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포리 5] 핀란드 블루베리는 갈퀴로 긁어 담는다, 그 숲 옆엔 영묘가 있었다
나오니 묘지 표지판이 서 있었다.
문 앞에서 돌아섰다.
핀란드에서는 남의 숲에 들어가 열매를 따도 된다.
마르자 할머니가 첫 저녁에 적어주신 포스트잇의 둘째 줄이 이 영묘였다. 그날은 그 줄까지 못 갔다.
남의 숲에서 열매를 따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블루베리는 비싸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숲마다 널려 있어서 그냥 따다 먹는다.
가능한 이유가 법에 있다.
핀란드에는 요카미에헨오이케우스(jokamiehenoikeus)라는 게 있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모든 사람의 권리"다.
남의 땅이라도 숲과 들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야생 열매와 버섯과 꽃을 따는 게 허용된다.
소유자 허락도 필요 없고 돈도 안 낸다.
대신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집 마당과 경작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나무를 상하게 하거나 불을 피우는 것도 안 된다.
남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게 전제다.

차로 5분 거리, 동네 체육관 옆이었다.
운동장 뒤로 그냥 이어지는 동네 숲이다.
도구를 챙겨 차에 실을 때는 어디 멀리 가는 줄 알았다.
갈퀴처럼 생긴 통으로 긁는다

손으로 하나하나 따는 게 아니었다. 앞에 빗살이 달린 금속 통을 쓴다. 핀란드 마트에서 파는 흔한 도구다.

관목 아래로 통을 밀어 넣고 위로 훑으면 된다.
한 번 긁으면 후두둑 담긴다.
빗살 간격이 열매만 통과시키고 줄기는 걸러낸다.
요령이 없어도 금방 통 바닥이 덮인다.
*갈퀴로 블루베리를 긁어 담는다*

잎이 같이 담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집에 가서 골라낸다.
나무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블루베리 나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과나무처럼 올려다보는 걸 상상했다.
실제로는 정강이 높이도 안 되게 바닥에 깔려 있다.
그래서 채집하는 내내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한다.
한 시간쯤 하니 등이 뻣뻣해졌다.
여기서 자라는 건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재배 블루베리와 다른 종이다.
핀란드어로 무스티까(mustikka), 영어로는 빌베리라고 부르는 야생종인데, 껍질만 파란 재배종과 달리 속까지 진한 자줏빛이다.
손에 물이 들고 입 안이 파랗게 된다.

빨간 열매도 섞여 있었다.
링곤베리(puolukka)다.
같은 속의 다른 종인데, 신맛이 강해서 생으로 먹지 않고 잼으로 만들어 고기에 얹는다.
한참 긁다 보니 우리 동네에서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양에서 어릴 때 봤던 그 파란 열매가 이거였나 싶었는데, 지금도 확인은 못 했다.
나오는 길에 표지판이 서 있었다

숲을 빠져나오는데 길이 정리된 느낌으로 바뀌었다. 흙길에 자갈이 깔리고 잔디가 다듬어져 있었다.

표지판에 한 단어만 적혀 있었다.
마우솔레우미, 영묘다.
열매를 따던 숲 바로 옆이 묘지였고, 그 안에 포스트잇 둘째 줄에 적혀 있던 건물이 있었다.
열한 살에 죽은 딸에게 지어 준 건물

포리의 사업가 프리츠 아르투르 유셀리우스가 딸에게 지어 준 영묘다.
딸 시그리드는 1887년에 태어나 1898년에 결핵으로 죽었다. 열한 살이었다.
아버지는 그 뒤에 이 건물을 세웠다.
건축가 요세프 스텐베크가 설계해 1901년에 시작하고 1903년에 완성했다.
그래서 묘지 한가운데에 교회처럼 생긴 석조 건물이 서 있다.
규모도 개인 묘로는 상식을 벗어난다.

창은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지붕은 동판이 오래 산화해서 초록으로 변해 있고, 벽은 회색 화강암이다.
첨탑은 주변 소나무보다 높다.
안쪽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벽에 프레스코를 그린 사람은 악셀리 갈렌칼렐라다.
핀란드의 옛 노래와 신화를 모은 칼레발라, 그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옮긴 화가다.
그런데 그 그림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습기 때문에 완성 직후부터 상해서, 1925년에는 중앙홀의 상한 부분을 조각가 에밀 세데르크로이츠의 청동 부조로 대체해야 했다.
지금 벽에 걸려 있는 프레스코는 아들 요르마 갈렌칼렐라가 아버지의 스케치를 보고 1933년부터 1939년까지 다시 그렸다.
20분 늦었다

앞 문단을 조사해서 쓴 이유가 여기 있다. 나는 안에 못 들어갔다.
문 앞에 선 시각이 오후 4시 20분이었다.
이 영묘는 여름철에 오후 4시에 닫는다.
20분 차이로 청동 문 앞에서 돌아섰다.
블루베리를 한 시간 반 긁고 있었으니 그 20분은 내가 만들었다.
집에 와서 잎을 골랐다

집으로 돌아와 체에 받쳐 잎을 골라냈다.
채집기로 긁으면 잎과 잔가지가 섞여 들어오니 이 과정이 반드시 붙는다.
손으로 훑어 위에 뜬 것을 걷어내고, 물에 한 번 헹군다.

한 시간 반에 이만큼이 나왔다.
그릇 하나가 수북하다.
한국에서 이 양을 사려면 얼마인지 계산하다가 그만뒀다.
그해가 특히 풍년이라고 했다.
자일리톨 껌 두 통

베리를 씻고 나서 마트에 들렀고, 거기서 자일리톨 껌 두 통을 챙겨줬다.
핀란드에서 자일리톨은 기념품 코너에 없다.
치과에서 권하고 마트 계산대마다 쌓여 있다.
이 성분을 자작나무 껍질에서 뽑는다.
헬싱키에서 포리로 오는 세 시간 동안 창밖이 내내 자작나무였는데, 그 나무에서 나온 것이 이 껌으로 손에 들려 있는 셈이었다.
포리에서 열매 따기 실전 정보
블루베리는 7월 말에서 8월이 제철이다.
채집기는 마트나 생활용품점에서 몇 유로면 산다.
긴바지와 운동화를 신는 게 좋다 — 바닥에 깔린 관목을 헤집어야 하고, 모기가 상당하다.
숲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허락이 필요 없지만 집 마당과 경작지는 예외다.
국립공원 안에서는 구역별로 규정이 다르니 안내판을 확인하고 들어간다.
영묘는 묘지 안에 있으니 조용히 다닌다.
여름철 오후 4시가 마지막이라는 걸 기억하면 나처럼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는다.
갈퀴로 열매를 긁어 담았다
숲에서 열매를 긁어 담은 게 이 여행에서 가장 낯선 경험이었다.
물건을 사서 먹는 게 아니라 걸어 들어가서 가져오는 일이라, 먹는 것과 사는 곳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짧아진 느낌이었다.
문 앞에서 돌아선 건 아직 아깝다.
아버지가 딸에게 지어 준 건물 안에, 그 아버지의 그림을 아들이 다시 그린 벽이 있다.
다시 포리에 가면 오후 4시 전에 그 문 앞에 선다.
그다음은 그 블루베리로 파이를 굽고 연어를 훈제한 저녁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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