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 소피아 3] 소피아 펍크롤 중간에 빠져나온 이유

소피아 여행기 · 3편
몇 정거장 옮겼을 뿐인데
만나는 사람이 통째로 바뀌었다.
같은 도시에서
두 개의 밤을 보낸 셈이었다.

소피아에서는 이틀을 묵으면서 숙소를 한 번 옮겼다.

벽에 그림이 걸린 호스텔

호스텔 도미토리 벽에 걸린 큰 유화와 낡은 타자기
첫 숙소 — 도미토리 벽에 유화가 걸려 있었다

첫 숙소는 미술관 비슷한 곳이었다.

도미토리 벽에 커다란 유화가 걸려 있고, 창가에는 쓰지도 않는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책장에는 불가리아어 책이 꽂혀 있어서 아무도 안 꺼내 봤다.

안뜰이 특히 좋았다.

담쟁이가 벽을 다 덮은 작은 정원에 나무 테이블 몇 개를 놓아뒀는데,

낮에는 여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 시간이 갔다.

투어를 두 개 돌고 온 오후에 여기 앉아 다리를 뻗었을 때, 이 도시에 하루 더 있어도 되겠다 싶었다.

카운터 선반에는 라벨이 낡은 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직원이 하나 꺼내주며 이건 불가리아 거라고 했다.

값은 한국 편의점 맥주보다 확실히 쌌다.

직원이 꺼내준 불가리아 맥주 한 병
직원이 꺼내준 건 이 병이었다

조용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각자 책을 보거나 노트북을 두드렸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하루 종일 투어에서 사람들 틈에 있다가 들어오면 이 조용함이 반가웠다.

아트 호스텔
Art Hostel / Арт Хостел
📍  ул. Ангел Кънчев 21А, 1000 Sofia, Bulgaria
🕘  리셉션 24시간
💶  도미토리 1박 15유로 안팎
  도미토리 벽에 유화가 걸려 있고 창가에 낡은 타자기가 놓인 숙소. 담쟁이가 덮인 안뜰 정원이 이 집의 핵심이다. 저녁 프로그램이 없어 조용하다
ℹ️  예약 사이트에 지금도 올라와 있다

두 번째 숙소는 성격이 정반대였다

가로등 하나만 켜진 소피아 밤 골목
가로등이 하나뿐인데 무섭지 않았다

다음 밤은 다른 호스텔이었다.

소피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곳인데,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계속 웃음소리가 났다.

해가 지고도 한참 동안 하늘이 파랬다.

위도가 높아서 여름 밤이 늦게 오는데, 그 파란 하늘 아래로 전차가 지나가는 대로가 예뻤다.

골목에는 가로등이 하나뿐이라 어두웠는데도 무섭지 않았다.

전차 궤도가 깔린 소피아의 밤 대로
해가 지고도 한참 파랬던 소피아의 밤 대로

같은 도시에 같은 가격인데 두 곳 분위기가 이렇게 달랐다.

나는 이틀을 반씩 나눠 써서 좋았다.

아홉 시에 공원 앞으로

호스텔 앞 계단에 모여 앉은 사람들
문 앞에 다들 모여 있었다

컵받침 하나에 그날 밤 일정이 다 적혀 있었다. 아홉 시, 어느 공원 앞. 그게 안내의 전부였다.

지도 위에 놓인 바 투어 안내 컵받침
받은 건 이 컵받침 한 장

예약도 명단도 없다. 시간 맞춰 가면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고, 가이드가 인원을 대충 세고 출발한다.

그날 몇 명이었는지 세보지도 않았는데 스무 명은 훌쩍 넘었던 것 같다.

국적을 물어보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바를 하나 마시고 다음 바로 옮기는 방식이라, 이동하는 동안 옆에 걷는 사람이 계속 바뀐다.

이름을 세 번쯤 물어보고 세 번 다 까먹었다.

나중엔 서로 그걸로 웃었다.

두 번째 바에서 이미 알았다

붉은 조명 아래에서 친구들과 남긴 사진
두 번째 바 — 붉은 조명 아래에서

붉은 조명이 켜진 두 번째 바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다들 잔을 들고 웃고 있는데, 나는 그때 이미 다음 바로 갈 체력이 남아 있는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내가 술을 못 마신다는 걸 이날 확실히 알았다.

한 잔 반쯤에서 이미 얼굴이 붉어졌고, 음악이 커질수록 대화가 줄었다.

소리를 질러가며 하는 얘기는 다음 날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재미가 없진 않았는데 계속 있을 이유를 못 찾았다.

늦은 시각 바 카운터에 기대선 사람들
늦은 시각의 바 카운터

카운터에 기대서 사람 구경을 좀 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계속 그러고 있을 거면 굳이 이 자리일 필요는 없었다.

