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헬싱키 3] 헬싱키에서 포리까지 버스 10유로, 초대받은 집엔 아무도 없었다
핀란드 사람이 아니었다.
초대받은 집 앞까지 갔다.
헬싱키에서 240킬로미터 떨어진 포리까지 버스로 갔다. 요금은 10유로였다.
포리에 가겠다고 하니 한 한국인이 말렸다.
처음 본 외국인 집에 찾아가는 건 무례한 짓이라고 했다. 그 말은 틀렸다.
공짜 그래놀라 두 봉지로 시작한 아침

떠나는 날 아침, 캄피 옆 광장에 흰 텐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가죽 소품과 나무 장식, 오래된 도구들이 천 위에 늘어놓인 벼룩시장이었다.
구경하며 지나가는데 한 부스에서 봉지를 내밀었다.

무료 샘플이라고 적혀 있었다.
두 봉지를 받아 배낭에 넣었다.
물가가 무섭던 나라에서 공짜로 받은 아침거리 두 개는 생각보다 기분을 크게 바꿨다.
이날 하루 식비 계획이 이 두 봉지로 절반은 해결됐다.
빵 사이에 죽 같은 밥이 들어 있었다

버스를 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진열장에 전복처럼 생긴 타원형 빵이 트레이째 쌓여 있었다.
처음 보는 모양이라 하나 집었다.
여섯 개 한 트레이가 1.29유로였다.
이게 카렐리야 파이(karjalanpiirakka)다.
호밀 반죽을 얇게 밀어 배 모양으로 빚고, 그 안에 쌀죽을 채워 굽는다.
핀란드 동부 카렐리야 지방에서 온 음식인데 지금은 전국 어느 마트에서나 판다.
원래는 보리를 채웠다.
쌀로 바뀐 건 나중 일이다.
위에는 삶은 달걀을 버터에 으깬 무나보이(munavoi)를 얹어 먹는 게 정석이다.
Visit Finland의 핀란드 음식 안내에도 대표 간식으로 올라 있다.
그때는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먹었다.
빵 사이에 누가 죽 같은 밥을 넣어놨다고 생각했다.
맛은 딱 밥빵 맛이었다.
짜지도 달지도 않고, 호밀 껍질만 조금 거칠었다.
핀란드 사람들이 이걸 왜 매일 먹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 밥과 빵을 한 번에 해결하면서 값이 개당 200원대다.

요거트에도 앵그리버드가 있었다.
0.39유로. 게임 하나가 나라의 마트 진열대까지 점령한 걸 눈으로 보는 기분이 묘했다.
순록과 산타와 무민이 사는 나라에 새 캐릭터가 하나 더 얹힌 셈이다.
이 진열대 앞에서 유독 오래 서 있었다.
버스 한 대에 10유로, 240킬로미터

헬싱키 시내 교통이 5유로였다.
그런데 거기서 5유로만 더하면 240킬로미터 떨어진 서쪽 해안 도시까지 갔다.
시내버스 두 번 값으로 도시를 옮기는 셈이었다.
핀란드는 장거리 버스 경쟁이 심해서 요금이 이렇게까지 내려간다.
내가 탄 온니부스는 2층 버스로 주요 도시를 잇는 저가 노선인데, 차체에 "1유로부터"라고 큼직하게 붙여놓고 다닌다.
예약 수수료는 1센트다.
온니부스 공식 사이트를 보면 일찍 예약할수록 값이 내려간다.
그건 지금도 같다. 헬싱키에서 탐페레, 투르쿠, 오울루, 포리까지 노선이 깔려 있다.

좌석 아래에 콘센트가 있었다. 와이파이도 됐다.
90일 동안 버스를 수십 번 탔지만 충전과 인터넷을 동시에 되는 차는 흔치 않았다.
그때 한국 고속버스에는 없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을 보냈다.
노트북을 펼치고 아침에 받은 그래놀라를 꺼냈다.
마트에서 산 복숭아 아이스티는 옆에 뒀다.
이동하는 시간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게 이 나라 버스의 진짜 값어치였다.
창밖은 내내 자작나무였다

세 시간 동안 창밖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물과 나무, 다시 물과 나무였다.
하얀 줄기가 유독 눈에 들어와서 계속 쳐다봤는데, 그게 자작나무였다.
껍질 추출물로 자일리톨을 만든다는 그 나무다.
핀란드 껌이 왜 자일리톨을 앞세우는지가 창밖에 그대로 있었다.
중간에 마을을 몇 번 지났다.
집은 띄엄띄엄 서 있고 들판은 넓고 사람은 없었다.
지도를 켜보면 이 나라가 왜 물반 나무반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다.
포리에 내렸다

오후에 포리에 내렸다.
터미널 앞 광장에 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로 사람 몇이 지나가는 게 전부였다.
헬싱키가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도시는 차원이 달랐다. 소리가 아예 없었다.
주소는 손에 있었다. 마중은 없었다. 애초에 몇 시에 도착할지 정확히 말해둔 것도 아니었다.
문 앞에 아무도 없었다

주소를 따라 걸었다. 붉은 목조 주택이 낮게 이어지는 동네였다.
노란 목조 건물과 넓은 풀밭을 지나고, 철도 건널목을 하나 건넜다.
집은 제대로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한 시간쯤 그 동네를 돌았다.
배낭을 멘 동양인 하나가 남의 집 앞을 오갔다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옆집 사람이 나왔다.
사정을 말하니 대신 메시지를 남겨주겠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나를 설명해줬다.

아까 산 파이를 그때 꺼냈다.
치즈볼 과자도 한 봉지 뜯었다.
남의 집 앞에서 밥빵을 씹으면서 기다리는 게 이 여행에서 제일 우스운 장면이었다.

그러고도 웃고 있었다.
사진을 다시 보면 그날 내가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게 보인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정도의 상태였다.
두 번째로 그 문 앞에 갔을 때 문이 열렸다.
포리 가는 실전 정보
헬싱키에서 포리는 육로로 약 240킬로미터, 버스로 세 시간 안팎이다.
기차는 탐페레에서 갈아타야 해서 버스가 더 단순하다.
저가 버스는 예약 시점에 따라 요금이 크게 갈린다.
나는 10유로를 냈다.
터미널이 시내 중심이라 내려서 바로 걸었다.
포리는 걸어서 웬만한 곳에 닿는 크기다.
여름에 가면 서쪽으로 위테리 해변이 붙어 있다.
모래언덕이 길게 이어지는 곳인데, 시내에서 버스나 차로 20분 남짓이다.
포리 관광 정보는 Visit Pori에 정리돼 있다.
말린 사람은 핀란드 사람이 아니었다
가지 말라고 말린 사람은 핀란드 사람이 아니었다.
낯선 집에 찾아가는 게 무례하다고 판단한 것도, 그걸 굳이 처음 본 여행자에게 말해준 것도 같은 나라 사람이었다.
정작 그 집 사람들은 아무 조건도 걸지 않았고, 옆집 사람은 이름도 모르는 나를 대신 전해줬다.
문 앞에서 한 시간 기다린 게 이 여행에서 제일 잘한 기다림이었다.
그다음은 그 집에서 보낸 첫 저녁, 사우나부터 배운 이야기였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