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로마 6] 바티칸에서 흩어진 뒤, 테베레 강을 따라 혼자 걸었다
감옥이 된 성을 향해 걸었다.
다시 혼자 여행 시작.
여덟 명이서 바티칸을 둘러보고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오후 일정으로 흩어졌다.
나는 카스텔 산탄젤로로 향했다.
다시 혼자 여행 시작

바티칸 관람이 끝나갈 무렵 일행이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누구는 박물관에 더 남고, 누구는 컨디션이 안 좋아 숙소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랄 것도 없었다.
광장 오벨리스크 아래에서 "한국에서 보면 재밌겠다" 정도를 주고받다가 각자 방향이 달라졌고, 그게 끝이었다.
반나절 만에 그렇게 빨리 친해졌는데도 헤어지는 건 이렇게 흐지부지하다.
섭섭하지는 않았다. 이 여행은 한 무리가 빠지면 저녁에 숙소에서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식으로 계속 굴러갔으니까.
혼자가 되니 어디로 갈지도 내가 정하면 됐다.
산탄젤로 성 — 황제의 무덤에서 요새, 그리고 감옥으로

광장에서 강 쪽으로 직진하면 커다란 원통형 건물이 나온다. 카스텔 산탄젤로다.
원래는 황제의 무덤으로 지어졌다. 하드리아누스가 자기와 후손을 묻으려고 세웠고, 서기 139년에 완성됐다.
그러다 성벽이 붙고 요새가 됐고, 교황이 위험할 때 바티칸에서 이리로 피신하는 비밀 통로까지 생겼다.
성벽 위로 난 그 통로를 파세토 디 보르고라고 부른다. 길이가 팔백 미터쯤 된다.
1527년 로마 약탈 때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실제로 이 길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나중에는 감옥으로도 썼다.
꼭대기에는 칼을 든 대천사 미카엘 상이 서 있다.
590년 역병이 돌 때 천사가 저기 나타나 칼을 칼집에 넣는 걸 보고 역병이 끝났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왔다.

건물 하나가 천 팔백 년 동안 이렇게 바뀌었다.
| 시기 | 쓰임 |
|---|---|
| 139년 |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후손의 영묘 |
| 5세기 | 성벽에 붙어 요새가 된다 |
| 1277년 | 바티칸과 잇는 비밀 통로 파세토 완성 — 교황의 피난처 |
| 16 – 19세기 | 감옥. 정치범과 이단 재판 피고가 갇혔다 |
| 1925년 | 국립 박물관으로 개관 |
해자 자리에는 지금 잔디와 나무가 심겨 있다.
벽돌 성벽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데, 그 곡선 바깥으로 다시 별 모양 외벽이 한 겹 더 있다.
아래에서 보면 위아래 두 겹이 겹쳐 보여 어디가 어딘지 헷갈린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올려다본 것. 카메라를 아무리 젖혀도 위쪽이 다 안 들어왔다*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입장료가 만만치 않기도 했지만, 이때쯤부터 모든 공간에 꼭 들어가 봐야 한다는 생각을 접었다.
밖에서도 이만큼 보이는 데다, 들어간다고 안에 있는 걸 내가 다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꼭 봐야 하는 게 아니면 다음에 또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테베레 강변 산책로 —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사람이 없다

성을 지나 다리를 건너지 않고, 강둑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강 양쪽 둑이 높아서, 내려가면 도시 소리가 확 줄어든다.
위에서는 차 소리와 사람 소리가 계속 나는데, 몇 계단만 내려가면 그게 다 위로 올라가 버린다.
폭이 넓은 산책로가 강을 따라 계속 이어졌고,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없는데도 딱히 겁나지는 않았다.

강물은 초록에 가까운 흙빛이었다.
로마의 강이 이렇게 탁할 줄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원래 그렇다고 한다.
강 이름 자체가 그 흙빛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다.

강 건너편으로는 큼직한 관공서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리석에 조각을 잔뜩 붙인 건물이 특히 눈에 띄었다.

팔라초 디 주스티치아 — 로마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부르는 건물

그 건물이 대법원이었다.
조각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는 건물이었다.
기둥과 조각상과 부조가 벽면을 빈틈없이 덮고 있고, 옥상에는 청동 사두마차까지 올라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마 사람들은 이 건물에 "못생긴 재판소"라는 별명을 붙여놨다고 한다.
짓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그냥 과하다는 말도 있다.

나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 도시에서 본 대부분의 건물은 절제돼 있었는데, 여기만 유독 다 쏟아부었다.
1888년에 착공해 1911년에 문을 열었다. 로마 기준으로는 아주 새 건물이다.
굴리엘모 칼데리니가 설계했고, 통일 이탈리아가 새 수도의 사법부를 과시하려고 지었다.
트래버틴을 통째로 두른 데다 옥상의 청동 사두마차까지 올려서 예산이 몇 배로 불었다.
새것이 옛것보다 더 옛날처럼 보이려고 애쓴 인상이었다.
다리 한가운데 서면 아까 나온 그 돔이 강 끝에 걸린다.
강줄기가 곧고 양옆에 가로수가 늘어서 있어서, 그 사이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정확히 가운데에 놓인다.
아침에 그 안에 서 있다가 오후에 멀리서 다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같은 자리에서 몇 장을 더 찍었다.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뽑았다. 그늘이 없어서 캔이 금방 미지근해졌다.


