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로마 3] 판테온에서 트레비까지, 젤라또 두 번으로 버틴 오후
하나뿐이었다.
다시 젤라또를 먹는 것.
한여름 로마를 걸어서 도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젤라또를 먹고, 조금 걷고, 다시 젤라또를 먹는 것.
빛이 들어오는 신전, 판테온
포로 로마노에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니 골목이 좁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기둥이 늘어선 정면이 나왔다. 판테온이었다.
기원전 27년에 아그리파가 세운 신전이 화재로 무너진 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서기 126년 무렵에 지금의 건물로 다시 지었다.
그런데도 정면 명문에는 여전히 아그리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을 가리킨다. 로마의 신들을 한 건물에 다 모셨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나오는 챔피언 판테온도 같은 데서 온 이름이다.
십 년째 붙잡고 있는 게임이라 그 이름을 수백 번은 봤을 텐데,
정작 그게 무슨 뜻인지는 이 건물 앞에 서고 나서야 알았다.
건물 이름이 게임 챔피언 이름이 되기까지 이천 년이 걸린 셈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선이 자동으로 위로 간다.
지름 구 미터짜리 구멍으로 빛이 기둥처럼 떨어졌다.
오큘루스라고 부르는 그 구멍에는 유리도 덮개도 없다.
비가 오면 그대로 들어오고, 바닥에 난 배수구로 빠진다.

돔 안쪽은 사각 격자로 파여 있는데, 위로 갈수록 격자가 작아진다.
실제보다 더 높아 보이게 만든 장치라고 한다.
철근을 넣지 않은 콘크리트 돔 중에는 지금도 세계에서 제일 크다.
지름이 43.3미터인데 바닥에서 오큘루스까지의 높이가 정확히 같다.
돔 안에 공을 하나 넣으면 딱 맞게 들어가는 비례다.
지금은 성당으로 쓰인다.

서기 609년에 성당으로 바뀌면서 헐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로마의 다른 신전들이 채석장처럼 뜯겨나갈 때다.
안쪽 벽감에는 제단이 있고,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무덤이 여기 있다.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같은 건물에 묻혀 있다.
이천 년 된 신전이 성당이 되어 살아남았다는 게, 로마에서 오래된 것들이 버티는 방식을 보여준다.
밖으로 나오니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했다.
분수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겨우 빠져나왔다.

점심은 판테온 옆 피잣집에서
배가 고파서 판테온에서 몇 골목 안 되는 식당에 들어갔다.
그 안에서 한국인 남학생 넷과 합석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따로 적었다.
소피아에서 조각피자 하나로 배를 채우던 게 이틀 전이라 로마 물가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밥을 먹고 나와 판테온 앞을 한 번 더 지났다. 판테온은 저녁에도 멋지다.

로마에서 젤라또 한잔

판테온에서 몇 골목 안 가서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로마 3대 젤라또 집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젤라또는 낯선 이름이었다.
가게 안이 젤라또 가게답지 않았다.
대리석 기둥에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 종업원들이 흰 재킷에 검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벽에는 "이 구역에서는 앉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가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붙어 있었다.
서서 먹는 값과 앉아서 먹는 값이 다른 게 이 나라 방식이다.
유리 진열대 앞에서 한참 고민했다. 요구르트, 리몬첼로, 쌀, 코코넛. 처음 보는 이름이 절반이었다.

결국 쌀 맛을 골랐다. 정말 밥알이 씹혔다.
우유 푸딩에 쌀알을 넣은 것 같은 맛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피자는 기대만 못 했는데 젤라또는 반대였다.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지금이야 한국에도 젤라또 가게가 흔하지만, 그때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쌀 맛도 좋았고, 결국 이 여행 내내 제일 많이 고른 건 헤이즐넛이었다.
나중에 체코에서도 그것만 골라 먹었다.

스페인 광장에서 앉아 나른하게 구경하기

젤라또를 물고 북쪽으로 걸었다.
명품 매장이 늘어선 콘도티 거리를 지나니 광장이 나왔다.

