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 요새, 강화도 닮은 스리랑카 유네스코 성벽마을에서 만난 인연
미리사에 며칠 묵으면서 하루를 통째로 비워 다녀온 곳이 갈레(Galle)였다. 스리랑카 남부 해안의 이 작은 항구도시는 포르투갈이 처음 성벽을 쌓고 네덜란드가 마을 둘레 전체를 성벽으로 감싼 요새마을이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고, 성벽 안쪽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장사를 한다.
베이스캠프였던 미리사 해변. 여기서 하루를 비워 갈레로 갔다
실전 정보가 급하면 여기서 바로 내려가면 된다 — 갈레 요새 둘러보기 → · 갈레 가는 법 →. 나는 그날 아침 식탁 이야기부터 풀어보려 한다.
낯선 아침, 밥 한 그릇을 나누다
갈레로 떠나기 전, 묵던 숙소 식당에서 한 가족과 아침 식탁을 같이 썼다. 부모와 아들이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영어 대신 눈짓과 손짓으로 대화가 오갔다. 어머니가 내 앞으로 밥을 물에 만 그릇을 내밀어주셨다.

슴슴한 맛이었다.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 국물까지 싹 비웠다. 지금 그 사진을 다시 보면 그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머그컵이다. 색색으로 줄무늬가 들어간 같은 컵이 식탁 여기저기 놓여 있다. 손님상을 따로 차린 자리는 아니었다. 그 집이 늘 쓰던 식탁에 내 몫이 하나 더해졌을 뿐이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았어도 밥 한 그릇은 그대로 건너왔다. 그 온기를 안고 갈레로 향했다.
강화도를 닮은 성벽마을
갈레에 도착해서 처음 든 생각은 강화도였다. 외적을 막으려고 쌓은 작은 포구 마을이라는 점이 비슷했다. 성벽 앞 도로로 로컬버스 두 대가 지나갔다.

빨간 버스와 파란 버스, 색은 다르지만 둘 다 낡은 티가 역력했다. 그런데 그 반짝이는 색이 성벽의 칙칙한 돌빛과 나란히 있으니 오히려 눈에 확 들어왔다. 요새 마을이라기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했다.
성벽 위에 올라서니 그 인상이 더 분명해졌다. 요새와 신시가지 사이로 물길이 하나 지나가고, 그 위에 놓인 다리가 두 동네를 잇고 있었다.

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다리를 건넜다. 햇볕을 가리려고 우산을 펴 든 어른들이 그 사이를 지나갔고, 툭툭 몇 대가 다리 아래 그늘에 세워져 있었다. 세계유산이라는 말에서 떠올렸던 정갈한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벽이 여전히 등굣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성벽도 담장 한 겹이 아니었다. 바깥 벽 안쪽으로 또 한 겹이 있고, 그 사이 잔디 아래로 통로가 뚫려 있었다.

돌벽이 몇 번 꺾이면서 생긴 각진 모서리마다 보루가 하나씩 앉아 있었다. 벽 하나를 넘어도 다음 벽이 기다리는 구조다. 잔디만 걷어내면 지금도 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너머로 옛 항구가 되는 만이 잔잔했다.
벽 사이를 오가는 통로에는 벽돌로 아치를 얹어 문을 냈다.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지나갈 만한 높이다. 안내판도 울타리도 없고 문지방 앞에 흙길만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관광지 입구라기보다 마을 사람이 지름길로 쓰는 문처럼 보였다.
성벽 위로 올라가 바다 쪽을 내려다보니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파도가 밀려드는 자리에 두 사람이 가만히 서 있었다. 발밑이 물살에 폭 잠긴 채라 꼭 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성벽 다른 쪽 계단은 아예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뜨거운 볕 아래,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계단 끝에서 손을 잡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두 사람의 뒷모습이 유독 평화로워 보였다.
목적지가 비슷해서, 그냥 같이 다녔다
성벽 입구를 지나다 혼자 여행 중이던 중국인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멜리사라고 들었다. 여행자끼리 흔히 그렇듯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과 하루를 통째로 같이 다녀야 한다면 나는 보통 대화 거리부터 걱정한다. 그날은 아니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영어가 서로에게 편한 언어가 아니었고,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될 침묵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저 가려는 곳이 비슷했고, 그래서 계속 같이 걸었다. 외국에서 만난 여행자와의 동행이라는 게 원래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카레치킨을 넣고 크림소스를 얹은, 처음 먹어보는 조합
점심때가 되자 초록 패브릭 좌석이 놓인 야외 테라스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멜리사는 크레페를 하나씩 시키자고 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나온 크레페는 예상과 달랐다.

