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로마 4] 도미토리에서 친구 5명 만들기
다섯 나라 친구가 생겼다.
각기 다른 나라 친구들이 옆자리에서 말을 걸어온다.
어제 같이 즐겁게 이야기 나눈 친구가 아침에 떠난다고 인사를 걸어올 때가 있다.
로마는 소피아 다음으로 밟은 유럽 도시였다.
도착한 첫날, 함께 지내던 도미토리 친구들이 하나둘 체크아웃했다.
숙소에 혼자 남겨진 적도 있지만 성격상 심심해한 적은 없다.
이태원인 줄 알았다
숙소 골목에 들어서니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로마에 한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잠깐은 이태원에 온 줄 알았다.
한국어가 들리니까 친숙함은 있는데, 서로 말을 거는 일은 드물었다.

콜로세움과 판테온을 혼자 걸어서 둘러봤다.
사람 구경만으로도 시간이 잘 갔다.
아침에 많이 걸어서인지 점심에는 배가 고팠다.
구글맵으로 찍어둔 피자집

구글맵을 들여다보다 근처 피자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만 봐도 맛있겠다 싶어 찾아 들어갔다.
안에는 한국인 남학생 넷이 막 주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나도 모르게 철판을 깔고 같이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례한 부탁이었다.
넷은 흔쾌히 자리를 내줬다.
피자 한 판과 파스타 두 접시를 다섯이 나눴다.

피자는 길쭉한 타원형 한 판이 네 구역으로 나뉜 종류였고, 구역마다 토핑이 달랐다.
루꼴라와 생햄을 올린 것, 버섯, 초록빛 페스토, 그리고 호박꽃을 얹은 것.
호박꽃 피자는 로마에서 여름에만 먹는다.
맛은 기대만 못 했다. 도우가 얇고 담백한데, 그게 전부다.
토핑을 아끼는 게 정통이라지만 한국 피자가 훨씬 맛있다.
치즈도 두껍고 재료도 아낌없이 올라가고, 고구마 무스에 감자까지 얹는 나라다.
본토에서 먹어봐야 안다는 말을 이날 실감했는데, 실감한 방향이 반대였다.

값은 더치페이로 갈랐다. 한 끼에 만 원을 훌쩍 넘었는데, 다섯이 나누니 부담이 줄었다.
콜라와 환타 캔이 오가는 사이 금세 편해졌다.
그렇게 받아준 학생들이 지금도 고맙다.
그 넷은 그날 밤 비행기로 떠났다.
숙소로 돌아오니 방은 다시 비어 있었지만, 그새 익숙해져서인지 이번엔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Diamond B&B, 공짜 저녁의 정체

숙소에 도착하니 새로운 룸메이트가 생겼다.
룸메이트 월레스와 새로 들어온 친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내가 묵던 호스텔은 저녁을 무료로 줬다.
주인이 직접 파스타를 해서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방식이었다.

월레스는 미국 쪽이라고 했다.
로마 문화에 푹 빠져 있었고 그리스 신화를 줄줄 꿰었다.
유럽이나 미국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유럽 역사를 판타지처럼 대하는 게 느껴진다.
우리가 삼국지를 읽는 자리에 그 이야기들이 놓여 있는 셈이다.
멕시코, 캐나다,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 주방에 모였고, 동양인은 이번에도 나 혼자였다.
그날 저녁 메뉴가 지금도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여행 중이라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저녁 한 끼가 통째로 굳으니 그것대로 좋았다.
좋은 레스토랑도 아니었는데 그 접시 하나로 낯선 사람들과 순식간에 친해졌다.
국적 넷이 모인 바 투어
숙소 방을 옮겨야 해서 처음엔 저녁 바 투어를 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옆방 멕시코 친구가 내일 새벽 5시 비행기라며 짧게 한잔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못 이기는 척 나가기로 했다.
거기에 두 사람이 더 붙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던, 휠체어를 탄 친구와 매너 좋은 벨라루스 친구였다.
멕시코, 벨라루스, 휠체어 탄 친구, 그리고 나.
국적도 사정도 다른 넷이서 콜라모히토 한 잔씩을 들고 바를 돌았다.
휠체어를 탄 친구와 바를 돌았다
넷 중 하나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내내 그게 걸림돌이 되는 장면을 못 봤다.
바에 들어가고 자리를 잡는 데 따로 준비할 게 없었다.
턱이 낮고 문이 넓었고, 무엇보다 아무도 그걸 화제로 삼지 않았다.
유럽의 선진 문화라는 걸 이날 처음 체감했다.
한국에서였다면 이 코스가 애초에 짜였을까 싶었다.
말이 다 통하지도 않았고 술이 세지도 않았는데, 그 밤이 이 여행에서 손에 꼽히게 즐거웠다.
정작 지금은 왜 그랬는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이드 여행 중인 한국 친구들과 즉석에서 합류했다
로마에서 며칠을 더 지내는 동안 얼굴은 계속 바뀌었다.
어느 날은 가이드를 따라 단체로 다니던 한국 친구들과 즉석에서 하루를 같이 보냈다.
일정이 짜여 있는 쪽과 아무것도 안 짜여 있는 쪽이 만나니 오히려 잘 맞았다.
다른 민박에서 온 친구들까지 붙어서, 그날은 공원에서 사진을 남겼다.

