 시켰다.
세 명이 앉아서 잔 하나를 시키고, 그마저도 남겼다.

주문받은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했을 거다.
시킨 건 필스너였다. 한국에서 한 번 마셔본 적이 있어서 비교가 됐는데, 솔직히 생맥주랑 큰 차이를 못 느꼈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체코 맥주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건 이날 밤 다른 자리에서다.
밥값은 두 분이 내셨다
계산할 때 두 분이 내주셨다. 안내를 맡았으니 그렇게 하자는 흐름이었다.
여행 중에 밥을 얻어먹은 게 처음은 아닌데, 이날은 좀 달랐다.
얻어먹었다기보다 뭔가를 하고 받은 것에 가까웠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은 반나절이 그 값이었다.
그리고 금방 헤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두 분과는 금방 헤어졌다. 연락처를 주고받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에 연락이 닿은 적은 없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반나절을 같이 붙어 다니고, 밥을 같이 먹고, 사진도 찍는데, 헤어질 때는 인사 한 번이 전부다.
그게 서운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받은 복숭아는 나중에 혼자 들고 다녔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정말 납작했다.
프라하성을 두 번 봤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반나절이 통째로 남의 일정으로 채워지는 일은 자주 오지 않는다.
그날 나는 프라하성을 두 번 본 셈이다.
한 번은 내 눈으로, 한 번은 처음 온 두 분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날 밤에는 야경을 보러 나가려다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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