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 로마 5] 하루 만에 사귄 여덟 명과 바티칸에 갔다
바티칸을 함께 걸었다.
열심히 미소만 지은 하루.
바티칸 시국은 국토 0.44㎢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그 안의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은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다.
미켈란젤로가 몇 년에 걸쳐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보려고
관람객들은 박물관 전시실을 몇 시간씩 가로질러 걷고,
성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으로 돔에 오르면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모든 걸 즉흥으로 뭉친 여덟 명짜리 단체 여행으로 지나갔다.
8명이 된 단체 여행
원래는 룸메이트 월레스와 둘이 가기로 한 바티칸이었다.
전날 저녁을 같이 먹은 친구들이 하나둘 합류하면서 계획이 부풀었다.
멕시코, 캐나다, 미국, 벨라루스 친구들 사이에 나 혼자 비영어권이었다.

아침 9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향하는 인원이 둘에서 여덟으로 불어난 순간이었다.
광장을 감싼 열주는 베르니니가 세웠다.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끌어안는 모양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가운데 오벨리스크는 칼리굴라가 이집트에서 가져와 네로의 경기장에 세웠고, 나중에 통째로 이 자리로 옮겼다.

이 광장의 숫자는 알고 보면 하나같이 과하다.
| 항목 | 숫자 |
|---|---|
| 열주 기둥 | 284개 · 4겹으로 늘어서 있다 |
| 열주 위 성인상 | 140개 |
| 열주 완성 | 1656 – 1667년, 베르니니 |
| 오벨리스크 | 기원전 이집트에서 제작 · 칼리굴라가 로마로 |
| 오벨리스크 이송 | 1586년, 사람 900명과 말 140필 |
| 스위스 근위대 | 1506년부터 |
| 바티칸 시국 면적 | 0.44㎢ (세계 최소국) |
입구를 지키는 알록달록한 제복의 근위대가 그 스위스 근위대다. 지금도 스위스 국적자만 뽑는다.

여덟 명 중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이 일곱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다들 모국어가 영어였다.
그동안 미드로 다져온 리스닝 실력을 총동원했지만 실전은 훨씬 빨랐다.
농담은 한 박자 늦게 알아들었고, 빠르게 오가는 대화는 놓쳤다.
그래도 웃는 타이밍만은 어떻게든 맞췄다.
못 알아들은 대목은 표정과 분위기로 채웠다.
영어공부 좀 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뙤약볕 아래 한 시간
광장 입장 줄부터 만만치 않았다.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다.


예약보다는 줄을 많이 섰던 것 같다.

정면은 카를로 마데르노가 1612년에 완성했다. 폭이 백십오 미터, 높이가 사십오 미터다.
가운데 발코니가 새 교황을 발표하는 그 자리이고, 지붕 난간 위에는 예수와 사도들의 상이 열세 개 서 있다.
기둥이 굵어서 실물을 보면 도리어 크기가 잘 안 잡힌다. 사람이 붙어야 비로소 규모가 보인다.
입구 검문소에서 복장을 본다

입구에서는 소지품과 복장을 검사한다. 공항 검색대와 비슷한 절차를 한 번 거친다.
반바지 차림이던 일행 한 명은 그 자리에서 겉옷을 하나 더 걸쳐야 했다.
어깨와 무릎을 가려야 한다는 규정은 종교 시설이라 예외가 없다.

피에타 앞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실물로 봤다.
영화로 먼저 알았던 조각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안, 미사가 진행 중이던 시간*

두꺼운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성모와 예수의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담담했다.
피에타는 특정 작품 이름이 아니다. 죽은 예수를 안은 성모를 그린 형식을 그렇게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연민이라는 뜻이고, 같은 주제의 조각과 그림이 유럽 곳곳에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주제를 평생 네 번 다뤘는데, 스물넷에 만든 이 첫 작품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제목도 여기서 왔다.
미켈란젤로가 스물넷에 완성한 조각이고, 그가 자기 이름을 새겨 넣은 유일한 작품이다.
성모의 어깨띠에 라틴어로 서명이 들어가 있다.
유리로 막아둔 건 1972년에 한 남자가 망치를 들고 달려들어 성모의 팔과 코를 부순 뒤부터다.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 되어 이 자리 아래 묻혀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영어도 반 역사도 반만 이해한 채로 성당을 나왔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일행이 흩어졌다
투어가 끝나갈 무렵 일행이 흩어졌다.
월레스는 박물관에 더 남았고, 몸이 안 좋았던 친구는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붙어 있어야만 좋은 여행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간에 흩어진 덕분에 각자의 속도로 남은 오후를 쓸 수 있었고,
저녁엔 남은 친구들과 다시 모여 하루를 마무리했다.

바티칸 박물관 예약
| 항목 | 내용 |
|---|---|
| 현장 | 성인 20유로 |
| 온라인 예매 | 25유로(수수료 포함). 줄을 생각하면 이쪽이 낫다 |
| 예매 시점 | 방문일 60일 전부터 |
| 포함 범위 | 표 하나로 박물관 전체 + 마지막 코스인 시스티나 성당까지 |
| 무료 입장 | 매월 마지막 일요일 09:00 – 14:00 (최종 입장 12:30) |
| 가는 길 | 지하철 A선 오타비아노역 출구에서 도보 5분 |
예매는 공식 사이트, 전체 요금표는 요금 안내 페이지에 있다.
시스티나 성당은 박물관 동선의 맨 끝이다.
천장화는 미켈란젤로가 1508년부터 4년에 걸쳐 그렸다.
정면 벽의 「최후의 심판」은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다시 불려 와 그렸다.
내부는 촬영 금지다.
성 베드로 대성당 복장 규정
| 항목 | 내용 |
|---|---|
| 본당 입장 | 무료 |
| 복장 | 어깨·무릎을 가릴 것. 반바지·짧은 치마·민소매는 그 자리에서 돌려보낸다 |
| 대비 | 광장 노점에서 스카프를 팔지만 얇은 겉옷을 챙기는 편이 낫다 |
| 개방 | 여름(3월 말~10월 말) 07:00 – 18:30 · 겨울 07:00 – 18:00 |
| 주의 | 수요일 오전은 교황 알현으로 출입이 막힐 때가 많다 |
| 돔 | 승강기 10유로 · 계단 551개 8유로 |
지금 서 있는 대성당은 1506년에 착공해 1626년에 축성했다. 백이십 년이 걸렸다.
브라만테가 시작하고 미켈란젤로가 돔을 설계했으며, 광장은 베르니니가 마무리했다.

영어가 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놓친 대목은 표정과 웃음으로 채웠다.
여덟이 뭉쳤다 흩어지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붙어 다닌 시간보다 각자 흩어진 오후가 더 선명하다.
다시 로마에 간다면, 이번엔 예약도 스카프도 미리 챙겨서 좀 더 여유 있게 그 광장에 서보고 싶다.
여덟 명이 흩어진 뒤로는 테베레 강을 따라 혼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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