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홍콩 4] 야경 보러 갔는데 해 지고 20분이 제일 예뻤다

홍콩 여행기 · 4편
가장 예뻤던 건
새까만 밤이 아니었다.
하늘에 아직 푸른 기가 남은
딱 그 30분이었다.

정상에 내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부터 꺼냈다.

올라갔더니 아직 낮이었다

해가 지기 전 흐린 하늘 아래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다본 스카이라인
도착했을 땐 아직 밝았다

도착했을 때 해가 아직 안 졌다.

하늘이 흐려서 마천루가 뿌연 낮빛에 잠겨 있었다.

야경을 보러 왔는데 눈앞에 있는 건 흐린 낮 풍경이었다.

한 시간을 줄 서느라 늦은 게 아니라, 오히려 일찍 온 셈이었다.

그런데 이게 결과적으로 맞는 순서였다.

낮 풍경을 먼저 봐야 밤에 뭐가 달라지는지 보인다.

피크타워 안 피크마켓 안내 사인
정상도 그대로 상가다

기다리는 동안 피크타워 안을 돌았다.

피크마켓이라는 기념품·먹거리 구역이 있었다.

가격표에 12홍콩달러짜리가 붙어 있었는데, 뭘 살 생각은 없었고 그냥 시간을 보냈다.

혼자 왔으니 인증샷은 남한테 부탁해야 했다. 옆에 서 있던 외국인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받아 보니 내 얼굴만 크게 나오고 뒤에 있어야 할 스카이라인이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저 배경인데 배경이 없었다. 한 번 더 부탁했다.

두 번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고맙다고 하고 받았다.

혼자 다니면 사진이 이렇게 된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이후로는 남한테 부탁하기 전에 배경부터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됐다.

저녁은 편의점 샌드위치였다

편의점 햄에그 샐러드 샌드위치 포장
저녁은 이걸로 때웠다

배가 고팠는데 피크타워 식당은 비쌌다.

그래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샀다.

세븐일레븐 자체 브랜드 햄에그 샐러드 샌드위치, 한자로 화퇴단사율삼문치라고 적혀 있었다.

손에 든 코카콜라 라이트 유리병
백만 불 야경 앞에서 콜라 한 병

그리고 코카콜라 라이트 유리병 하나. 한국에서는 잘 안 보이던 병 모양이라 사진을 세 장이나 찍었다.

세계 3대 야경이라는 데 앉아서 삼각 샌드위치를 먹었다.

첫 해외여행의 첫날 저녁이 이거였는데, 이상하게 초라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앞에 도시가 통째로 깔려 있으면 뭘 먹든 상관이 없다.

주위는 대부분 일행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인, 가족, 단체 관광객. 혼자 샌드위치를 뜯고 있는 사람은 잘 없었다.

그게 신경 쓰일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막상 앉아 보니 편했다.

사진을 몇 장 찍든, 얼마나 오래 서 있든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혼자 다니는 게 나한테 맞는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이 여행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혼자서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였는데, 첫날 저녁에 이미 답이 반쯤 나온 셈이다.

불이 하나씩 켜졌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과 불이 켜지는 빌딩들
불이 하나씩 켜진다

해가 넘어가면서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러자 빌딩 창에 불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켜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띄엄띄엄 켜진다.

낮에는 회색 덩어리로만 보이던 건물들이 그 순간부터 각자 형태를 갖는다.

낮과 밤이 바뀌는 그 짧은 구간을 눈앞에서 본 게 이날의 가장 좋은 장면이었다.

블루아워가 제일 예뻤다

하늘에 푸른 기가 남은 블루아워의 빅토리아피크 야경
이때가 제일 예뻤다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 하늘에 아직 푸른 기가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

이때가 제일 예뻤다. 하늘이 짙은 남색이고 건물 불빛은 이미 다 켜져 있어서, 하늘과 도시가 둘 다 보인다.

완전히 캄캄해지면 하늘은 검은 배경으로만 남고 불빛만 뜬다.

