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에스테르곰, 동행 여행에서 배운 말 한마디의 힘
배낭여행에서 즉흥 동행은 흔한 일이다. 숙소 라운지에서 "내일 뭐 할 거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다음 날 아침 같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그랬다. 며칠 전 밤에 조각피자를 먹다가 알게 된 대만 친구 앤디, 그리고 앤디와 같이 다니던 쉐리. 이 둘이 국경 마을 에스테르곰에 간다고 했고, 나는 별 고민 없이 따라붙었다.
나는 원래 그런 편이다. 여행 스타일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걸 좋아한다. 혼자 짜면 절대 안 넣을 코스가 그렇게 생기고, 그게 대체로 남는다. 세체니 온천도 그래서 갔고, 에스테르곰도 그래서 갔다. 다만 이날은 그 습관이 처음으로 나를 물었다.
동행과 미리 정해두면 좋은 것만 궁금하면 여기서 바로 볼 수 있다 — 동행과 미리 정해두면 좋은 것 → · 에스테르곰 기본정보 →. 우선은 그날 하루 이야기부터.
함께 나선 하루, 계획은 없었다
그 도시에 대해 아는 거라곤 "국경 근처"라는 것 하나였다. 버스에 올라탈 때만 해도 그 정보 부족이 하루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몰랐다.
아르파드 히드 터미널에서 800번을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코슈트 라요시 거리에 내렸다. 마을은 조용했다. 차가 안 다녀서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무도 비켜달라고 하지 않았다. 텅 빈 거리에 성당 첨탑만 우뚝 서 있었다.

같이 온 두 사람에게 오늘 하루가 어떤 그림인지는 묻지 않았다. 같은 버스를 탔으니 같은 하루를 보낼 거라고 그냥 생각했을 뿐이다. 돌아보면 그 생각 하나가 이날의 진짜 변수였다.
벤치에서 보낸 한 시간
언덕 위 성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두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잡고 앉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 이야기, 대만 이야기, 그다음 갈 데 이야기. 나는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같이 왔으니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분 정도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 30분이 한 시간을 넘겼다. 사 온 또띠아 칩을 나눠 먹으며 셋이 앉아 있었고, 나는 이 도시에 뭐가 더 있을지 상상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성격 차이라기보다 템포 차이였다. 나는 한 번 오면 다 봐야 한다고 배운 쪽이었다. 비행기든 버스든 돈과 시간을 들여 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계산이 몸에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정반대로 느긋했다.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이미 목적이라는 태도였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차이였는데, 그날 나는 그걸 차이로 보지 못하고 손해로만 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에스테르곰은 즐겁지 않았다. 버스 타고 꽤 멀리 온 근교인데 절반도 못 봤고, 속으로는 슬슬 화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화가 어디로도 못 갔다. 밖으로 낼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나에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다.
노을 앞에서 알아챈 것
그래도 하나는 붙잡았다. 해 지는 건 보고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언덕에서 해가 도나우강 위로 넘어가는 걸 끝까지 봤다. 사진 기록을 보면 8시 12분부터 8시 26분까지 계속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열네 분 동안 서른 장 가까이. 하루가 어긋난 걸 알면서도 이건 놓치지 않으려고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 노을 앞에서 곰곰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행이 쉬고 싶어 할 때, 나는 혼자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떤 하루를 원하는지 서로 묻지도 않은 채 그냥 따라나섰을 뿐이었다. 상대가 무심했던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그 언덕에서야 알아챘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다 괜찮은 줄 안다. 참는다고 배려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그 노을을 보며 배웠다. 그리고 하나 더. 하루가 통째로 어긋났다고 느낄 때도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는 남는다. 그날 내가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이유는 대성당이 아니라 그 열네 분이었다.
국경 강과 놓친 두 가지
에스테르곰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위치다. 도나우강 건너편이 바로 슬로바키아 국경이라, 강을 건너면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