슈퍼마켓에서 로마 물가를 다시 봤다

저녁 무렵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그냥 시원해서 들어간 건데, 진열대를 보다가 발이 묶였다.
냉장 진열대의 얇게 썬 햄이 한 팩에 0.89유로였다.
옆에는 0.49유로짜리 행사 상품도 있었다.
며칠 전 점심 한 끼에 만 삼천 원을 쓰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게 바로 이 도시였다.
선반 하나가 통째로 헤이즐넛 스프레드였다.
한국에서는 작은 병으로만 보던 게 여기서는 들고 다니기 힘든 크기로 쌓여 있었다.
값은 크기에 비하면 놀랄 만큼 쌌다.

물 같은 걸 몇 개 집어 나왔다.
뭘 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로마부터 돈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여기서부터 독일까지 가는 내내 한 푼씩 아껴가며 다녔다.
로마 물가는 어디서 먹느냐로 갈린다.
관광지 근처에서 앉아서 먹으면 비싸고, 슈퍼에서 사서 공원에서 먹으면 소피아와 큰 차이가 없다.
로마에서 예산을 아끼는 방법은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다. 한 끼만 슈퍼로 옮기면 된다.
| 같은 한 끼 | 값 |
|---|---|
| 관광지 식당에서 앉아서 | 12 – 15유로 |
| 슈퍼에서 사서 공원에서 | 2 – 3유로 |
| 슬라이스 햄 한 팩 | 0.89유로 (행사 0.49유로) |
| 생수 1.5L | 0.3유로 안팎 |
그날 저녁 파스타는 짰다
숙소로 돌아오니 낮에 흩어졌던 얼굴들이 하나둘 다시 모였다. 월레스만 아직이었다.
박물관에 남는다더니 저녁이 되도록 나오지 않아서, 결국 그 친구를 빼고 근처 식당으로 갔다.
시킨 파스타가 굉장히 짰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짜게 요리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유럽 요리는 원래 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게 이 접시부터였다.
테베레 강변 산책 코스
로마에서 사람에 치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구간이다.
| 항목 | 내용 |
|---|---|
| 내려가는 곳 | 강둑 아래 산책로(룽고테베레). 계단이 다리 근처마다 있다 |
| 추천 구간 | 카스텔 산탄젤로 → 산탄젤로 다리 → 대법원 앞 → 카부르 다리 · 30분 |
| 돔이 정면인 자리 | 산탄젤로 다리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다리. 해 질 무렵 빛이 좋다 |
| 여름 저녁 | 강변에 노점과 간이 바가 들어선다. 낮과 완전히 다른 풍경 |
| 주의 | 그늘이 거의 없다. 한낮은 피하고 물을 챙긴다(나소네에서 무료) |
카스텔 산탄젤로 안에 들어간다면 성인 요금이 붙는다.
옥상 테라스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는 평이 많은데, 밖에서 강변만 걸어도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
로마 슈퍼마켓 활용법
식비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항목 | 내용 |
|---|---|
| 주요 체인 | Conad · Carrefour Express · Coop · Todis · Pam |
| 매장 고르기 | 관광지 한복판 미니마켓은 두 배쯤 한다. 한 블록만 벗어난다 |
| 영업 | 보통 08:00 – 21:00. 일요일은 단축 영업하거나 닫는다 — 토요일에 사둔다 |
| 과일·채소 | 저울에 올려 직접 라벨을 뽑아야 계산대를 통과한다 |
| 봉투 | 유료. 접이식 장바구니가 여행 내내 쓸모 있다 |
시세는 대략 이렇다.
| 품목 | 값 |
|---|---|
| 생수 1.5L | 0.3 – 0.5유로 |
| 파스타 한 봉 | 1유로 안팎 |
| 슬라이스 햄 한 팩 | 1 – 2유로 (행사 0.49유로도 봤다) |
| 치즈 | 2 – 4유로 |
| 하우스 와인 한 병 | 3 – 5유로 |
로마 시내 공원과 광장 계단은 대부분 앉아서 먹어도 되지만,
스페인 계단처럼 금지된 곳이 있으니 안내판을 한 번 보는 게 좋다.
혼자가 되고 나서 걸음이 빨라졌다
여럿이 다니는 여행이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날은 흩어지고 나서야 내 속도가 나왔다.
강변을 혼자 걷고, 아무도 없는 산책로에서 물소리를 듣고,
슈퍼마켓 진열대를 구경하다 나온 오후. 그날 기억은 이쪽이 더 진하다.
다시 로마에 가면 이 강변 구간부터 걸을 것 같다.
그날 밤에는 낮에 스쳐 간 곳들을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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