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에스포 2] 쇼핑몰에 통째로 들어앉은 도서관, 3D 프린터에 간달프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이 간달프와 사루만이었다.
통째로 들어앉아 있었다.
핀란드에 도서관을 보러 갔다.
이 나라에 며칠 있어 보니 도서관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친구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놀이터가 장난감을 제공한다

집 앞 놀이터 모래밭에 양동이와 트럭, 모래 틀이 흩어져 있었다.
누가 놓고 간 게 아니라 놀이터에 딸려 있다.
쓰고 그 자리에 두면 다음 아이가 쓴다.
한국에서 이걸 두면 며칠이나 남아 있을까 생각했다. 회수율을 실험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공원에 바베큐 자리가 따로 있었다.
철망으로 구획을 잡아 놓고 그 안에서만 불을 피우게 해 뒀다.
처음에는 여기서 고기를 구울 계획이었다.
장을 봤다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대파가 우리 것보다 굵고 길다. 전날 라면 국물이 유독 달았던 이유가 이 대파였다.

브로콜리와 가지를 골랐다. 당근도 담았다.
원래 나는 채소를 좋아하는 척하는 쪽이었는데, 그날 이후로는 진짜 좋아하게 됐다.
그 얘기는 아래에서 다시 쓴다.

무민 매장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컵과 접시, 인형이 진열돼 있다.
나중에 배를 타러 갔을 때 일본 여행객이 이 캐릭터 때문에 핀란드에 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매장 규모를 보니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유리컵 하나를 기념품으로 골랐다

같은 쇼핑몰에서 유리컵을 하나 샀다.
상자에 "TIMELESS DESIGN SINCE 1881"이라고 적혀 있다.
이딸라(iittala)는 핀란드 남부 이딸라 마을의 유리 공장에서 시작한 브랜드다.
핀란드에서 그릇을 사서 돌아가는 관광객이 많은 이유를 그날 알았다.
형태가 단순해서 부담이 없고, 마트 옆 매장에서 그냥 팔고 있다.
이 여행에서 산 기념품은 유리컵 하나와 컵 받침 하나가 전부였다.
쇼핑몰 안에 도서관이 통째로 들어앉아 있다

셀로(Sello)는 에스포 레포보리에 있는 큰 쇼핑몰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 도서관이 같이 들어 있다.

유리 천장 아래로 상점이 층층이 이어진다.
그 흐름을 따라 걷다가 문 하나를 지나면 도서관이 나온다.
장을 보러 온 사람이 그대로 책을 빌려 가고, 책을 보러 온 사람이 그대로 장을 보고 나간다.

입구 벽에 큰 글씨로 세 번 적혀 있었다.
키르얏(KIRJAT)은 핀란드어, 뵈케르(BÖCKER)는 스웨덴어, 북스(BOOKS)는 영어다.
핀란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함께 쓰는 나라라서 공공시설 표기가 늘 두 줄이고, 여기에 영어가 하나 더 붙는다.
이 도서관 이름은 러시아어 표기까지 있었다.
책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들어가서 처음 놀란 건 벽 한 면이 통째로 CD라는 점이었다. 음반이 책과 같은 대접을 받고 나란히 꽂혀 있다.

음악을 듣는 자리도 따로 있었다.
LP 서가 앞에 앰프와 플레이어를 놓아두고, 옆에는 "조용한 구역"(Tyst zon / Silent zone)이라고 붙여 놨다.
음반을 골라 그 자리에서 듣고 가라는 배치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아마추어 뮤지션이 작은 공연을 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누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드럼 소리가 나는 걸 그날 처음 들었다.

소리를 내는 자리와 조용히 앉는 자리를 유리 한 장으로 갈라 놓았다.
복도를 따라 유리 칸이 이어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우리 독서실처럼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바깥쪽 의자에서는 샐러드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그때는 낯설었다.