그날 이걸 몰랐던 건 아니다. 강변에서 관광 안내 지도를 한참 봤고, 지도에는 강 건너 슈투로보가 헝가리어 지명 파르카니(Párkány)와 나란히 찍혀 있었다. 여기만 넘으면 다른 나라라는 걸 알면서 안 건넜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국경이 막혀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저기까지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 해서 안 건넜다.
이게 이날의 진짜 손실이다. 몰라서 못 한 것과 알면서 말을 못 해서 못 한 것은 무게가 다르다. 전자는 정보의 문제라 검색으로 해결되고, 후자는 한 문장으로 해결되는데 그 한 문장이 제일 어렵다.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는 500m 남짓이고 도보로 24시간 열려 있다. 왕복 30분이면 됐다.
대성당은 좀 다르다. 언덕과 성곽까지는 올라갔다. 성벽 문에 걸린 종을 보고 사진을 찍었고, 붉은 지붕이 깔린 시내와 강 굽이도 내려다봤다. 다만 성당 안쪽 돔은 안 올랐다. 나선형 계단 400개를 오르면 도시 전체와 강 건너 슬로바키아, 도나우강 굽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그 계단 앞까지 가서 돌아섰다.

덕분에 다음에 이 도시에 다시 온다면 뭘 해야 할지가 아주 또렷해졌다. 다리를 건너보고, 400계단을 올라보는 것. 못 본 게 남았다는 건, 다시 올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행과 미리 정해두면 좋은 것
그날 이후로 동행이 생기면 출발 전에 한 가지만 먼저 물어본다. "오늘은 쉬는 날이야, 둘러보는 날이야?" 이 한 문장이면 그날의 방향이 갈리는 걸 미리 알 수 있다.
중간에 갈라져도 괜찮다는 것도 그날 배웠다. "나 먼저 보고 올게, 몇 시에 여기서 만나자." 이 말 한마디는 무례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편하게 해준다. 배낭여행에서 동행은 하루 이틀 붙는 관계라 서로의 여행 스타일까지 다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먼저 물어보고, 필요하면 먼저 말하는 쪽이 결국 더 좋은 동행을 만든다.
에스테르곰 기본정보
에스테르곰은 부다페스트에서 버스나 기차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헝가리 북쪽 국경 도시다. 도나우강 건너편이 슬로바키아 슈투로보(Štúrovo)이고, 둘을 잇는 마리아 발레리아 다리는 도보로도 건널 수 있다. 마을 중심의 에스테르곰 대성당은 높이 약 100미터로 헝가리에서 가장 큰 성당이며, 400개 계단을 오르면 돔 전망대에서 시내와 국경, 도나우강 굽이까지 내려다보인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풀렸다
여기서 하루가 끝났으면 이 글은 그냥 실패담이었을 것이다.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잡아탔다. 셋이 나란히 앉아 부다페스트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했고, 도착해서는 같이 밥을 먹었다. 그 두 시간 사이에 낮의 불편이 거의 다 빠졌다. 화가 났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것도 아니고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같이 앉아서 시간을 더 보냈더니 풀렸다.
배낭여행 동행은 대개 하루 이틀 붙는 관계다. 그래서 어긋난 하루를 그날 안에 회복할 기회가 딱 한 번밖에 없다. 돌아오는 길이 그 기회다. 그날 내가 버스에서 입을 닫고 있었다면, 앤디와 쉐리는 그저 "속도가 안 맞았던 대만 애들"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다녀와서
그날 배운 건 간단했다. 동행이 별로였던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뒤로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하루하루가 한결 편해졌다.
증거를 하나 대면, 앤디와는 지금까지 연락한다. 오래 지났고 그 사이 사는 나라도 하는 일도 다 바뀌었는데 아직 서로 소식을 안다. 올해 대만에 갔을 때는 만나기로 약속까지 해뒀는데, 정작 앤디가 다른 데 가 있어서 못 만났다. 11년 만의 재회를 그렇게 한 번 더 미뤘다. 에스테르곰에서 서로의 템포가 안 맞았던 사람과 아직 약속을 잡고 있다는 게, 그날의 결론으로는 제일 정확한 것 같다.
말 한마디의 힘을 알려준 도시라, 에스테르곰은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이번엔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고, 같이 갈 사람에게 아침에 먼저 물어볼 것이다.
다음 편은 부다페스트 물가가 그때와 지금 얼마나 달라졌는지 영수증으로 직접 비교해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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