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6] 정해진 길로 안 가고 언덕으로 올라갔더니 과수원이 나왔다
안 갔다.
나왔다.
카를교를 건너면 말라스트라나다. 성 아래 붙어 있는 동네인데, 강 건너 구시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관광객이 몰리는 큰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해진다.
강 건너 동네는 건물이 낮고 골목이 좁다. 정면에 문장 같은 걸 붙여놓은 오래된 집이 많다.

여기서 성으로 다시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정해진 길이 있었는데
프라하성으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다. 트램을 타거나, 말라스트라나에서 계단으로 곧장 올라가면 된다. 전날 내가 간 길이 그 길이다.
그런데 그날은 다른 쪽으로 갔다. 언덕이 하나 있길래 그쪽으로 붙었다.
안내판이 하나 서 있었다. 초록색 바탕에 지도가 그려져 있고 정원 이름이 여러 개 적혀 있었다. 페트르진 언덕에 붙은 정원들을 묶어 놓은 안내판이었다.

길 양옆이 과수원이었다

올라가다 보니 길 양옆이 과수원이었다. 관리된 정원이라기보다 그냥 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고 그 사이로 흙길이 나 있는 모양이었다.
나무마다 열매가 달려 있었다. 붉게 익은 것도 있고 아직 푸른 것도 있었다.

먹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지나가던 모녀가 알려줬다. 이건 먹어도 된다고. 그러고는 손에 두 개를 쥐여줬다.

말이 통했을 리 없다. 손짓으로 나무를 가리키고, 따서 건네고, 먹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한 대화였다.
올라갈수록 도시가 넓게 보였다

언덕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도시가 조금씩 더 보인다. 붉은 지붕이 강 쪽으로 깔리고, 그 사이에 첨탑이 박혀 있다.
전날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방향이 다르다. 성에서 보면 도시가 발밑에 펼쳐지는데, 언덕에서 보면 성과 도시가 나란히 보인다.
한참 올라가니 성이 다시 나왔다. 이번엔 뒤쪽이었다. 나무 사이로 첨탑이 삐죽 나와 있었다.

이 길로 올라가면서 수도원 앞도 지났다. 안에 오래된 도서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들어가지는 않았다. 전날 성에서 표를 끊고 얻은 교훈이 하루 만에 작동한 셈이다.
광장에는 클래식카가 서 있었다
성 서쪽으로 나오면 흐라드차니 광장이다. 여기는 성 안이 아니라 성 바로 앞 광장이라 표가 필요 없다.
광장에 클래식카가 몇 대 서 있었다. 관광객 태우는 차인데, 굳이 이 시대 차를 갖다 놓은 게 이 동네 분위기와 맞긴 했다.

분수가 서 있는 광장은 넓고 한산했다. 성 안뜰과는 사람 밀도가 완전히 달랐다. 표를 안 사도 볼 수 있는 곳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정원까지 마저 봤다
성 북쪽으로 돌아가면 왕궁 정원이 있다. 화단이 무늬를 이루고 있고 잔디가 넓게 깔려 있었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초록 지붕을 얹은 건물이 나왔다. 아치가 줄지어 있는 르네상스식 별궁인데, 앞에 대칭으로 정돈된 정원이 딸려 있었다. 여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전날 표를 끊고 본 것들보다 이날 공짜로 본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다녀와서
여행에서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손해를 볼 때도 있다. 시간이 더 걸리고, 길을 잃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헤맨다.
그런데 이날은 반대였다. 계단으로 곧장 올라갔으면 과수원도, 모녀도, 언덕에서 본 풍경도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열매 두 개가 그날 제일 선명한 장면으로 남았다.
다음 편이 프라하 마지막이다. 천문시계 앞에서 사람들이 왜 서 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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