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홍콩 2] 공항에서 시내까지, 공항철도 안 타고 간 이유
표 끊는 것부터 헤맸다.
그게 결과적으로 나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시각이 오후 3시쯤이었다.
90일을 허락받았다

입국 심사에서 여권에 종이 한 장을 끼워줬다. 체류 허가증이었다.
언제까지 머물러도 된다는 날짜가 인쇄돼 있었는데, 세어 보니 석 달이었다.
한국 여권은 홍콩에서 90일까지 무비자로 머물 수 있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그 기간을 통째로 주는 게 신기했다.
도장도 안 찍고 종이만 끼워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홍콩에서 처음 쓴 돈은 카드값이었다

짐을 찾고 도착홀로 나와 옥토퍼스 카드부터 샀다.
보증금 $50, 충전 $100, 결제 $150.
한국 돈으로 2만 원 남짓이다.
보증금 50달러는 카드를 반납하면 돌려받는 돈이라 실제로 쓸 수 있는 건 100달러였다.
이 카드가 없으면 홍콩에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하루 만에 알게 됐다.
지하철, 버스, 트램, 편의점, 심지어 피크트램까지 이 카드 하나로 다 됐다.
표 끊는 법을 몰라서 헤매던 사람에게 이건 구원이었다.
공항철도를 안 탔다

공항철도 표를 끊으려다 요금을 보고 멈췄다.
그리고 버스 안내판 앞으로 갔다.
구룡 방면과 신계 방면 노선이 요금별로 정리돼 있었다.
20홍콩달러대에서 30홍콩달러대까지, 배차 간격까지 적혀 있었다.
공항철도가 편하다는 건 알았지만 끝까지 버텨야 하는 예산이었다.
첫날부터 편한 걸 타면 뒤가 없다.
돈 계산은 이 여행 내내 따라다녔다.
도시마다 하루 식비 상한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먹었다.
그 습관이 여기 공항 안내판 앞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동충역으로 갔다.
야자수가 서 있는 역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공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데 여기부터는 일반 지하철 요금이다.
공항철도는 이 역에 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 경로를 아는 사람만 쓴다.
나는 그걸 알고 온 게 아니다.
요금표를 보다가 흘러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날 가장 잘한 선택이 됐다.
지하철 창밖이 바다였다

동충선은 한동안 지상으로 달린다.
창밖에 바다가 넓게 펼쳐지고 그 건너로 산이 보였다.
지하철을 탔는데 바다를 보고 있다는 게 낯설었다.

한참을 달려 센트럴역에서 내렸다.
표지판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였고, 환승 노선이 색으로 구분돼 있었다.
한자와 영어가 나란히 적혀 있어서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역 안에서 노선도를 한참 봤다.
홍콩섬 노선이 동서로 길게 한 줄이라 이해가 빨랐다.
서울 지하철에 익숙한 사람에겐 오히려 단순한 편이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좁았다

지상으로 올라와서 처음 한 일은 위를 올려다보는 일이었다.
도로가 좁은데 양쪽 건물이 높았다.
그 사이로 이층버스가 지나가는데 버스 지붕이 간판에 닿을 것 같았다.
하늘이 건물 사이로 길게 잘려 있었다.

낡은 아파트는 벽면이 에어컨 실외기로 덮여 있었다.
창마다 하나씩 튀어나와 있어서 벽이 울퉁불퉁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밀도를 이번엔 아래에서 올려다본 셈이다.
땅이 좁으면 사람이 위로 쌓인다. 그게 사진 한 장에 다 들어 있었다.
걷다 보니 이상한 게 하나 더 있었다. 한국말이 계속 들렸다.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뒤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처음 나온 해외인데 사방에 한국인이 있었다.
낯선 데 떨어졌다는 실감이 생각만큼 안 왔다. 그게 좋기도 하고 조금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 감각은 며칠 뒤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뒤집힌다. 거기서는 한국말이 한마디도 안 들렸다.
배낭을 내려놓은 곳

숙소는 도미토리였다.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요금표가 재미있었다.
드라이어는 무료, 수건은 한 장에 10홍콩달러, 프린트와 팩스는 15층 리셉션, 조리 시설은 9층 공용 공간.
수건이 유료라는 건 여기서 처음 알았다. 이후로 수건은 내내 내가 가져온 걸로 버텼다.
와이파이는 무료였다. 그때만 해도 호스텔 와이파이가 공짜라는 건 꽤 큰 조건이었다.
이게 없으면 지도도 못 보고 숙소도 못 잡는다.

배낭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건물 하나에 세븐일레븐과 스타벅스와 KFC 간판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
이 도시는 공간이 좁은지 가게도 위로 지어올린다.
해가 지기 전에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야 했다.
*이층버스와 택시가 뒤엉킨 거리*
홍콩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법

한국 여권은 무비자 90일이다. 2024년 10월부터 입국신고서도 없어져서 여권만 내면 된다.
내가 갔을 때는 종이 체류허가증을 여권에 끼워줬다.
이걸 잃어버리면 출국할 때 곤란해질 수 있으니 여권에 그대로 꽂아둔다.
옥토퍼스 카드는 도착 즉시 만든다.
관광객용 실물 카드는 보증금 없이 살 수 있고, 아이폰·애플워치라면 앱으로 바로 발급된다.
교통뿐 아니라 편의점·마트·일부 식당까지 이 카드로 결제된다.
지금은 신용카드 컨택리스도 잘 된다.
그래도 트램과 미니버스처럼 옥토퍼스가 아니면 불편한 구간이 남아 있다.

공항에서 시내는 세 경로다. ①공항철도(AEL)는 가장 빠르고 가장 비싸다.
홍콩역까지 24분. ②시외버스(A11·A21 등)는 요금이 절반 이하고 숙소 앞까지 가는 노선이 많다.
대신 40분에서 한 시간. ③가장 싼 건 S1 버스로 동충역까지 가서 동충선 지하철로 갈아타는 방법이다.
공항철도는 동충역에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이 환승을 알면 요금이 크게 줄어든다.
짐이 많으면 ①, 예산이 우선이면 ③이다.

숙소는 센트럴이냐 침사추이냐로 갈린다.
홍콩섬 센트럴은 피크트램·트램·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걸어서 닿는 거리다.
구룡 쪽 침사추이는 야경 명당과 야시장이 가깝고 숙소가 더 싸다.
첫 방문이면 동선이 짧은 센트럴 쪽이 시간을 아낀다.
도미토리는 수건이 유료인 곳이 많으니 수건 한 장은 챙겨 가는 게 낫다.

다녀와서
첫날 가장 많이 한 일은 안내판 읽기였다.
요금표를 읽고 노선도를 읽고 벽에 붙은 숙소 안내문을 읽었다.
관광지에 간 시간보다 뭔가를 해독하는 데 쓴 시간이 길었다.
그게 첫 해외여행의 실제 모습이다.
그리고 그 해독의 결과로 공항철도를 안 타게 됐다.
몰라서 헤맨 게 우연히 절약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정보가 없으면 발로 채워야 하고, 발로 채우면 가끔 더 나은 답이 나온다.
다음 편에서는 센트럴에서 피크트램 정류장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한 시간을 서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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