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 마카오 3] 실내인데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로 배가 지나갔다, 베네시안

마카오 여행기 · 3편
실내인데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로 배가 지나갔다.
창이 없으니
밖이 밤인지 낮인지 몰랐다.

카지노 거리를 걷다 제일 큰 건물로 들어갔다. 베네시안 마카오다.

그려진 하늘 아래에서 찍은 사진
이 아래에서 두 시간을 걸었다

가짜 하늘, 그리고 노래하는 뱃사공

들어가자 천장부터 눈에 들어왔다.

실내인데 파란 하늘에 구름까지 그려져 있어서, 시간이 멈춘 대낮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름 그대로 안에는 운하가 흐르고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가 떠다녔다.

뱃사공이 이탈리아 가곡을 부르기도 했다.

실내 운하에 노랫소리가 울리니 더 비현실적이었다.

도박장인지 테마파크인지 헷갈릴 만큼 규모가 컸고, 한참을 걸어도 끝이 안 보였다.

창이 없으니 밖이 밤인지 낮인지도 감이 안 왔다.

카지노가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베네시안 실내의 가짜 하늘과 운하
베네시안 실내 — 그려진 하늘 아래로 운하와 곤돌라가 흐른다

운하 물빛은 형광에 가까운 파랑이었다.

실내 운하를 따라 곤돌라가 지나간다
물빛이 형광에 가까운 파랑이다
운하 난간에서 곤돌라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난간에 기대 한참 내려다봤다

벽돌 아치 다리가 물 위를 건너가고, 다리 너머엔 명품 매장 간판이 붙어 있고, 그 사이를 곤돌라가 지나간다.

난간에 기대 내려다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세트고 어디부터가 쇼핑몰인지 구분이 안 갔다.

그 뱃사공을 영상으로 찍어뒀다.

줄무늬 셔츠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빨간 띠 감은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손님 둘을 태운 곤돌라를 노로 밀며 난간 바로 아래를 지나간다.

파일 이름을 '노래하는 아찌'라고 붙여놨던 걸 보면 그때 나는 이 사람이 노래하는 게 제일 신기했던 모양이다.

*베네시안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

난간 아래를 지나가는 곤돌라 — 소리를 켜면 실내 운하의 울림이 들린다

배를 젓는 사람만 그 차림인 게 아니었다.

조금 뒤 상점가 통로에서는 똑같은 줄무늬 셔츠에 빨간 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예닐곱 명씩 떼로 걸어 다녔다.

쇼핑하던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선 저게 그냥 평상복이다.

*베네시안 곤돌리에 복장 단체 이동*

상점가를 가로질러 가는 곤돌리에 무리 — 교대하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산마르코 광장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광장이 나온다.

시계탑과 명품 상점 사이로, 그려진 하늘 아래 관광객이 가득했다.

베네시안 실내 광장
베네시안 실내 광장 — 산마르코 광장을 본떴다, 가짜 하늘 아래 인파

시계탑 시계판에는 별자리 같은 눈금이 빙 둘러 그려져 있었고, 꼭대기엔 날개 달린 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스와치와 판도라 간판이 걸려 있었다.

베네치아 광장에 스위스 시계 매장이 붙어 있는 셈인데,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았다.

운하 쪽 하늘은 대낮인데, 몇 걸음 걸어 나온 광장 쪽 하늘은 해질녘 색이었다.

한 건물 안에서 하늘이 두 개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걷느라 눈치도 못 챘고, 사진을 나란히 놓고서야 알았다.

베네시안 로비의 황금 천구의 조형물
베네시안 로비의 황금 천구의 조형물 — 화려한 천장화 아래

대리석 분수 한가운데, 금색 여인상이 커다란 고리를 머리로 이고 있었다.