카레치킨을 넣고 크림소스를 얹은 짭짤한 맛이었다. 크레페라고 하면 으레 달콤한 디저트를 떠올렸다. 그런데 감자튀김과 코울슬로가 곁들여 나오는 걸 보니 완전히 한 끼 식사였다. 목이 마르던 참이라 코끼리하우스 진저비어를 한 병씩 시켰고, 나는 민트 프라페도 하나 더 곁들였다.

병째 나온 진저비어에 빨대가 하나 꽂혀 있었다. 잔을 따로 주지 않는 방식이 그때는 낯설었다. 민트 프라페는 얼음을 갈아 만든 초록빛이었고 잔 위에 민트 잎이 한 장 얹혀 있었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 바람이 도는 실내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금 그 사진을 넓게 보면 테이블 왼쪽 끝에 밀짚모자와 선글라스, 카메라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냅킨꽂이 너머로는 감자튀김이 담긴 접시가 하나 더 흐릿하게 걸린다. 마주 앉은 사람의 몫이다. 사진 속에 사람은 없어도 둘이 앉은 자리라는 건 남았다.
식사 계획표와 이동 계획표를 따로 만들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었다. 계획 없이 다니던 여행에 계획표를 챙겨온 사람이 붙으니, 그날 하루는 이상하게 편안했다.
해질녘까지, 별말 없이 나란히
점심을 먹고도 동행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성벽 위를 다시 걸어 시계탑 쪽으로 향했다. 별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자 성벽 위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낮에는 텅 비어 있던 잔디 둔덕에 앉을 자리가 사라졌다.
성벽에서 본 인도양 석양. 카메라를 한 바퀴 돌리면 노을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잡힌다
해가 수평선에 닿을 무렵에는 손을 뻗어 해를 집어 보는 장난도 했다.

이런 사진은 혼자서는 잘 안 찍는다. 옆에 누가 있어야 손을 뻗을 생각이 든다.

노을 앞에 선 두 사람은 정작 바다를 보고 있지 않았다. 둘 다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 옆으로 개 한 마리가 성벽 끝에 엎드려 있었다. 이 개는 그날 저녁 내 사진 여기저기에 반복해서 나온다.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아무 데나 자리를 잡는 품이, 관광객보다 이 성벽에 익숙해 보였다.
성벽 안쪽으로 눈을 돌리니 널찍한 잔디 그라운드가 펼쳐졌다.

해가 다 넘어갔는데도 그라운드에는 공을 던지고 받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정작 불이 들어온 쪽은 그라운드 뒤편 시내였다. 상점 간판과 가로등이 하나씩 들어오는 동안 그라운드만 점점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공이 보일 때까지 계속 던졌다. 내 앞쪽 성벽 모서리에는 돌로 만든 초소가 하나 붙어 있었다. 네덜란드가 보초를 세우던 자리에 앉아 크리켓을 구경하는 저녁이었다.

흐린 하늘 아래 시계탑이 유독 늠름해 보였다. 이 탑도 영국이 성을 넘겨받은 뒤에 생긴 것이다. 콜롬보가 함락되고 일주일 만에 영국이 이 요새를 접수했고, 이후 성벽 남서쪽 보루에 등대를 세우고 여기저기 시계탑과 새 문을 냈다. 지금 갈레를 걷다 마주치는 시계탑은 그 무렵 흔적이다.
18시 51분, 어두워진 돌계단 통로에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셀카를 몇 장 남겼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대부분을 그렇게 붙어 다녔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헤어지기 전에 멜리사가 작은 코끼리 열쇠고리를 하나 건넸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열쇠고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그날 하루 서로의 사진을 참 많이 찍어줬다.
불이 나간 밤
숙소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이 캄캄해졌다. 정전이었다.

접시 두 개를 꺼내 촛농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그 위에 초를 세웠다. 다섯 자루면 책 표지 글자가 겨우 읽힐 정도였다. 뒤로 라이온 맥주 두 병이 서 있다. 갈레에서 마신 진저비어와 같은 나라 술인데 그날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이렇게 갈렸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낮에 걸은 성벽도 350년 넘게 이런 어둠 속에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름 하나가 흐려진 자리에 남은 것
10여 년이 지나 이 여행 사진을 다시 정리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콜롬보 숙소 침대 위, 연락처가 적힌 수첩과 식당 이름을 손으로 그린 냅킨 약도가 찍힌 사진이었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간 사진인 줄 알았다. 다시 보니 그건 멜리사가 갈레에서 만나기 전에 이미 건네준 것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기억하는 "멜리사"라는 이름이 정확한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래 지난 기억은 그렇게 뭉개져 있었다. 이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 여행에서 받은 코끼리 열쇠고리 하나는, 이름보다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갈레 요새 둘러보기
갈레 포트는 1588년 포르투갈이 처음 흙과 목책으로 쌓았고, 1649년부터 네덜란드가 산호암과 화강암으로 마을 둘레 전체를 감싸는 석조 성벽으로 다시 지었다. 요새가 감싼 면적은 52헥타르, 성벽을 따라 보루가 14개 앉아 있다.

