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런던 5] 그날 처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밖에서만 봤다.
문을 통과한 데가 여기다.

다리를 건너 강 북쪽으로 돌아왔다.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강에서 도심으로 올라왔다

강변에 커다란 석조 건물이 있었다. 기둥이 늘어서 있고 창문이 규칙적으로 뚫린, 관공서처럼 생긴 건물이다.

큰길로 올라오니 버스가 다시 보였다. 아침에 역에서 나올 때부터 계속 지나가던 그 붉은 버스다.
과자 하나를 샀다

가게에서 과자를 하나 샀다. 한국에서도 파는 그 오레오다.
여행하면서 마트에 들어가면 아는 물건을 찾게 된다. 포장이 조금씩 다른데 안에 든 건 같다. 그게 이상하게 안심이 된다.
점심이라고 할 만한 걸 안 먹었다. 그날 시간표에 밥 먹는 시간이 없었다.
코벤트 가든

붉은 철제 아치에 이름이 크게 붙어 있었다. 코벤트 가든이다.
원래 청과물 도매시장이었다. 시장이 외곽으로 옮겨 가고 건물만 남았는데, 그걸 헐지 않고 상점가로 바꿨다.

안은 유리 지붕이었다. 철골에 유리를 얹어서 비가 와도 젖지 않고 낮에는 밝다.
십구 세기에 시장으로 지으면서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은 그 아래에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들어가 있다.

아래층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위층 난간에서 내려다보게 돼 있어서 공연이 있으면 자연히 관객석이 생긴다.
실제로 아래에서 현악 연주를 하고 있었고 위아래로 사람들이 서서 봤다.
미니어처 가게가 있었다

상점 유리창에 작은 병사 인형들이 배치된 디오라마가 있었다.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세트였다.

선반마다 색칠한 것들이 있었다. 손으로 하나씩 칠하는 취미이고, 이 나라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진 장르다.
이 가게는 지하철역에 딸린 반지하 상가 안에 있었다. 런던 도심은 역 하나에 지하 통로가 여러 갈래로 뻗고 그 벽을 따라 작은 가게가 줄지어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어가게 되는 구조다.
게임 개발 일을 하다가 여행을 나온 참이었다. 그래서 이런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진열대마다 다른 세계관이 놓여 있고, 색칠 상태가 다 다르다.
사지는 않았다. 배낭에 넣을 자리가 없었고 값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한국에도 이 브랜드의 정식 매장이 생겼다. 그때 런던 지하 통로에서 유리창 너머로 봤던 걸 이제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다.
유리창에 한국어가 있었다

식당 유리창에 피시앤칩스 값이 적혀 있었다. 9파운드.
그 아래로 같은 말이 다섯 나라 말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스페인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한국어가 적혀 있는 걸 보고 잠깐 멈춰 섰다. 두 달 넘게 다니면서 내 나라 글자를 상업 간판에서 본 게 몇 번 없었다.
9파운드면 그때 만육천 원쯤이다. 안 들어갔다.
극장가를 지났다

극장 정문에 라이온 킹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 구역이 웨스트엔드다.
뮤지컬 극장이 몇 블록에 몰려 있고 각 극장이 한 작품을 몇 년씩 건다.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뮤지컬의 두 축으로 꼽힌다.
표를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날 저녁에 나는 이 도시에 없을 예정이었다.
지하철은 안 탔는데 역 사진은 찍었다

지하철역 입구를 지났다. 붉은 원에 파란 가로줄이 그어진 그 표지가 붙어 있다.

개찰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 교통카드를 안 사기로 했으니 이 문은 그날 나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안까지 들어가서 개찰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나왔다.
앞 편에서 버스를 안 타면서 버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여기서는 지하철을 안 타면서 개찰구 사진을 찍었다.
안 쓰기로 한 것들을 계속 찍고 있었다.