사진으로 보면 그건 좀 밋밋하다.

유리 난간 너머로 보이는 홍콩 야경과 보라색 조명 천장
유리 너머로 본다

전망대 유리 너머로도 봤다.

천장에 보라색 조명이 깔려 있어서 유리에 그 색이 비쳤다.

야경 위에 보라색이 겹치는 게 묘했다.

이 시간대는 길지 않다. 30분 안팎이다.

그래서 야경을 제대로 보려면 해 지기 전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

표를 미리 끊어야 하는 진짜 이유가 이거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

자리를 옮겨 다시 본 마천루 야경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조금 걸어 자리를 옮기니 빌딩 숲이 다르게 펼쳐졌다.

같은 도시인데 각도가 몇 걸음 달라지면 구성이 바뀐다.

발밑으로 마천루가 빼곡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 시간 줄 서느라 쌓인 짜증이 여기서 다 풀렸다.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뒤 내려다본 빅토리아 하버 야경
완전히 어두워진 뒤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다본 홍콩의 밤*

야경 사진을 수십 장 찍었다.

지금 세어 보니 이날 밤에만 예순 장 가까이 된다.

대부분 비슷한 구도인데, 그때는 한 장씩 다 달라 보였다.

야경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여기까지 올라온 기념

*더 피크 간판 너머의 야경*

빅토리아피크 야경 보는 법

해 지기 90분 전에 올라간다. 그래야 낮 풍경, 해 질 녘, 블루아워, 완전한 야경까지 한자리에서 이어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야경은 일몰 뒤 30분쯤부터 나오고, 가장 예쁜 블루아워는 그보다 앞선 짧은 구간이다.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90분이 빠듯하다.

명당은 유료 하나에 무료 셋이다. 가장 높은 곳은 스카이 테라스 428(해발 428m 야외 전망대)로 입장료가 붙는다.

돈을 아끼려면 사자정(Lion's Pavilion)이나 루가드로 산책로가 있다.

피크 갤러리아 위층 전망대에서도 같은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특히 루가드로는 사람이 적고 나무 사이로 도시가 보여서 사진 구도가 다르게 나온다.

피크트램 왕복과 전망대를 묶은 스카이 패스가 따로 사는 것보다 조금 싸다.

요금은 자주 바뀌니 출발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게 맞다.

날씨를 보고 올라간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스카이라인이 통째로 흐려진다.

내가 간 날도 낮에는 꽤 뿌옜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흐릴 확률이 높다.

일정에 여유가 있으면 맑은 날로 미뤄서 올라가자. 주말과 공휴일 저녁은 특히 붐빈다.

피크 정상의 관광안내소 정자와 초록 트램 모양 건물
정상 광장의 안내소
스카이 테라스 428
Sky Terrace 428 (Peak Tower)
영업 중. 다만 입장료와 운영시간이 자주 바뀐다 — 출처마다 값이 달라 여기 적지 않는다. 올라가기 전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게 맞다
주소
1 Lugard Road, The Peak, Hong Kong (피크타워 옥상)
해발 428m 야외 360도 전망대 — 피크에서 가장 높은 유료 자리. 무료 대안은 사자정·루가드로 산책로·피크 갤러리아 위층

다녀와서

야경에도 시간표가 있다는 걸 이날 배웠다.

밤이 깊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하늘과 도시가 같이 보이는 짧은 구간이 제일 좋다.

그걸 놓치면 남는 건 검은 배경에 뜬 불빛뿐이다.

이후 다른 도시에서 야경을 볼 때마다 해 지는 시각부터 찾아보게 됐다.

그리고 저녁은 삼각 샌드위치였다.

백만 불짜리 야경 앞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는 게 배낭여행의 실제 모습이다.

그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도 이날 알았다.

해가 지기 전에 올라가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산을 내려와 이층 트램을 탄다. 위층 맨 앞자리에서 본 밤거리 이야기.

홍콩 · 7편 중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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