혼자 남겨지는 순간이 매번 있었지만, 그 자리엔 늘 누군가 다시 앉았다.
도미토리는 사람이 빠지는 만큼 빠르게 채워진다.
다만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옆자리는 그냥 옆자리로 남는다.
로마에서는 매번 내가 먼저 걸었고, 그래서 며칠이 꽉 찼다.
로마 저녁 산책과 젤라또
그날처럼 지금도 로마의 저녁은 사람과 음식으로 채워진다.
콜로세움과 바티칸 같은 낮 코스를 마쳤다면, 저녁엔 트라스테베레 쪽으로 넘어가는 걸 권한다.
테베레강 서쪽 강변에 자리한 이 동네는 해 지고 나면 로마에서 밤 문화가 제일 활발한 곳으로 바뀐다.
이름부터가 강 건너편을 가리킨다. 라틴어 trans Tiberim.
고대에는 뱃사람과 이주민이 살던 구역이었고, 지금은 좁은 골목마다 식당이 들어차 있다.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엔 아페리티보 문화도 즐길 만하다.
아페롤 스프리츠나 하우스 와인 한 잔을 시키면 핑거푸드나 간단한 안주를 같이 내주는 식당이 많다.
식사비를 줄이면서 분위기까지 챙기는 방법이다.
현지인들의 본격적인 저녁 식사 시간인 8시 반보다 조금 이른 7시쯤 가면 자리 잡기가 수월하다.
| 시간대 | 무엇 |
|---|---|
| 18:00 – 20:00 | 아페리티보. 한 잔 값에 핑거푸드가 딸려 나온다 |
| 19:00 | 자리 잡기 좋은 시각. 현지인 저녁은 20:30부터다 |
| 20:30 – 22:00 | 트라스테베레 골목이 제일 붐빈다 |
| 22:00 이후 | 강변 산책 + 젤라또. 늦게까지 여는 가게가 많다 |
저녁을 먹은 뒤엔 테베레강을 따라 걸어 나오는 코스가 괜찮다.
걷다가 출출해지면 젤라또를 챙기면 되는데,
판테온 근처 지올리띠가 로마 3대 젤라또 집 중 하나로 꼽히고 레몬·수박 같은 과일 맛이 특히 좋다.
트레비 분수 근처의 작은 가게들도 밤늦게까지 줄이 이어지는 곳이 꽤 있다.
유적보다 사람들과 함께해서 더 즐거웠다
그 며칠은 정작 유명한 유적보다 도미토리에서 스친 얼굴들이 더 오래 남았다.
국적도 사정도 다른 사람들과 밥 한 끼, 술 한 잔을 나누는 것만으로 하루가 꽉 채워졌다.
다시 로마에 간다면, 이번에도 도미토리에 묵으면서 그날처럼 낯선 사람 옆에 슬쩍 자리를 잡아보고 싶다.
그 친구들과는 다음 날 바티칸에 같이 갔다.
미드로 영어를 익혔다고 믿었는데 현장은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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