계단 아래에는 낡은 배 모양의 분수가 있었다. 이름이 바르카차, 낡은 배다.
베르니니 부자가 1620년대에 만들었고, 물이 가라앉는 배처럼 만들어놓은 건
이 일대는 수압이 낮아서 물을 높이 뿜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약을 디자인으로 바꿔놓은 셈이다.
계단에는 사람들이 층층이 앉아 있었다.
나도 그 틈에 앉아 젤라또를 마저 먹었다.
뭘 보러 앉은 건 아니고 그냥 앞을 구경했다.
그늘이 없어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 더웠다.
지금은 이게 불가능하다.

계단 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좋았다.
위로 올라가면 아래 광장과 콘도티 거리가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포폴로 광장과 핀초 언덕 — 로마 지붕이 한눈에 깔린다

거기서 좀 더 걸어 포폴로 광장까지 갔다.
한가운데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서 있고 양옆에 쌍둥이 성당이 마주 보는, 로마에서 제일 잘 정돈된 광장이다.
가운데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으로, 로마에 선 오벨리스크 중에 가장 오래됐다.

광장 북쪽 끝의 계단을 오르면 핀초 언덕이다.
오르막이 길지 않은데 올라가서 보이는 게 확 다르다.
방금 지나온 광장이 통째로 발밑에 들어오고, 오벨리스크가 정중앙에 놓인다.

핀초가 유명한 곳인 줄은 그때 몰랐다.
계단이 있으니 올라갔을 뿐이다.
이날 다닌 곳이 대개 그랬는데,
그렇게 모르고 지나친 자리가 나중에 TV나 영화에 나올 때마다 그게 또 그렇게 반가웠다.
로마에 높은 건물이 없다는 걸 여기서 알았다.
지평선까지 지붕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튀어나온 건 돔뿐이었다.

나무 사이로 저 멀리 둥근 돔 하나가 보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다.
그때는 이름도 잘 몰랐는데, 다음 날 그 안에 서 있게 됐다.

트레비 분수 — 물을 뺀 채 복원 공사 중이었다

핀초에서 내려와 다시 남쪽으로 걸었다. 트레비 분수는 골목 끝에서 갑자기 나온다.
좁은 길을 걷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시야가 확 열리면서 흰 조각 덩어리가 벽을 가득 채웠다.
건물 정면 전체가 분수다.
광장이 좁아서 뒤로 물러날 자리가 없고, 그래서 더 커 보인다.
그런데 물이 없었다. 수반이 텅 비어 있었고, 조각 앞으로 공사 가림막이 서 있었다.
복원 공사 중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해에 대대적인 세척과 보수가 진행 중이었고, 물을 뺀 채로 일 년 넘게 작업이 이어졌다.
이 분수는 1762년에 완성됐다. 니콜라 살비가 설계했는데 완공을 못 보고 죽어서 다른 건축가가 마무리했다.
물은 기원전 19년에 놓인 아쿠아 베르지네 수도교에서 지금도 그대로 끌어온다.
동전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온다는 이야기는 「로마의 휴일」과 「애천」이 퍼뜨렸고,
지금은 하루에 쌓이는 동전만 몇천 유로다. 전액 자선단체로 간다.
그래도 관광객을 막지는 않아서 광장은 평소처럼 붐볐다.
사람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물이 없으니 조각의 발밑까지 다 보였다.
평소라면 물에 잠겨 있을 바위 조각과 배수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물건인지가 오히려 잘 보였다.

동전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던질 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는 이게 별로 아쉽지 않았다.
애초에 트레비 분수에 환상이 없었다.
물이 있든 없든 그 앞에 서보는 걸로 충분했다.
정작 그 앞에서 오래 남은 건 분수가 아니다.
광장에서 한국인 관광객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한참 놀았는데, 지금 트레비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나온다.
아쉬움은 오히려 지금 없다 — 그 몇 달 사이에 여기 있었던 사람만 본 얼굴이니까.
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건 그해 늦가을이었다.
베네치아 광장과 트라야누스 기둥, 그리고 두 번째 젤라또