자정을 넘기고 혼자 빠져나왔다

차가 끊긴 새벽 소피아 도로
차가 끊긴 새벽 도로

세 번째 바로 넘어가는 길에 슬쩍 무리에서 떨어졌다.

배도 고팠고 조용한 데로 가고 싶기도 했다.

차가 끊긴 도로가 넓어 보였다.

문 연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걸어가며 먹었다.

이 여행을 하며 혼자 밤길을 걷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말이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한국말을 했다.

그 무리에 끼어 앉았다.

새벽 세 시 반의 라운지

새벽까지 라운지에 남아 있던 친구들
새벽 세 시 반까지 남아 있던 친구들

숙소로 돌아온 게 두 시쯤이었는데 라운지에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독일에서 온 커플, 나와 동갑인 한국 친구,

그리고 같은 방을 쓰던 친구 둘. 다섯 명이 소파에 널브러져 세 시간 가까이 얘기했다.

무슨 얘기였는지 다 기억나진 않는데 즐거웠다.

새벽 세 시 반쯤 누군가 지도를 폈다.

다음에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는데 나는 답이 없었다.

아테네와 로마 사이를 고민하다가 다음 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정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니까, 가자 로마로.

펍크롤을 신청할 때 상상한 밤과는 달랐다.

소피아에서 제일 좋았던 새벽이었다.

호스텔 고르는 기준

소피아는 배낭여행자 인프라가 좋은 편이고 가격도 유럽에서 가장 낮은 축이다.

도미토리 1박이 여전히 15~20유로 선에서 형성돼 있다.

시설은 거기서 거기다. 갈리는 건 호스텔 성격이다.

  • 파티형 — 자체 바가 있고 저녁마다 무료 투어·펍크롤을 돌린다. 사람을 빨리 사귀고 싶으면 여기가 빠르다. 대신 새벽까지 시끄럽다.
  • 조용한 형 — 안뜰이나 라운지가 있고 저녁 프로그램이 없다. 며칠 눌러앉아 쉬거나 일정을 짜기 좋다.
낮의 소피아 거리와 걸어가는 사람들
낮에는 이런 거리였다

이틀 이상 묵는다면 나처럼 반반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같은 도시를 두 번 다르게 겪는다.

짐 옮기는 수고는 있지만 소피아는 도심이 좁아서 이동이 부담스럽지 않다.

지하철 세르디카역 반경 도보 10분 안에 주요 호스텔이 몰려 있다.

자정 넘어 걸어 들어와야 할 일이 생기니 역에서 가까운 쪽이 낫다.

세르디카 유적
Ancient Serdica / Антична Сердика
📍  Nezavisimost Sq., 1000 Sofia, Bulgaria
💶  무료
  지하철 세르디카역 공사 중에 나온 로마 시대 도로와 건물터를 그대로 두고 그 위를 유리로 덮었다. 역을 오가면서 발밑으로 유적을 내려다보게 된다. 호스텔 대부분이 이 역 반경 10분 안에 있다
ℹ️  지금도 지하철 통로와 광장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펍크롤 참여법

호스텔이 직접 운영하는 펍 크롤은 대개 투숙객이 아니어도 참가할 수 있다. 예약 없이 집합 장소로 가면 된다.

  • 시작은 보통 밤 9시 전후, 끝은 새벽 2~3시.
  • 참가비를 따로 받거나, 무료 대신 첫 잔을 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 바 서너 곳을 옮겨 다니고, 마지막은 클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중간에 빠져도 된다. 명단을 관리하지 않아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걸 몰라서 끝까지 버티면 다음 날 일정이 통째로 날아간다.

술을 즐기지 않아도 앞 한두 곳까지는 갈 만하다.

얘기는 옮겨 다니는 길에서 한다.

바 안은 음악이 커서 말이 안 통한다.

밤에 움직일 때

지하철은 야간에 배차가 뜸하다.

자정 넘어 움직일 거면 시간표를 미리 본다.

펍크롤이 새벽 2~3시에 끝나니 걸어서 돌아올 거리인지 먼저 확인하는 게 낫다.

기대한 밤과 좋았던 밤

기대한 밤과 실제로 좋았던 밤이 달랐다.

시끄러운 자리에서 여러 명을 만나는 건 나랑 안 맞았다.

조용한 자리에서 몇 명과 오래 얘기하는 게 좋았다.

그 뒤로 숙소를 고를 때 위치와 가격 다음으로 라운지가 있는지를 봤다.

바 투어로 돈 구시가

아침에 일어나서는 새벽에 폈던 그 지도를 다시 봤다.

소피아 · 4편 중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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