고리에는 VENETIA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천장은 분홍과 금색 프레스코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그 아래를 캐리어 끄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창이 없으면 시간이 사라진다

한참을 걷다 시계를 봤더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치와 상점이 이어지는 베네시안 실내 회랑
끝이 안 보일 만큼 길다

건물 안에 창이 없었다. 바깥이 흐린지 맑은지, 해가 어디쯤 왔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천장에 그려진 하늘은 계속 오후 네 시쯤이었다. 구름 모양도 안 바뀐다.

파란 하늘과 구름이 그려진 실내 천장
구름 모양이 하루 종일 안 바뀐다

카지노는 일부러 이렇게 짓는다. 시계도 창도 없애면 사람이 시간을 못 센다.

로비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황금 천구의가 놓여 있었다. 여기도 금색이었다.

로비 중앙에 놓인 커다란 황금 천구의
여기도 금색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진짜 하늘이 보였다. 구름이 두껍게 낀 오후였고, 그려진 하늘보다 훨씬 흐렸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펼쳐진 야외 광장
나오니 진짜 하늘이 더 흐렸다

원조의 나라에서 온 에그타르트

리조트를 걷다 에그타르트를 하나 사 먹었다.

마카오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의 파스텔 드 나타에서 왔는데, 유명해진 데는 사연이 있다.

영국에서 약사로 일하던 앤드루 스토가 포르투갈에서 맛본 에그타르트에 반해,

콜로안 섬에 'Lord Stow's Bakery(안드류)'를 열었다.

아시아 최초의 에그타르트 전문점을 낸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하루 수천 개가 팔리는 마카오의 상징이 됐다.

마카오식은 윗면에 설탕을 뿌려 살짝 그을리는 게 특징인데,

탄 자국이 쌉싸름하게 겉돌고 속은 따뜻한 커스터드라 우리나라 계란빵보다 훨씬 촉촉했다.

걸으면서 하나 더 살까 두 번쯤 고민했다.

마카오식 에그타르트
마카오식 에그타르트 — 윗면이 캐러멜처럼 그을린 게 특징

종이봉투째 들고 운하 난간 앞에 서서 한 장 찍어뒀다.

뒤로 그 형광 파란 물이 그대로 배경에 깔렸다.

윗면 탄 자국은 고르게 퍼진 게 아니라 얼룩덜룩 제멋대로였고, 옆면 페이스트리는 결마다 부풀어 층이 다 보였다.

가짜 하늘 아래 가짜 운하를 옆에 두고,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과자를 먹고 있었다.

카지노는 구경만

마카오까지 왔으니 카지노도 잠깐 들여다봤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딜러의 손놀림과 칩 부딪는 소리만 낮게 깔렸고, 다들 진지한 얼굴로 판을 지켜봤다.

나는 언어도 안 되고 도박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테이블 사이를 그저 구경만 하며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칩을 올리고 딜러가 카드를 돌리는 걸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경거리였다.

가까이서는 촬영이 안 돼, 위층 아트리움에서 아래층 카지노 홀을 내려다본 사진 한 장만 남았다.

베네시안 실내 아트리움
베네시안 아트리움에서 내려다본 아래층 — 상점가와 카지노 홀

그 한 장에 층이 통째로 담겼다.

천장에는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층에는 불가리·폴앤샤크 같은 간판이 걸려 있고,

아치 아래 한 층 밑으로는 초록 천을 씌운 테이블과 분홍빛 슬롯머신 화면이 줄지어 있었다.

명품 매장과 도박장 사이가 에스컬레이터 한 대였다.

돌아오는 배

배 안에서 먹은 컵라면
배 매점에서 산 신라면 컵 — 포크가 뚜껑에 꽂힌 채로 나왔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페리에서는 배 안 매점에서 신라면 컵을 하나 샀다.

