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알렉산더 넵스키 대성당과, 도시 이름이 된 교회
무료 도보투어를 따라 걷다가, 가이드가 지나가듯 한 문장을 던졌다. 저 교회 이름이 이 도시 이름이 됐다고. 소피아라는 지명이 사람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걷는 속도가 달라졌다.
바쁘면 실전 정보부터 — 넵스키 대성당 관람하는 법 → · 종교 건축 네 곳 도보 코스 →. 우선은 그날 걸으며 본 것부터 풀어본다.
물이 공짜로 나오는 도시

투어 초반, 가이드가 별것 아닌 것처럼 벽 쪽을 가리켰다. 줄무늬 타일 벽에 수도꼭지가 여러 개 박혀 있고, 그 아래 홈통에는 이끼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커다란 페트병을 들고 와서 줄을 서 있었다.
땅에서 그냥 올라오는 온천수라고 했다. 수돗물이 아니라 광천수인데 값을 안 받는다는 얘기였다. 손을 대보니 미지근했다. 여름 한낮에 미지근한 물이 반가울 리 없는데, 물통을 채워 가는 사람들 표정이 하도 태연해서 나도 한 모금 받아 마셨다. 쇠 맛이 살짝 돌았다.
여행하면서 물값이 은근히 아까웠던 참이라 이 장면이 오래 남았다. 도시가 가진 걸 그냥 내놓는 방식이 있구나 싶었다.
대통령궁 마당에서 근위병 교대를 봤다
조금 더 걸으니 노란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싼 구역이 나왔다. 한쪽이 대통령궁이었다. 정문 양옆에 근위병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정각이 되자 안쪽에서 교대 인원이 걸어 나왔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반원을 그리며 모였다.

의장대치고는 규모가 작았다. 그래서 오히려 잘 보였다. 발을 맞춰 도는 동작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거리에서 벌어졌고, 끝나고 나니 광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관광지라기보다 사무실 앞 마당 같은 분위기였다.

건물 하나가 도시보다 오래됐다

대통령궁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푹 꺼졌다. 현대식 건물들에 사방이 막힌 안뜰인데, 그 한가운데에 붉은 벽돌 원통 하나가 서 있었다. 성 게오르기 원형교회였다.
바닥 높이가 주변 도로보다 몇 미터 아래였다. 그러니까 이 건물이 서 있던 지면 위로 도시가 계속 쌓여 올라갔다는 뜻이다. 4세기에 지어졌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숫자가 잘 실감 나지 않았는데, 발밑을 보니 이해가 됐다. 로마 시대 세르디카의 흔적이 이 안뜰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다 다른 색이었다. 굽던 가마가 달랐던 건지 세월이 다르게 앉은 건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붉은색인데 가까이 가면 주황·갈색·잿빛이 뒤섞여 있었다. 사방이 유리 건물인 한복판에 이게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든든했다.

극장 앞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 흰 기둥이 늘어선 국립극장은 도시에서 제일 잘생긴 건물 축에 들었는데, 그 앞을 쓰는 방식은 완전히 동네 공원이었다.

도시 이름이 된 교회

넵스키 대성당 옆에 붉은 벽돌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장식이 거의 없어서 처음엔 창고인 줄 알았다. 성 소피아 교회였다.
이 교회가 도시에 이름을 물려줬다는 얘기였다. 원래 이 도시는 세르디카로 불렸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성 소피아 쪽"이라고 부르다가 그게 굳었다고 했다.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이다. 광장에 서 있던 황금 여신상 이름이 왜 소피아인지도 그제야 이어졌다.

바로 옆 넵스키는 금빛에 돔이 여러 개고, 이쪽은 벽돌 말고 아무것도 없다. 화려한 쪽이 유명해지고 수수한 쪽이 이름을 남겼다는 게 재미있었다. 회랑 기둥 아래는 그늘이 짙어서 한참 서 있었다.
금빛 안에서는 소리가 줄어든다

그리고 넵스키 대성당이다.
돔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가운데 큰 돔은 금색이고 나머지는 산화된 구리 특유의 초록색인데, 하늘이 흐린 날엔 이 조합이 묘하게 무거워 보인다. 이날이 딱 그랬다. 광장 반대편까지 물러나야 전체가 겨우 프레임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 나던 소리가 뚝 끊겼다. 정교회 성당은 의자를 두지 않아서 바닥이 통째로 비어 있는데, 그 빈 공간이 소리를 다 먹어버리는 것 같았다. 사람이 꽤 있었는데도 발소리 말고는 들리는 게 없었다.

