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카디프 2] 입장료를 보고 성 앞에서 돌아섰다
안 들어갔다.
제일 오래 찍은 게 이 성이다.

이틀 전 이 도시를 버스로 지나갔다. 스완지로 가는 길이었고 시간이 빠듯해서 내리지 못했다.
그때 창밖으로 성벽이 스쳐 갔고, 조금 더 가서 경기장이 스쳐 갔다. 다음에 다시 오기로 마음에 적어뒀는데 그게 이틀 만이었다.
쇼핑몰 안에 자동차 매장이 있었다

성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쇼핑센터부터 들어갔다.
거기 자동차 매장이 있었다. 대리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쇼핑몰 통로 한복판에 전시장을 차려놨다. 옷가게와 신발가게 사이에 검은 승용차가 놓여 있었다.
직원이 앉아보라고 했다.

먼저 운전석에 앉은 건 스튜어트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핸들을 잡았다.

다음은 모네이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핸들을 잡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살 사람 같은 자세였다.

마지막이 나였다. 창문에 팔을 걸치고 앉았다.
셋 다 살 생각이 없었다. 직원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쇼핑센터가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

옷가게에서는 가방을 한참 봤다. 사지는 않았다.

이 쇼핑센터가 카디프에서 제일 크다. 웨일즈 전체에서도 손꼽힌다.
한국에서는 큰 쇼핑몰이 도시 외곽이나 역세권 신도시에 있다. 여기는 구도심 한가운데다. 성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이만한 게 있다.

밖으로 나오니 오래된 건물이 이어졌다. 목조 골조가 벽에 드러난 집들이다. 그 일층에 지금 가게가 들어가 있다.
이번에는 문으로 들어갔다

걸어서 성 앞에 도착했다.
이틀 전에는 이 문 앞을 버스가 지나갔다. 창 너머로 사람들이 문으로 들어가는 걸 봤고,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문 앞까지 걸어갔다.

표지석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돌에 파서 금색을 넣은 글자였다.
그 옆이 매표소였다. 구역별로 티켓이 나뉘어 있고, 차를 세운 값도 따로 붙는다.
값을 보고 셋이 서로를 봤다. 그리고 안 들어가기로 했다.
나를 태워다 준 두 사람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 여기 오려고 휴가를 낸 것도 아니다. 나 때문에 온 것이다. 그 앞에서 내가 표를 사자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날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안 들어가는 쪽을 골랐다. 그리고 이건 뒤에 계속 반복된다. 런던에 가서도 거의 다 밖에서만 봤다.
성벽 너머로 천막이 보였다
성벽이 낮은 구간이 있어서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였다.
안쪽이 넓은 잔디밭이었다. 성이라고 해서 건물이 빽빽할 줄 알았는데 가운데가 통째로 비어 있었다.
그 잔디밭에 파란 줄무늬 천막이 여러 개 세워져 있었다. 그날 무슨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천막 사이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성벽은 그 잔디밭을 빙 두르고 있었다. 벽 위에 총안이 파여 있는데, 그 안쪽에서 사람들이 소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성은 로마 시대 요새 자리에 노르만인이 다시 지었고 그 뒤로도 계속 고쳐 썼다. 이천 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용도만 바뀐 셈이다. 지금은 시민들이 들어와 앉는 잔디밭이다.
우리는 그 잔디밭을 담장 밖에서 봤다.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밖에 있는 우리 사이에 표 한 장 차이가 있었다.

난간 너머 성 안 잔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명이 찍고 자리를 바꾸고 또 찍고, 그렇게 여러 장이 남았다.
안 들어갔는데도 이 앞에서 찍은 사진이 그날 제일 많다.

그다음은 정문 앞 표지석 옆에서 찍었다. 이틀 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다.
성 한쪽에 시계탑이 있었다

성벽 한쪽 끝에 시계탑이 솟아 있었다. 다른 부분보다 훨씬 정교하게 지어져 있어서 시대가 달라 보였다.
실제로 그렇다. 십구 세기에 이 성을 소유한 집안이 돈을 들여 새로 지은 부분이다. 중세 성벽에 빅토리아 시대 저택을 붙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성은 한 덩어리로 안 보인다. 로마 것과 노르만 것과 십구 세기 것이 한자리에 겹쳐 있다.