어린이 코너는 바닥부터 달랐다.
초록 카펫을 깔고 서가를 낮추고, 큰 갓을 씌운 조명을 천장에서 내려놨다.
아이가 신발을 벗고 바닥에 앉아 책을 보게 만든 배치다.
방음이 되는 의자에 앉아 만화를 읽었다

이 의자에 잠깐 앉아 만화책 한 권을 읽었다.
등받이가 높고 둥글게 감싸는 형태인데, 앉으면 주변 소리가 한 겹 줄어든다.
방음이 되는 의자였다.
도서관 하나에 드럼 소리와 공연 소리와 공부하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서 서로 방해가 안 되는 이유가 이런 가구에 있었다.
조용히 하라고 안내문을 붙이는 대신 소리가 덜 닿는 자리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3D 프린터에 간달프라고 적혀 있었다

도서관 한쪽에 3D 프린터가 놓여 있었다.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 자체로 놀랐는데, 기계 앞면에 이름표가 붙어 있는 걸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간달프였다.

뭔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봤다. 사루만이 있었다.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반지의 제왕에서 이름을 따와 붙여 놨다.
기계에 이름을 붙이는 건 그 기계를 쓰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장비 목록에 한 줄로 적혀 있기만 한 물건에는 아무도 별명을 지어주지 않는다.
누가 여기서 매일 이 기계를 만지고, "오늘은 간달프로 뽑자"고 말한다.
도서관에 3D 프린터가 있다는 사실보다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게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나오는 길에 본 간판

도서관을 나와 걷다가 이 간판을 봤다.
쿵 푸(kung fu)와 푸드(food)를 붙여 쿵 푸드 판다다.
이런 말장난이 어느 나라에서든 잘 통하는 종류라고 생각했다.
집 앞마당에서 숯불을 피웠다

공원 바베큐 자리까지 안 가고 집 앞마당에 화로를 내놓았다. 둥근 뚜껑이 달린 숯불 화로에 숯을 붙이고 기다렸다.
한국에서는 이걸 못 한다.
정확히는 하면 안 된다.
아파트 앞마당에서 숯불을 피우면 내가 먼저 신고할 것 같다.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이웃 창문이 멀리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소시지와 꼬치를 먼저 올렸다. 소시지가 굵어서 익는 데 한참 걸렸다.

삼겹살도 올렸고 한국에서 챙겨온 떡과 치즈도 같이 구웠다.
그런데 그날 제일 맛있었던 건 가지구이였다.
마트에서 좋아하는 척하며 담았던 채소였는데, 숯불에 올려 놓으니 속이 물러지면서 단맛이 올라왔다.
브로콜리와 당근도 호일에 싸서 같이 익혔다.

사과 사이더와 맥주를 옆에 뒀다. 여름 저녁이 길어서 마당에 앉아 있는 시간이 오래 갔다.

밤에 노트북을 열어 낮에 산 유리컵 값을 찾아봤다.
한국에서 같은 것을 사면 얼마인지 확인하고 나니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셀로 도서관 실전 정보
에스포 레포보리의 셀로 쇼핑몰과 같은 건물에 있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근교 열차로 레포보리까지 오면 바로다.
개인 관람은 무료다.
헬싱키 수도권 도서관은 헬멧(Helmet)이라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어서, 카드 한 장으로 여러 도시의 도서관을 함께 쓴다.
여행자도 들어가 앉아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데는 제약이 없다.
대출은 카드가 필요하다.
3D 프린터와 재봉틀 같은 장비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으니 쓸 생각이면 미리 확인한다.
평일은 저녁까지, 주말은 오후까지 문을 여는데 시기마다 바뀌니 에스포시 도서관 안내에서 그날 시간을 보고 가는 게 낫다.
여행 중 앉아서 쉴 곳이 필요할 때 이만한 데가 드물다. 무료고 조용하고 화장실이 있고 와이파이가 된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이 도서관
핀란드에서 무엇이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으면 이 도서관을 말한다.
쇼핑몰 안에 통째로 들어앉아 있었다. 벽 한 면이 CD고 드럼을 쳐도 되는데, 방음되는 의자까지 있었다.
3D 프린터를 무료로 쓰는데 그 기계에 간달프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여행지를 고를 때 도서관을 넣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가 가장 정직하게 나오는 곳이 여기였다.
관광객을 위해 꾸며 놓은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에스포를 떠나 투르쿠로, 그리고 스웨덴행 배를 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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