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런던 2] 창살 밖에서 봤다
창살 앞에 섰다.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걸어서 십오 분. 첫 목적지가 버킹엄 궁전이었다.
안내판을 읽었다

담을 따라가다 보니 붉은 안내판이 서 있었다. 궁전 내부 관람에 뭐가 포함되는지 적혀 있었다.
이 궁전은 여름 몇 달 동안만 안을 공개한다. 여왕이 스코틀랜드에 가 있는 기간에 맞춰서다. 그때 스테이트 룸이라고 부르는 접견실 구역을 표를 받고 연다.
읽고 지나갔다.
값을 안 적어놓겠다. 그때 봤고 계산했고 안 들어갔다는 것만 쓴다. 아홉 시간뿐인 하루에 한 건물 안을 도는 데 두 시간을 쓸 수는 없었고, 값도 그 시간만큼 나갔다.
이 여행에서 안 들어간 데를 세어보면 꽤 된다. 포르투에서 서점을 안 들어갔고 리스본에서 성을 안 올라갔다. 벨렝 수도원은 밖에서만 봤다. 여기서 하나가 더 붙었다.
창살 앞에 섰다

사람들이 창살에 붙어 있었다. 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넣고 찍는 사람, 창살을 잡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
창살이 검고 위쪽에 금색 장식이 붙어 있다. 그 창살이 궁전 정면 전체를 가로막고 있어서 어느 각도로 찍어도 세로줄이 들어간다.

안쪽 바닥이 붉었다. 마당이 넓고 텅 비어 있는데 그 바닥만 붉은색이다.
생각보다 밋밋했다

건물이 밋밋했다.

가로로 길고 층이 낮다. 창문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고 장식이 거의 없다. 회색 돌을 반듯하게 쌓아 올린 상자 같았다.
두 달 동안 유럽에서 성당과 궁전을 계속 봤다. 빈도 프라하도 부다페스트도 마드리드도 정면에 조각을 잔뜩 붙여놨다. 그러고 나서 이걸 보니 심심했다.
이 건물이 원래 궁전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서 그렇다. 개인 저택이던 걸 사서 왕실이 쓰기 시작했고, 앞면은 나중에 덧붙였다. 화려하게 짓겠다는 계획으로 시작한 건물이 아니다.
다들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광장에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다들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건물이 밋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그쪽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걸어온 이유가 이 건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창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금색은 궁전 앞에 있었다

궁전 정면 맞은편에 커다란 기념비가 서 있었다. 이게 더 눈에 들어왔다.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다. 흰 대리석을 층층이 쌓고 꼭대기에 금색 조각을 올렸다.

기단이 넓어서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궁전은 서서 보고 기념비는 앉아서 본다.

꼭대기 조각만 금색이다. 날개를 펴고 서 있는 상인데 흐린 하늘 아래서도 그것만 반짝였다.

아래쪽은 흰 대리석 조각이 둘러싸고 있다. 사람 형상이 여럿 앉거나 서 있는데 각각 뭔가를 들고 있다.

기단 아래에 물이 고여 있었다. 분수인데 물이 세게 나오지 않고 수반에 잠잠하게 차 있었다.

기념비에서 궁전 쪽을 다시 봤다. 이 각도가 사진으로는 제일 낫다. 창살이 멀어지고 건물 전체가 들어온다.
길이 곧게 뻗어 있었다

기념비에서 동쪽으로 넓은 길이 곧게 뻗어 있었다. 가로수가 양쪽에 줄지어 서 있고 차선이 넓다.
왕실 행사 때 행렬이 지나는 길이다. 그래서 곧고 넓다. 평소에는 그냥 차가 다닌다.
바닥이 붉은빛이 도는데 궁전 앞마당과 같은 색이다. 길과 마당을 하나로 이어 보이게 만든 것이다.
옆이 바로 공원이었다

궁전 한쪽이 바로 공원이다. 담을 사이에 두고 저쪽은 왕실이고 이쪽은 잔디밭이다.

공원이 궁전과 붙어 있다. 원래 왕실 사냥터였던 걸 시민에게 열었다. 런던 도심에 이런 공원이 여러 개 붙어 있어서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
지도를 보니 다음 목적지까지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됐다. 도로로 돌아가는 것보다 짧았다.

잔디에 사람들이 그냥 앉아 있었다. 돗자리를 깐 것도 아니고 잔디에 바로 앉거나 누워 있었다.
런던 공원은 잔디에 들어가도 된다. 출입 금지 팻말이 없다.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은 정해진 요일과 시각에 열린다. 날씨나 행사에 따라 취소되기도 하니 당일 아침에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게 낫다.
사진은 창살 앞보다 빅토리아 기념비 쪽에서 찍는 게 낫다. 창살이 멀어져서 건물 전체가 들어온다.
내부를 안 볼 거면 삼십 분이면 충분하다. 옆이 바로 공원이라 다음 목적지로 이어 걷기 좋다.
세인트제임스 파크와 그린 파크
궁전에서 웨스트민스터 쪽으로 갈 때 도로 대신 공원을 가로지르면 짧다. 걸어서 십오 분이면 국회의사당이 나온다.
의자는 유료인 구역이 있으니 잔디에 앉는 게 낫다. 다람쥐와 물새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궁전보다 오래 본 기념비
버킹엄 궁전에서 제일 오래 본 건 궁전이 아니라 그 앞 기념비였다.
건물은 십 분쯤 보니 더 볼 게 없었다. 창살이 있어 가까이 못 가고, 안은 표를 사야 하고, 정면은 밋밋했다.
그런데 그게 실망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걸어와서 창살 앞에 서봤다는 것으로 그날의 첫 항목이 끝났고, 시계는 아직 정오 무렵이었다.
지도에 표시된 곳이 아직 열 몇 개 남아 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다음으로 갔다.
사원과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한자리에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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