보루에는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다. 해·달·별(Sun·Moon·Star)로 시작해서 넵튠·트리톤·아우로라 같은 신들의 이름이 이어지고, 아케르슬로트·클리펜뷔르흐·위트레흐트처럼 네덜란드 지명을 딴 것이 섞인다. 안내판 오른쪽에는 성벽 안 주요 건물 서른한 곳도 번호로 정리돼 있다. 이 목록이 곧 요새의 이력서다. 1589년 포르투갈이 쌓은 검은요새(Black Fort) 자리에는 지금 경찰 지휘부가 들어 있다. 옛 네덜란드 시신안치소는 영국 군병원을 거쳐 항무관 관사가 됐다. 옛 영국 병원 자리에는 문화재재단 사무실이 들어섰고, 네덜란드 화약고는 영국이 다이너마이트 창고로 썼다. 스리랑카에 처음 심은 빵나무가 있는 자리에도 번호가 하나 붙어 있었다.
성벽 한 바퀴가 몇 킬로미터인지는 안내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2km라는 곳도 있고 3km라는 곳도 있다. 실제로 걸어 보면 거리보다 멈추는 횟수가 시간을 잡아먹는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바다를 내려다보다 보면 한 시간 반은 잡는 게 편하다.

산책로 왼쪽으로 흰 첨탑이 솟은 건물이 나온다. 미라 모스크다. 안내판에는 1902년으로 적혀 있다. 네덜란드가 쌓은 요새 한복판에 이슬람 사원이 서 있고, 그 주변으로 불교 사원과 개신교 교회가 걸어서 몇 분 거리에 흩어져 있다. 무역항으로 수백 년을 굴러간 마을의 이력이 건물로 그대로 남았다.
길 끝에 선 흰 등대는 생각보다 최근 것이다. 1848년 영국이 남서쪽 위트레흐트 보루에 24m짜리 철제 등대를 세웠고, 그 등대는 1936년 화재로 무너졌다. 지금 서 있는 26.5m 콘크리트 등대는 1939년에 원래 자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새로 지은 것이다. 성벽 사진에 흔히 나오는 그 흰 탑은 네덜란드 것도 아니고 초기 영국 것도 아니다.
이 성벽과 마을은 2004년 인도양 대지진 쓰나미도 견뎌냈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성벽 산책은 지금도 무료고, 안쪽 박물관 몇 곳만 500~1000루피 정도 입장료를 받는다.
갈레 가는 법
콜롬보에서 갈레까지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콜롬보-마타라 남부고속도로를 타면 한 시간이면 닿는다. 해안을 따라 도는 일반국도(A2)는 세 시간 안팎 걸린다. 창밖으로 바다가 계속 붙어 있어 지루하지 않다. 고속도로 구간과 요금소 정보는 스리랑카 도로개발청(RDA)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차를 타면 콜롬보 포트역에서 해안선을 따라 두 시간 반쯤 걸린다. 하루 11편 정도 다니고 첫차는 오전 6시 50분, 막차는 저녁 7시 30분쯤 출발한다.
갈레를 지나는 해안 열차의 창밖. 콜롬보와 미리사를 잇는 그 노선이다
창가 자리에 앉으면 해안선을 거의 내내 옆에 끼고 달린다. 갈레는 이 노선의 중간에 있다. 미리사처럼 더 남쪽에 묵고 있어도 같은 기차로 오갈 수 있다.

버스로 들어오면 요새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에 중앙 버스 정류장이 있다. 스리랑카 공공 간판에는 신할라어·타밀어·영어가 나란히 붙는다. 이 건물 정면에 크게 박힌 건 타밀어 쪽이다. 정류장 앞으로 툭툭이 줄지어 서 있어서 짐이 있으면 잡아타도 되고, 가벼우면 걸어도 된다. 시외버스 시각표는 국가교통위원회(NTC) 공식 시간표에 노선별로 정리돼 있으니, 고속버스와 일반버스 소요시간 차이를 출발 전에 구분해서 확인하면 좋다.
다녀와서
강화도를 닮은 성벽마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계획 없이 흘러간 하루가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밥 한 그릇 나눠준 가족, 목적지가 비슷해 하루 종일 붙어 다닌 멜리사, 파도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 해가 다 진 뒤에도 공을 던지던 사람들까지, 뜻밖의 장면들이 자꾸 겹쳤다. 이름 하나 흐릿해진 지금도 그날의 동행은 여전히 또렷하다. 다음에 다시 간다면 성벽 위에서 노을이 완전히 질 때까지 눌러앉아 있고 싶다. 갈레는 그렇게, 다시 오고 싶은 이유를 하나 남기고 떠난 도시가 됐다.
다음 편은 스리랑카에서의 마지막 날, 예약한 비행기를 놓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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