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7] 비엔나·부다페스트·프라하 중에 어디를 먼저 가야 하냐면

프라하 여행기 · 7편 (완)
셋 중에 어디를
먼저 가야 하냐면.
11년 지나서 나온
답이 있다.

성 반대편으로 내려와 강을 따라 걷다가 언덕 위 공원으로 올라갔다. 레트나라고 부르는 곳인데, 프라하 사진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다.

레트나 공원 언덕에서 본 프라하 시내 전경
프라하 사진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

여기서 보면 다리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강이 완만하게 휘고 그 위로 다리가 몇 개나 겹쳐 보인다. 성에서 본 풍경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면, 여기는 강을 따라 도시가 이어지는 걸 보는 자리였다.

레트나 언덕에서 내려다본 블타바강과 줄지어 선 다리들
강이 휘면서 다리가 몇 개나 겹쳐 보인다

광장으로 내려왔다

강을 다시 건너 구시가로 들어갔다. 전차선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온다.

전차선이 걸린 거리와 루돌피눔 건물
전차선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면 뾰족한 탑 두 개가 먼저 보인다. 틴 성모교회다. 검은 첨탑이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광장 어디서 봐도 눈에 들어온다.

구시가지 광장과 뾰족한 첨탑이 솟은 틴 성모교회
검은 첨탑이 뾰족해서 광장 어디서 봐도 눈에 들어온다

광장 한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얀 후스다. 종교개혁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그 사람인데, 체코 사람들에게는 그냥 역사 인물이 아니라 좀 다른 무게가 있는 모양이었다.

구시가지 광장의 얀 후스 동상과 훌라후프 거리 공연
얀 후스 동상 앞에서 훌라후프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 도시에서 사람이 제일 몰리는 데가 여기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찍은 사진, 뒤로 틴 교회가 보인다
이 도시에서 사람이 제일 몰리는 데가 여기다

다들 위를 보고 서 있었다

천문시계 앞에 모여 선 사람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시계를 다들 올려다보고 있다

광장 한쪽 구시청사 벽에 시계가 붙어 있다. 천문시계다.

구시청사 벽에 붙은 천문시계와 시계탑
위는 천문반, 아래는 열두 달을 그린 달력판이다

가까이 가면 생각보다 크다. 위아래로 원판이 두 개 있는데 위쪽은 해와 달과 별자리가 도는 천문반, 아래쪽은 열두 달을 그린 달력판이다. 육백 년 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시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각마다 인형이 나와서 도는 걸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장면을 제대로 못 봤다. 사진에 남은 시각을 보면 정각이 아니다. 뭔가 소리가 나고 움직이는 걸 곁눈으로 봤던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 않은 걸 봤다고 쓰지는 않겠다.

대신 다른 게 남았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시계를 올려다보며 서 있는 장면이다. 이 시계의 본체는 인형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구조 쪽이 아닐까 싶었다. 정각까지 남은 시간이 광장에 사람을 붙잡아두고, 그 사람들이 다시 광장을 채운다.

벽에 그림이 그려진 집

벽면 전체에 스그라피토 벽화가 그려진 건물
회칠을 긁어내서 무늬를 낸 벽. 창문 사이가 통째로 그림이다

광장 근처를 걷다 보면 건물 외벽에 그림이 그려진 집들이 있다. 회칠을 긁어내서 무늬를 내는 방식인데, 창문 사이사이가 통째로 그림이라 지나가다 멈추게 된다.

초록색 간판을 단 가게도 봤다. 압생트를 파는 집이었다. 간판에 초록색 덩어리가 매달려 있고 안쪽으로 병이 진열돼 있었다.

초록색 간판을 단 압생트 전문점
간판에 초록색 덩어리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프라하에서 이틀을 보내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뮌헨이었다.

성도 다리도 광장도 다 봤는데, 정작 도시를 떠나면서 머리에 남은 건 민박집 벽에 붙어 있던 손그림 지도였다.

비엔나·부다페스트·프라하, 어디를 먼저 갈까

이 세 도시는 서로 가깝다. 버스로 몇 시간이면 닿는다. 그래서 동유럽을 간다고 하면 셋을 놓고 고민하게 되는데, 11년 지나서 나온 내 답은 이렇다.

비엔나는 문화의 도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고 공연과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는 걸 좋아한다면 여기가 가장 두껍다.

부다페스트는 야경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다리와 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밤에 강 쪽을 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채워지는 도시다.

프라하는 그 중간이다. 문화도 중간, 아름다움도 중간이다. 성이 특별히 더 멋있지도 않았다. 그때 노트에도 "예술적인 비엔나와 야경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끼어버렸다"고 적어놨다.

그런데 그게 프라하를 안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순서를 정한다면 프라하를 먼저 가는 게 낫다. 프라하를 먼저 보고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면 뒤의 둘이 훨씬 선명해진다. 반대로 하면 프라하가 손해를 본다. 실제로 내가 그 순서로 갔고, 그래서 이 도시를 좀 억울하게 봤다.

시간이 정말 없으면 하나만 골라도 된다. 시간이 되면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를 넣고, 셋 다 갈 수 있으면 프라하부터 시작하면 된다.

다녀와서

여행지는 그 자체로 평가되지 않는다. 앞에 뭘 봤는지, 뒤에 뭐가 오는지에 따라 같은 도시가 다르게 보인다.

프라하는 나한테 어정쩡한 도시로 남았지만, 그건 내가 순서를 그렇게 잡았기 때문이다. 성 앞에서 만난 두 분, 벽에 그려진 지도, 남의 송별회, 언덕에서 받은 열매 두 개는 순서와 상관없이 남았다.

결국 제일 정확한 답은 이거다. 그냥 다 돌아보면 된다.

다음 편은 독일 뮌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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