표지 뒤에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벽에 나무 골조가 드러난 튜더 양식 건물인데, 그 앞에 지하철 표지가 서 있다.
사백 년 된 건물과 백 년 된 지하철 표지가 한 프레임에 들어간다. 이 도시는 이런 조합이 흔하다.
말 탄 경찰이 지나갔다

광장을 지나는데 말 탄 경찰이 나타났다. 두 명이 나란히 천천히 갔다.
보여주기용이 아니라 실제 순찰이다. 사람이 많은 구역에서는 말 위가 시야가 넓어서 아직 쓴다.
돔이 보였다

길 끝에 커다란 돔이 나타났다. 세인트폴 대성당이다.
십칠 세기 런던 대화재로 옛 성당이 타버린 뒤 새로 지었다. 삼십 년 넘게 걸렸다.
이차대전 공습 때 주변이 불바다가 됐는데 이 돔은 남았다. 폭격 속에 서 있는 돔 사진이 그 시절 영국의 상징이 됐다.
그날 처음으로 안에 들어갔다
문을 통과했다.
그날 아침부터 계속 밖에서만 봤다. 버킹엄 궁전은 창살 앞에서 돌아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정면만 보고 지나갔고, 런던아이는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했다.
포르투갈에서도 그랬다. 상 조르제 성 매표소에서 돌아섰고, 렐루 서점 줄에서 빠져나왔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밖에서만 봤다.
그런데 여기는 들어갔다.

안은 밖보다 밝았다. 창이 높은 데 나 있어서 빛이 위에서 떨어진다.
아치가 겹겹이 이어지고 그 끝에 금색이 보였다. 천장에 샹들리에가 낮게 걸려 있었다.

바닥이 검은흰 마름모였다. 이 성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이 바닥이다.
돌을 마름모로 잘라 번갈아 깔았다. 걸으면서 아래를 보면 무늬가 계속 어긋나 보인다.
표를 사고 들어간 건 아니다. 문 안쪽까지 들어갔다가 입장료를 받는다는 걸 알고 돌아 나왔다.
이 여행에서 그게 습관이었다. 입장료를 받으면 안 들어간다. 대단한 원칙이 있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랬다.
퇴사하고 나온 여행이었고 예산이 정해져 있었다. 한 곳에 입장료를 내면 그다음 며칠 밥값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매표소 앞에서 값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게 몸에 뱄다.
며칠 전 카디프 성 앞에서도 그랬고, 이날 오후 런던탑 앞에서도 그랬다. 여기서는 문 안쪽 로비까지가 무료였고 딱 거기까지 봤다.
그래도 사진에 안이 찍혀 있다. 그날 문 안쪽까지 들어간 큰 건물이 여기 하나다.
밖으로 나와서 다시 봤다

밖으로 나와서 정면을 다시 봤다. 기둥이 두 층으로 서 있고 그 위에 삼각형 박공이 얹혀 있다.

골목 끝에서 돔이 다시 보였다. 유리와 철로 지은 현대 건물 사이로 삼백 년 된 돔이 솟아 있다.
이 도시는 오래도록 이 돔보다 높은 건물을 못 짓게 했다. 지금은 규제가 풀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섰지만, 특정 지점에서 돔이 보이는 시야는 아직 법으로 지킨다.
다리를 하나 더 건넜다

성당 뒤로 내려가니 다리가 하나 더 있었다. 사람만 다니는 다리다.
밀레니엄 브리지라고 부른다. 이천 년에 맞춰 열었는데, 개통 첫날 사람이 몰리자 다리가 옆으로 흔들렸다. 이틀 만에 닫고 이 년 동안 고쳐서 다시 열었다.
지금은 안 흔들린다. 건너면 강 건너 발전소를 개조한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세인트폴 대성당
관람 표에는 돔 위 세 개 갤러리가 포함된다. 속삭임이 벽을 타고 반대편까지 들리는 갤러리가 그중 하나다.
관람 말고 다른 목적이라면 저녁 예배 시간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성가대가 부르는 걸 들으며 앉아 있는 자리라 관광과는 성격이 다르다.
밀레니엄 브리지로 이어져서 강 건너 미술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코벤트 가든
거리공연은 오디션을 거친 공연자만 정해진 자리에서 한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시간표가 있다.
주변이 웨스트엔드 극장가라 뮤지컬 보기 전후로 들르기 좋다. 지하철 코벤트 가든역은 승강기로만 나갈 수 있어서, 붐빌 때는 옆 역에서 걸어오는 게 빠르다.
안 들어간 건물의 외벽들
그날 하루를 사진으로 되짚으면 안 들어간 건물의 외벽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문을 통과한 게 이 성당 하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찍은 사진이 몇 장 안 되는데도 다른 사진들보다 오래 본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것은 다른 종류의 기억이다. 밖은 형태가 남고 안은 공기가 남는다. 그날 열몇 군데를 지나면서 공기가 남은 데는 여기뿐이었다.
베이커 스트리트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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