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모스크바 6] 한 번도 쏜 적 없는 대포와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종, 크렘린

모스크바 여행기 · 6편
쏜 적 없는 대포와
울린 적 없는 종이 나란히 있었다.
둘 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둘 다 제 일을 한 적이 없다.

모스크바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다. 이틀 동안 담 바깥만 돌던 크렘린에, 이날 드디어 들어갔다.

가장 높은 건 이반 대제 종탑이었다. 흰 벽에 금빛 돔을 얹은 게 성벽 어디서도 보였다.

성당 사이로 솟은 이반 대제 종탑
성벽 안 어디서도 이게 보인다
종탑을 등지고 선 광장에서
성당 단지 한가운데다

받은 지도를 펴 놓고 어디부터 볼지 정했다.

크렘린 지도를 펼쳐 든 채
지도를 펴 놓고 순서를 정했다

차르 대포 옆으로 옛 대포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하나하나 표면에 무늬가 새겨져 있다.

크렘린 성벽 아래 줄지어 놓인 옛 대포들
이런 대포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성벽 위 산책로로 나왔다. 붉은 벽이 눈높이에서 이어졌다.

크렘린 붉은 성벽을 따라 난 산책로
성벽 안쪽 길은 한산했다

큰 기념물 하나는 공사 가림막에 통째로 싸여 있었다.

공사 가림막에 싸인 기념물
통째로 싸여 있어서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거리로 나오니 사람이 빽빽했다. 그날이 모스크바 868주년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축제 인파
그날이 이 도시 868주년이었다

성벽 안은 성당 단지였다

아침에 전날 만난 사람과 다시 만나 크렘린으로 갔다.

크렘린 성벽 안쪽 길에서 찍은 사진
이 담 안쪽에 이날 처음 들어왔다

붉은 성벽 안에 들어가면 정부 청사만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는 성당이 여러 채 모여 있었다.

붉은 벽돌 성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첨탑
이 담 바깥만 이틀을 돌았다

황금 돔을 얹은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러시아 황제들의 대관식과 장례가 여기서 치러졌다.

황금 돔이 여러 개 얹힌 크렘린 안의 성당
성벽 안에 성당이 여러 채 모여 있다

가운데에는 흰 벽에 금빛 돔을 올린 종탑이 솟아 있었다.

이반 대제 종탑이라고 부르고, 오랫동안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흰 벽에 금빛 돔을 얹은 이반 대제 종탑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성당 안에도 들어갔다.

촬영이 금지돼 사진은 없지만, 벽과 천장이 전부 성화로 덮여 있고 바닥에는 관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스에서 본 정교회와 문양이 비슷했다. 성호를 긋는 방향이 가톨릭과 반대인 것도 같았다.

한 번도 쏜 적 없는 대포

광장 한쪽에 거대한 청동 대포가 놓여 있었다.

포구가 사람 상체가 들어갈 만큼 컸다. 십육 세기에 만들었고 이름이 그대로 황제의 대포다.

사람 상체가 들어갈 만한 대포 포구를 정면에서 본 모습
포구에 상체가 들어간다

그런데 이 대포는 실전에서 발사된 기록이 없다.

앞에 쌓인 포탄도 나중에 장식으로 붙인 것이라 포신 크기와 맞지 않는다.

받침대 위에 놓인 거대한 청동 대포와 그 앞의 포탄들
앞의 포탄은 나중에 붙인 장식이다

애초에 쏘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크기 자체가 목적이었다.

황제의 대포와 포탄 앞에서 찍은 사진
포탄 크기가 이만하다
차르 대포
Царь-пушка · Tsar Cannon
소보르 광장에 그대로 전시 중
가격
크렘린 통합권에 포함
주소
크렘린 소보르 광장 (Соборная площадь)
1586년에 청동으로 부었다 · 구경 890mm, 무게 39톤으로 구경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다 · 실전에 쓴 적이 없고 앞에 놓인 포탄도 장식이라 발사가 안 된다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종

몇 걸음 더 가니 이번에는 종이 있었다.

높이가 육 미터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고, 이것도 이름이 황제의 종이다.

거대한 청동 종 앞에서 찍은 사진
깨져 나간 조각이 옆에 그대로 놓여 있다

옆에 커다란 조각 하나가 따로 떨어져 놓여 있었다. 그 조각 하나만 십 톤이 넘는다.

그 앞에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십 톤짜리 조각을 두 팔로 받치는 자세다.

종에서 떨어져 나온 커다란 파편이 옆에 놓여 있다
떨어져 나온 이 조각만 십 톤이 넘는다
차르 종
Царь-колокол · Tsar Bell
떨어져 나간 조각을 옆에 세워 둔 채로 전시 중
가격
크렘린 통합권에 포함
주소
이반 대제 종탑 아래, 크렘린 소보르 광장
1735년에 부었고 무게 202톤 · 주조 뒤 화재가 나 물을 끼얹었다가 11톤짜리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
모스크바 크렘린
Московский Кремль · Moscow Kremlin
2026년 기준 개관 중
영업
10:00 - 17:00 (겨울철 기준) · 무기고는 10:00·12:00·14:30·16:30 회차제
가격
통합권 1,100루블 · 할인 600루블 · 무기고는 별도
주소
붉은광장 서쪽, 모스크바
휴무
목요일
성벽 안쪽은 성당이 모여 있는 단지다. 차르 대포와 차르 종은 소보르 광장 쪽이라 통합권으로 본다. 성당 내부는 촬영 금지

십팔 세기에 주조가 끝나고 아직 식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가 났다.

