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7] 비엔나·부다페스트·프라하 중에 어디를 먼저 가야 하냐면
먼저 가야 하냐면.
답이 있다.
성 반대편으로 내려와 강을 따라 걷다가 언덕 위 공원으로 올라갔다. 레트나라고 부르는 곳인데, 프라하 사진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다.

여기서 보면 다리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강이 완만하게 휘고 그 위로 다리가 몇 개나 겹쳐 보인다. 성에서 본 풍경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이었다면, 여기는 강을 따라 도시가 이어지는 걸 보는 자리였다.

광장으로 내려왔다
강을 다시 건너 구시가로 들어갔다. 전차선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온다.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면 뾰족한 탑 두 개가 먼저 보인다. 틴 성모교회다. 검은 첨탑이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어서 광장 어디서 봐도 눈에 들어온다.

광장 한가운데에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얀 후스다. 종교개혁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그 사람인데, 체코 사람들에게는 그냥 역사 인물이 아니라 좀 다른 무게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앞에서 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이 도시에서 사람이 제일 몰리는 데가 여기다.

다들 위를 보고 서 있었다

광장 한쪽 구시청사 벽에 시계가 붙어 있다. 천문시계다.

가까이 가면 생각보다 크다. 위아래로 원판이 두 개 있는데 위쪽은 해와 달과 별자리가 도는 천문반, 아래쪽은 열두 달을 그린 달력판이다. 육백 년 넘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시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각마다 인형이 나와서 도는 걸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장면을 제대로 못 봤다. 사진에 남은 시각을 보면 정각이 아니다. 뭔가 소리가 나고 움직이는 걸 곁눈으로 봤던 것 같기는 한데, 확실하지 않은 걸 봤다고 쓰지는 않겠다.
대신 다른 게 남았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시계를 올려다보며 서 있는 장면이다. 이 시계의 본체는 인형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구조 쪽이 아닐까 싶었다. 정각까지 남은 시간이 광장에 사람을 붙잡아두고, 그 사람들이 다시 광장을 채운다.
벽에 그림이 그려진 집

광장 근처를 걷다 보면 건물 외벽에 그림이 그려진 집들이 있다. 회칠을 긁어내서 무늬를 내는 방식인데, 창문 사이사이가 통째로 그림이라 지나가다 멈추게 된다.
초록색 간판을 단 가게도 봤다. 압생트를 파는 집이었다. 간판에 초록색 덩어리가 매달려 있고 안쪽으로 병이 진열돼 있었다.

그리고 버스를 탔다
프라하에서 이틀을 보내고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뮌헨이었다.
성도 다리도 광장도 다 봤는데, 정작 도시를 떠나면서 머리에 남은 건 민박집 벽에 붙어 있던 손그림 지도였다.
비엔나·부다페스트·프라하, 어디를 먼저 갈까
이 세 도시는 서로 가깝다. 버스로 몇 시간이면 닿는다. 그래서 동유럽을 간다고 하면 셋을 놓고 고민하게 되는데, 11년 지나서 나온 내 답은 이렇다.
비엔나는 문화의 도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많고 공연과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는 걸 좋아한다면 여기가 가장 두껍다.
부다페스트는 야경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다리와 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밤에 강 쪽을 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채워지는 도시다.
프라하는 그 중간이다. 문화도 중간, 아름다움도 중간이다. 성이 특별히 더 멋있지도 않았다. 그때 노트에도 "예술적인 비엔나와 야경이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끼어버렸다"고 적어놨다.
그런데 그게 프라하를 안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순서를 정한다면 프라하를 먼저 가는 게 낫다. 프라하를 먼저 보고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면 뒤의 둘이 훨씬 선명해진다. 반대로 하면 프라하가 손해를 본다. 실제로 내가 그 순서로 갔고, 그래서 이 도시를 좀 억울하게 봤다.
시간이 정말 없으면 하나만 골라도 된다. 시간이 되면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를 넣고, 셋 다 갈 수 있으면 프라하부터 시작하면 된다.
다녀와서
여행지는 그 자체로 평가되지 않는다. 앞에 뭘 봤는지, 뒤에 뭐가 오는지에 따라 같은 도시가 다르게 보인다.
프라하는 나한테 어정쩡한 도시로 남았지만, 그건 내가 순서를 그렇게 잡았기 때문이다. 성 앞에서 만난 두 분, 벽에 그려진 지도, 남의 송별회, 언덕에서 받은 열매 두 개는 순서와 상관없이 남았다.
결국 제일 정확한 답은 이거다. 그냥 다 돌아보면 된다.
다음 편은 독일 뮌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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