정면에는 성화가 빼곡히 박힌 칸막이가 벽처럼 서 있었다. 이코노스타시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금색이 워낙 많아서 처음엔 번쩍인다는 인상뿐이었는데, 눈이 어둠에 익자 성화 하나하나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쪽 상들리에에서 내려오는 빛이 약해서,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의 차이가 유난히 컸다.
바닥은 검은색과 흰색 대리석을 번갈아 깐 체크무늬였다. 고개를 들면 성화, 내리면 체크무늬. 이 두 개만 번갈아 보다가 시간이 꽤 지났다.

사진 촬영에는 따로 허가증이 필요했다. 입구 데스크에서 표를 사면 그때부터 찍을 수 있는 방식이다. 아무 데서나 셔터를 누르지 못하니 오히려 한 컷을 더 오래 고민하게 됐다.
350미터 안에 네 종교가 있다

투어 후반에 들은 얘기 중 제일 놀란 건 이거였다. 소피아 도심 한 구역 안에 정교회 성당, 이슬람 사원, 유대교 회당, 가톨릭 성당이 전부 모여 있다는 것.
지도를 펴놓고 보면 반경 350미터 정도다. 걸어서 5분이면 네 곳을 다 지난다. 사람들은 이 일대를 관용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길가 나무에 붉고 흰 실 장식이 잔뜩 매달려 있는 것도 그날 봤다. 마르테니차라고, 봄이 오면 서로 손목에 묶어줬다가 꽃이 핀 나무에 걸어두는 풍습이라고 했다. 종교가 넷이나 겹쳐 있는 도시에서 정작 제일 눈에 띈 건 이런 오래된 민간 풍습이었다.
넵스키 대성당 관람하는 법
본당은 입장료가 없다.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열려 있고, 쉬는 요일도 없다. 다만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입구에서 촬영 허가증을 따로 사야 한다. 10레바 선이다.
지하에는 이콘 박물관이 별도로 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정교회 성화 컬렉션인데, 본당과 운영 시간이 다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이고 매표는 5시 30분에 마감한다. 월요일과 불가리아 공휴일, 성탄절·신정·부활절에는 문을 닫는다. 입장료는 10레바다.
정교회 예배 공간이라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이 기본이다. 여름에 반바지 차림으로 갔다면 얇은 겉옷을 하나 챙기는 편이 마음 편하다.
불가리아는 2026년 1월부터 유로를 쓴다. 레바로 표시된 요금은 유로로 환산해서 안내되고 있으니 현장 표기를 확인하면 된다.
종교 건축 네 곳 도보 코스
관용의 광장을 도는 순서는 이렇게 잡으면 동선이 안 꼬인다.
| 순서 | 장소 | 메모 |
|---|---|---|
| 1 | 스베타 네델랴 교회 | 정교회. 세르디카 지하철역 바로 앞 |
| 2 | 바냐 바시 모스크 | 광천수 급수대와 붙어 있다 |
| 3 | 소피아 시나고그 | 모스크에서 서쪽으로 150미터 |
| 4 | 성 요셉 대성당 | 가톨릭. 위 셋에서 조금 북쪽 |
네 곳 다 지금도 실제로 예배가 열리는 곳이다. 관광지로 박제된 게 아니라서, 시간대를 잘못 맞추면 안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오전 이른 시간이나 늦은 오후가 무난하다.
여기에 성 게오르기 원형교회와 성 소피아 교회, 넵스키 대성당까지 붙이면 반나절 코스가 된다. 전부 걸어서 이동 가능한 거리라 교통편을 따로 신경 쓸 일은 없다.
다녀와서
같은 하루 안에 4세기 벽돌 건물과 금빛 돔을 둘 다 봤다. 도시가 얇게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는 걸 발로 확인한 날이었다.
무엇보다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니 도시가 다르게 읽혔다. 광장의 황금 여신상도, 지하철역 이름도, 골목 간판도 전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었다. 지혜라는 뜻을 가진 도시라니, 다시 가면 그 이름을 한 번 더 곱씹으며 걸을 것 같다.
다음 편은 그날 밤이다. 호스텔에서 시작한 바 투어를 따라나섰다가 새벽까지 남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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