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 바르셀로나 4] 성당 벽화를 통째로 떼어 와 미술관에 붙여놨다
벗겨내 옮겨왔다.
지금 미술관 벽에 붙어 있다.
미술관 위층을 다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 있던 벽화들은 원래 이 건물 것이 아니었다. 피레네 산속 성당 벽에서 뜯어 온 것이다.
위층을 마저 봤다
내려가기 전에 현대미술 층에 남은 걸 봤다.

그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구와 공예가 같은 비중이었다.


지금 걸어온 광장이 백 년 전 그림에 그대로 있었다.


층을 옮길 때마다 시대가 통째로 바뀌었다.


그러다 포스터 한 장 앞에서 멈췄다.

스페인 내전 때 카탈루냐 인민전선이 만든 선전물이다. 미술관에 걸린 다른 작품들과 같은 시대인데 용도가 완전히 다르다.
바르셀로나는 그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도시였고, 그다음 사십 년 동안 카탈루냐어를 공식적으로 못 쓰게 됐다. 지금 이 도시 간판에 카탈루냐어가 먼저 오는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피카소는 열 살 무렵 바르셀로나로 와서 십 대와 이십 대 초를 여기서 보냈다. 이 도시에 그의 미술관이 따로 있다.


아래층은 완전히 다른 시대였다
계단을 내려가니 조명이 어두워지고 벽이 흙색으로 바뀌었다.

벽화가 벽에 걸려 있는데, 액자가 없다. 벽 자체가 작품이다.
이게 이 미술관의 정체다.
1919년에 벌어진 일
20세기 초, 피레네 산속 작은 성당들에 남아 있던 로마네스크 벽화가 심각하게 상해가고 있었다. 사람이 거의 안 사는 산골이라 관리하는 이도 없었다.
그러던 1919년, 한 미술상이 카탈루냐 수도원 벽화를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팔아넘겼다.
이 일이 카탈루냐를 움직였다. 자치정부가 나서서 이탈리아 복원 전문가들을 불러들였고, 성당 벽에서 그림층만 벗겨내 천에 옮기는 방식으로 벽화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이어진 작업이었다.
그렇게 떼어 온 것들이 지금 이 아래층에 있다.

천에 있던 문양이 벽화로 넘어간 셈이다.


이 반원형 벽화가 이 미술관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다. 성당 안쪽 제단 위 반구형 천장에 그려져 있던 그림인데, 그 곡면을 그대로 살려 미술관 안에 다시 세워놨다.
원본이 그려진 게 1123년이다. 구백 년 전 그림인데 색이 아직 남아 있다.


이 시기 십자가상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옷을 갖춰 입고 정면을 응시한다. 죽음보다 승리를 그렸다. 표현이 바뀌는 건 몇 세기 뒤다.

옥상에 올라갔다
전시를 다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미술관을 나오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길과 다른 쪽으로 잡았다.


이 미술관 보는 법
아래층부터 볼지, 위층부터 볼지 — 시대순으로 보려면 로마네스크(아래층) → 고딕 → 르네상스 → 현대미술(위층) 순서다. 나는 반대로 봤는데, 그러면 화려한 걸 먼저 보고 소박한 걸 나중에 보게 돼서 인상이 약해진다. 아래층부터 권한다.
로마네스크 층이 이 미술관의 이유다 — 세계 어디에도 이만한 로마네스크 벽화 컬렉션이 없다.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면 여기만 봐도 된다.
반원형 벽화를 놓치지 말 것 — 성당 천장 곡면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실이 여럿 있다. 안으로 들어가 올려다보는 구조라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옥상 전망대 — 별도 요금이지만 몬주익에서 가장 높은 전망 지점이다. 미술관 표에 포함되는 시기도 있으니 매표소에서 물어보는 게 좋다.
소요 시간 — 다 보려면 반나절이다. 현대미술 층만 한 시간, 로마네스크 층만 한 시간을 잡으면 된다.
미술관을 나와 항구 쪽으로 내려갔다. 그날 저녁에 이 도시에서 한국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음 편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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