정문 아치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아치가 두껍고 그 아래가 시원했다. 거기까지는 표가 없어도 된다.
경기장도 창밖으로 스쳤던 곳이다

성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에 경기장이 있다. 이것도 이틀 전에 창밖으로 봤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크기가 실감 났다. 지붕을 잡아주는 흰 기둥이 네 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관중석이 둘러 있다. 칠만 명이 넘게 들어간다.
이 경기장은 웨일즈 럭비 대표팀의 홈이다. 축구 경기도 하고 공연도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여기는 럭비장이다.
위치가 특이하다. 강 바로 옆 도심 한가운데다. 스완지의 축구장이 외곽에 있어서 버스를 잘못 타면 삼십 분을 헤매는 것과 대조된다. 여기는 시내를 걷다 보면 그냥 나온다.

경기장 앞에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그 옆에서 또 사진을 찍었다. 동상 자세를 따라 하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식으로 여러 장을 찍었다.
이틀 전에 나는 이 앞을 지나면서 축구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를 못 봤다. 그러고 나서 이 도시에 다시 와서, 경기가 없는 경기장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
도심은 차가 안 다녔다

카디프 중심가는 차가 안 들어온다. 길 전체가 보행자 전용이라 가운데로 걸어 다닌다.
가로등마다 붉은 배너가 걸려 있었다. 도시 전체가 같은 색으로 맞춰져 있다.

상가 사이에 교회 첨탑이 솟아 있었다. 오백 년 넘은 탑인데 양옆이 옷가게다.
이 도시는 오래된 것과 새것을 나란히 둔다. 성 옆이 쇼핑몰이고 교회 옆이 상가다. 구분해서 보존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쓴다.
주황색 사물함이 서 있었다

쇼핑몰 안에 주황색 사물함이 줄지어 있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여기서 찾아가는 무인 보관함이다.
지금은 흔한데 그때는 처음 봤다. 집에서 못 받으면 이런 데로 받는다는 발상 자체가 새로웠다.
성과 경기장을 보고 나서 제일 오래 들여다본 게 이 주황색 상자였다. 여행에서 놀라는 지점이 늘 유적 쪽인 건 아니다.
카디프 성
도심 한복판이라 걸어서 간다. 기차역에서 십 분 거리다.
안뜰과 성벽은 티켓으로 들어가고, 저택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볼 수 있다.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건 정문과 성벽과 시계탑까지다.
우리는 여기까지만 보고 돌아섰다. 그것만으로도 사진은 충분히 나왔다.
행사가 자주 열려서 잔디밭에 천막이 서 있는 날이 많다. 성을 조용히 보고 싶으면 일정을 확인하는 게 낫다.
밀레니엄 스타디움
성에서 걸어서 오 분이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외관은 볼 수 있고 투어를 신청하면 안까지 들어간다.
럭비 경기가 있는 날 카디프는 도시 전체가 붉은색이 된다. 그날 표를 못 구했어도 펍에서 보는 것만으로 분위기가 다르다.
창밖으로만 봤던 곳에 들어갔다
이틀 전에는 버스가 안 멈춰서 창밖으로 봤다. 그때는 아쉬웠고 다음에 오자고 적어뒀다.
그런데 다시 온 게 내 계획으로 된 게 아니다. 표를 잃어버려서 만난 사람들이 차로 데려다준 것이다.
이 도시에 두 번 왔는데 두 번 다 내가 정한 일정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스완지로 가는 길에 지나갔고, 두 번째는 남이 태워다 줘서 왔다.
이 여행에서 입장료를 낸 곳이 손에 꼽는다. 성도 안 들어갔고, 며칠 뒤 런던에서도 거의 다 밖에서만 봤다.
그래서 남은 사진이 전부 바깥 풍경과 사람 얼굴이다. 안에서 찍은 전시물 사진이 없다.
지금 보면 그게 낫다. 성 안뜰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검색하면 나온다. 그 앞에서 셋이 웃고 있는 사진은 그날 아니면 없다. 이틀 전에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도심에서 물가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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