트레비에서 베네치아 광장 쪽으로 내려갔다.
넓은 광장 저편으로 나선형 부조가 감긴 기둥이 하나 서 있었다. 트라야누스 기둥이다.
서기 113년에 세운 것으로, 다키아 전쟁의 전 과정이 부조로 스물세 바퀴를 감고 올라간다.
높이가 삼십 미터고, 새겨진 인물만 이천오백 명이 넘는다.
그 앞에 흰 대리석 건물이 있었다. 비토리아노다.
흰 대리석이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서 눈이 부셨다.
1911년에 세운 통일 이탈리아 기념관인데, 로마 사람들은 웨딩케이크니 타자기니 하고 부른다.
주변 중세 구역을 밀고 지었다는 것도 인심을 잃은 이유다.
그날 낮에는 그냥 눈부시게 하얗다는 인상뿐이었다.

두 번째 젤라또는 컵으로 시켰다.
휘핑크림을 얹어주는 집이었다.
아침 여섯 시 오십 분에 나와서 오후 세 시 반까지 걸었고, 그 사이 먹은 게 점심 한 끼와 젤라또 두 개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다리가 뻐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신발은 쪼리였다. 좋은 걸 챙겨 온 것도 아니면서 이걸 신고 하루에 여덟 시간씩 걸은 날도 있었다.
결국 밑창이 다 닳을 때까지 신고 다녔다.
판테온 입장
한동안 무료였지만 지금은 유료다. 2026년 7월 1일부터 7유로로 올랐다(그 전에는 5유로였다).
- 개방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마지막 입장은 6시 45분.
- 미사가 있는 시간에는 관람이 제한된다.
-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고, 예약하면 줄을 덜 선다. 현장 발권도 되지만 성수기 낮에는 줄이 길다.
- 광장에서 정면을 보는 건 여전히 무료다. 기둥 아래까지는 들어갈 수 있다.
비 오는 날 오큘루스 아래에 서면 빗줄기가 그대로 떨어진다.
날씨가 궂다고 판테온을 미룰 이유는 없다.
트레비 분수 2유로 규정
2026년 2월 2일부터 분수 바로 앞 관람 구역이 유료로 바뀌었다. 2유로다.
| 항목 | 내용 |
|---|---|
| 유료 구역 | 분수 바로 앞 관람 구역 · 2유로 |
| 운영 시간 | 매일 09:00 – 22:00. 그 밖의 시간은 접근이 자유롭다 |
| 값 안 드는 때 | 이른 아침, 밤 10시 이후. 사람도 그때가 제일 적다 |
| 인원 제한 | 2025년부터. 분수 앞에 동시 400명까지 두고 넘으면 줄을 세운다 |
| 무료 조망 | 조금 떨어진 계단 쪽. 전체 구도는 오히려 뒤쪽이 낫다 |
| 동전 던지기 | 유료 구역 안에서만.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진다 |
스페인 계단에 앉으면 벌금
2019년부터 계단에 앉는 것 자체가 금지됐다.
| 항목 | 내용 |
|---|---|
| 벌금 | 250유로. 더럽히거나 손상시키면 400유로까지 |
| 단속 | 낮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인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돈다 |
| 음식물 | 들고 오르는 것도 제지 대상. 젤라또는 광장 쪽에서 먹고 올라간다 |
| 그래도 되는 것 | 오르내리기, 계단 위 트리니타 데이 몬티 테라스에서 서서 내려다보기 |
판테온에서 트레비까지, 걸어서 이은 하루
이날 하루에 걸은 거리를 나중에 지도로 재보고 놀랐다. 아침의 성당들부터 트레비까지 계속 걸어서 이었다.
판테온·스페인 광장·트레비·포폴로 광장이 전부 걸어서 이어진다.
로마 도심이 그만큼 좁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마는 걷는 사이사이에 유적이 계속 튀어나온다.
목적지 사이의 이동이 지루하지 않다.
다음에 온다면 이번엔 하루를 더 늘려서, 오늘 스쳐 지나간 골목들을 천천히 다시 걷고 싶다.
저녁에는 숙소로 돌아와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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