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 이드라 3] 그날 세 번 밥을 먹었는데 세 번 다 남이 채워 줬다
제일 비는 게 밥상이다.
남이 채워 줬다.
산을 한 바퀴 돌고 마을로 내려오니 두 시가 다 돼 있었다.
아침에 빵 하나 먹고 나온 게 전부였다. 배가 고픈 걸 그때야 알았다.
밥을 먹으러 항구로 내려갔는데, 그날 밥상에는 계속 다른 사람이 앉았다.
내려오니 점심때였다
내려오는 길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돌담 너머로 붉은 지붕이 촘촘히 깔려 있고 그 뒤로 산이 막고 있었다.
아침에 올려다보던 걸 지금은 내려다보고 있었다.

항구 쪽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부부 두 분이었다. 인사를 했더니 같이 앉자고 하셨다.
올리브유에 레몬을 뿌린 생선
교수님 부부라고 하셨다. 이드라에 왔다가 나처럼 배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주문할 게 늘었다.
혼자였으면 제일 싼 걸 하나 시키고 말았을 텐데 그날은 여러 접시가 올라왔다.

식탁에는 빵 바구니가 먼저 나왔다. 메뉴판에는 안니타라는 이름과 닻 그림이 찍혀 있었다.
물은 병으로 시켜야 한다. 그리스 식당은 보통 그렇다.

생선은 통으로 구워 나왔다. 소스가 없고 올리브유와 레몬만 뿌려져 있었다.
곁들임은 밥이었다. 생선 살을 발라서 밥에 얹어 먹었는데 짜지 않고 담백했다.

세 명이 앉으니 접시를 나눌 수 있었다. 혼자 다니면서 제일 아쉬운 게 이거다.
여행 이야기를 한참 했다. 두 분은 여행을 오래 다니셨고 나는 이제 두 달째였다.
아이스크림은 두 분이 샀다
밥을 다 먹고 나와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냈더니 두 분이 벌써 내신 뒤였다.
컵 하나에 아홉 덩이를 담아 왔다. 스푼 세 개가 그 한 컵으로 들어갔다.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배 시간까지 이야기를 더 했다.
두 분은 나보다 이른 배를 타셨다. 헤어질 때 조심히 다니라고 하셨다.

항구에 말이 서 있었다
배 시간까지 두 시간이 남아 항구를 걸었다.
바다를 따라 난 산책로가 요새 쪽으로 이어졌다. 오후 햇빛이 정면에서 들어와 눈이 부셨다.

부두 한쪽에는 말과 당나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배가 들어오면 짐을 실어 나르는 놈들이다. 대기하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골목 안쪽 카페에는 파란 의자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앉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후 네 시는 그리스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다.

가게에서 막대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민트색에 알록달록한 스프링클이 뿌려져 있었다.
들고 골목을 걸었다. 그늘에 들어가도 금방 녹았다.

배에서 옆자리가 말을 걸었다
다섯 시 반쯤 배를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서 인사가 왔다.
모자를 쓴 아저씨였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반가워했다.

부인이 뒤에 앉아 있어서 셋이 이야기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 이야기가 나오자 아는 게 많아서 놀랐다. 도시 이름을 몇 개나 대셨다.
세월호 이야기까지 꺼내셨을 때는 조금 멈칫했다. 바다 건너에서도 그 뉴스를 보고 계셨다.

배가 항구에 가까워질 때쯤 갑판으로 나왔다.
바다에 노을이 깔리기 시작했다. 난간에 기대서 한참 서 있었다.

피레우스에 해가 떨어졌다
배가 피레우스에 닿을 때 해가 수평선에 걸렸다.
부두에 서 있는 배들 사이로 빛이 길게 들어왔다. 아침에 지나갈 때는 아무것도 아니던 자리였다.

항구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다. 피레우스 역은 오래된 철골에 아치형 지붕을 얹은 건물이다.
천장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그 아래로 승강장이 길게 뻗어 있었다. 아침에는 급해서 못 봤다.

저녁은 또 기로스였다
숙소 근처에서 저녁을 샀다. 또 기로스였다.
진열대에 꼬치와 고기가 줄지어 있고 옆 칸에 토마토와 양파가 담겨 있다. 손가락으로 짚으면 그대로 말아 준다.

아테네에서 이 조합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싸고 빠르고 배가 찬다.
하루의 끝은 개와 간식
숙소에 들어오니 그날 도착한 사람이 하나 늘어 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일 년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식탁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그리스 간식이라며 하나를 건넸다. 하얀 가루가 묻은 네모난 젤리였다.

이가 아플 만큼 달았다. 그런데 하나를 다 먹고 또 하나를 집었다.
집에 사는 개는 이날도 식탁 옆에 와 있었다. 밥 냄새가 나면 어김없이 온다.

*밥 먹을 때마다 이러고 있는다*
이드라에서 밥 먹을 때
항구를 따라 늘어선 자리가 값이 제일 비싸다. 골목으로 한 겹 들어가면 내려간다.
생선은 무게로 계산하는 집이 많다. 주문 전에 값을 확인한다.
빵과 물은 따로 계산된다. 안 시키면 안 나온다.
배 시간에 맞춰 먹으려면 두 시간 전에는 자리에 앉는다. 접시가 늦게 나온다.
값을 아끼려면 항구 상점에서 빵과 치즈를 사서 해변에서 먹는 방법도 있다. 나는 그러려다가 결국 식당에 앉았다.
그날 세 번 밥을 먹었다
그날 나는 세 번 밥을 먹었다.
점심은 처음 본 부부와 먹었고 아이스크림은 그 두 분이 사 주셨다.
저녁 뒤 간식은 하루 먼저 온 여행자한테 받았다.
혼자 다니면 밥상이 제일 비는데 그날은 세 번 다 채워졌다. 이드라에서 본 바다보다 그게 더 오래 남았다.
아테네에서 보낸 마지막 날은 고대 아고라였다.
돌덩이만 남아 상상력으로 봐야 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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