베네시안 로고가 붙은 파란 셔틀버스
올 때 탄 그 셔틀을 또 탔다
베네시안 마카오
The Venetian Macao / 澳門威尼斯人
영업 중
영업
쇼핑몰 일~목 10:00 - 23:00 · 금·토 10:00 - 24:00 (매장·식당마다 다르다)
가격
입장 무료. 곤돌라 탑승은 별도 요금
주소
Estrada da Baía de N. Senhora da Esperança, s/n, Taipa, Macao
카지노 구역은 21세 이상, 입장 시 여권 확인. 코타이 지역 호텔 무료 셔틀이 페리터미널에서 다닌다
손에 든 홍콩행 귀환 페리 승선권
돌아가는 배 시각에 맞춰 표를 끊었다

일회용 포크가 딸려 나왔고, 국물은 좀 싱거웠지만 익숙한 매운맛이 낯선 하루 끝에 유독 반가웠다.

창밖으로는 마카오의 리조트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승객이 앉아 있는 페리 선실
올 때보다 사람이 적었다
페리에서 먹은 신라면 컵
돌아오는 페리에서 사 먹은 신라면 컵 — 일회용 포크가 딸려 왔다

뚜껑을 반쯤 벗긴 채로 좌석 트레이 테이블에 올려놨다.

얇은 플라스틱 포크가 뚜껑 사이에 끼워져 있고, 트레이에는 빨간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 있었다.

하루 종일 한자 사이를 헤매다가, 돌아오는 배 위에서야 다 읽히는 글자를 만났다.

배에서 내려 밤거리를 걷다 허유산에서 망고 음료도 한 잔 마셨다.

진한 망고 맛이 나에겐 조금 달았지만, 무더운 하루의 마무리로는 시원해서 좋았다.

허유산 망고 음료
허유산 망고 음료 — 밤거리에서 한 잔

컵 아래쪽에는 노란 망고 과육이 통째로 잠겨 있었다.

초록 빨대로는 잘 안 빨려 올라와서, 결국 컵을 기울여 흔들어 가며 마셨다.

돔 뚜껑에는 HUI LAU SHAN, 컵에는 무슨 기념 로고가 찍혀 있었다.

사진 배경은 노란 이중선이 그어진 밤 도로다.

가게 안에 앉지도 않고 그냥 들고 나와 걸으면서 마셨다.

*실내 운하를 지나는 곤돌라*

*실내인데 하늘이 있다*

베네시안에서 뭘 보나

실내 운하와 곤돌라가 핵심이다. 삼층 상점가를 따라 운하가 흐르고 곤돌라가 손님을 태운다.

타려면 별도 요금을 낸다.

천장은 하루 종일 같은 하늘이다. 시간대에 따라 조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지만, 창이 없어 바깥 시간과는 무관하다.

게임장은 촬영 금지다. 로비와 상점가는 자유롭게 찍을 수 있지만 테이블이 있는 구역에 들어가면 카메라를 내려야 한다.

돈을 안 써도 볼 게 많다. 입장료가 없고 상점가·운하·로비는 그냥 걸어 다닐 수 있다.

나는 에그타르트 하나 값만 썼다.

마카오 에그타르트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음식이다. 마카오가 오래 포르투갈령이었던 흔적이고, 현지에서는 포르투갈식과 광둥식이 갈린다.

포르투갈식은 겉이 탄다. 표면을 일부러 그을려서 검은 점이 생기는 게 정상이다.

이걸 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갓 구운 걸 먹는다. 식으면 크러스트가 눅눅해진다. 줄이 있어도 갓 나온 판을 기다린다.

콜로안 쪽이 원조로 통한다. 시내에서 멀지만 이 집을 목표로 가는 사람이 많다.

카지노 구역 안 매장에서도 판다.

다녀와서

하루 만에 다녀온 도시인데 기억은 실내가 대부분이다.

그려진 하늘 아래를 두 시간 걸었고, 나와서 진짜 하늘을 봤을 때 오히려 낯설었다.

카지노에서 돈은 한 푼도 안 걸었다. 그 대신 그 안이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봤다.

시계도 창도 없는 공간을 걷는 경험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다음 편은 홍콩 마지막 날이다. 시장 세 곳을 돌다가 내가 새를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카오 · 3편 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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