불을 끄려고 뿌린 찬물에 뜨거운 청동이 급히 식으면서 종이 갈라졌다.

그래서 이 종은 완성된 뒤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 매달린 적조차 없다.

쏜 적 없는 대포 옆에 울린 적 없는 종이 있었다.

둘 다 세계에서 제일 크고, 둘 다 제 기능을 해 본 적이 없다.

크렘린에서 제일 유명한 물건 두 개가 그렇다는 게 오래 남았다.

나오는 길에 축제가 있었다

성벽을 나오니 거리에 사람이 가득했다. 도시 탄생 기념 행사 마지막 날이었다.

사흘 내내 이 축제 때문에 광장에 못 들어갔는데, 마지막 날에는 그 인파 자체가 구경거리였다.

*사흘 내내 이 인파가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축제 기간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행렬
사흘 내내 나를 막던 그 축제다

행사 직원 한 사람이 무슨 축제인지 설명해 줬다. 도시가 태어난 지 868년이 된 해라고 했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열주가 늘어선 극장이 나왔다. 볼쇼이 극장이었다.

열주가 늘어선 볼쇼이 극장 정면
볼쇼이 극장 정면, 기둥이 여덟 개다
볼쇼이 극장
Большой театр · Bolshoi Theatre
2026년 기준 공연 중 · 표는 공식 사이트에서 미리 산다
가격
공연에 따라 다르다 · 발레는 몇 천 루블부터
주소
극장 광장 1, 모스크바 (Театральная площадь, 1)
1776년에 시작한 극장이다 · 「볼쇼이」는 러시아어로 「큰」이라는 뜻이고, 정면 여덟 기둥 위에 아폴론의 사두마차가 올라가 있다

공연을 볼 시간은 없었다.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타야 했다.

공항 가는 열차를 탔다

숙소에서 배낭을 찾아 공항 직행열차를 탔다.

노란 식탁이 놓인 호스텔 공용 주방
사흘 묵은 방을 정리하고 나왔다
가격표가 붙은 러시아 마트 과자 진열대
마지막으로 과자를 몇 개 더 담았다

붉은색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와 있었다. 사흘 전 이 열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반대 방향이다.

승강장에 서 있는 붉은색 공항 직행열차
사흘 전 이 열차로 들어왔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식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루 종일 했다.

공항에서 밥을 먹었다.

통감자를 반으로 갈라 치즈를 비벼 넣은 것이었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흔히 먹는 메뉴라고 했다.

반으로 가른 통감자에 치즈를 비벼 넣은 공항 식사
통감자를 갈라 치즈를 비벼 넣었다

같이 시킨 연어는 실패였다. 감자는 괜찮았다.

비행기에 올라 기내식을 먹고 잠들었다. 환승 한 번만 하면 서울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크렘린 관람

입장권이 구역별로 나뉜다. 성당 광장, 무기고(아르모리 체임버), 다이아몬드 기금이 각각 별도 표다.

성당 광장 표로 황제의 대포와 종을 본다.

무기고는 시간 지정제다. 정해진 회차에만 입장하므로 미리 시간을 정해 표를 산다.

성당 내부는 촬영 금지다. 광장과 외부는 촬영이 되지만 성당 안은 안 된다.

행사가 있으면 통제된다. 국경일이나 도시 기념행사 기간에는 구역이 닫히거나 접근이 제한된다.

붉은광장과 마찬가지다.

공항 가는 법

아에로엑스프레스가 가장 확실하다. 시내 기차역과 각 공항을 직행으로 잇고 도로 정체와 무관하다.

공항마다 출발역이 다르다. 도모데도보는 파벨레츠키역, 셰레메티예보는 벨라루스키역, 브누코보는 키옙스키역에서 탄다.

공항을 확인하고 역을 정한다.

시간을 넉넉히 잡는다. 열차 자체는 사십 분 안팎이지만 시내에서 출발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이 따로 든다.

공항 식사는 통감자가 무난하다. 러시아 공항 푸드코트에서 흔히 파는 메뉴이고 값도 비싸지 않다.

다녀와서

모스크바에서 사흘을 보내고 마지막 날에야 크렘린 안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본 것이 쏜 적 없는 대포와 울린 적 없는 종이었다는 게, 이 도시를 요약하는 것 같기도 했다.

크기로 압도하려던 물건들이 정작 제 일은 못 하고 몇 백 년째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보러 온다.

공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는 이제 집에 간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여행이 아직 사흘 더 남았다는 건 몰랐다.

붉은광장 옆. 성벽 안 소보르 광장에 차르 대포와 차르 종이 있다.

환승지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그 실수의 값이 40만 원이었다.

모스크바 · 6편 중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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