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서울 1] 퇴사하고 떠난 90일 세계일주 — 어릴 때 떠나야 하는 이유

세계일주 · 프롤로그
들어가는 길 하나,
나오는 길 하나.
정해둔 건 그게 전부였고
사이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파도에 닿을 것 같았던 스리랑카 해안 철길
창문에 손을 대고 한참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뜬금없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

떠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해외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데 첫 여행을 이렇게 크게 잡아도 되나 싶었다.

그때 대학 때부터 알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해외 여행은 막막함이야. 밖에 나가서 그 막막함을 한번 느껴봐라.

당시에는 그 말이 꽤 인상깊었다.

미리사 해변, 바위섬과 파도
바위섬 하나가 파도를 다 맞고 있었다

나를 찾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건 아니었다.

단지 얼마나 혼자서 잘 버티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보니 다시 돌이켜봤을때

나는 그 막막함보다는

어떤 인생에서 돈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과 생각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여행에 친화적인 사람인지 알 게 되었다.

민박집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의 붉은 기와지붕
아침에 눈뜨면 이 지붕들이 보였다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여러분들에게도 그 마음과 생각을 전달해주고 싶어서

블로그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

인천공항 유리창 너머 활주로에 서 있는 비행기들
이 유리창 너머로 90일이 시작됐다
인천국제공항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CN)
운영 중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공항로 272 (제1여객터미널) · 제2터미널대로 446 (제2여객터미널)
항공사에 따라 터미널이 갈린다 — 대한항공·델타·에어프랑스·KLM은 제2터미널, 나머지는 제1터미널이다. 두 터미널 사이는 무료 셔틀로 15~20분

출발 전에 결제한 항공권은 이게 전부다.

당시 가격 그대로 적어둔다.

구간항공사가격
인천 → 홍콩HK Express125,000원
홍콩 → 쿠알라룸푸르에어아시아67,050원
쿠알라룸푸르 → 콜롬보에어아시아92,438원
콜롬보 → 두바이플라이두바이128,417원
두바이 → 소피아WIZZ87,693원
모스크바 → 인천S7250,000원
인천에서 홍콩, 쿠알라룸푸르, 콜롬보, 두바이를 거쳐 소피아까지 이어지는 항공 노선 지도
여기까지가 계획의 전부였다

한 번에 결제한 게 아니다.

두바이에서 소피아로 넘어가는 편을 먼저 찾아놓고, 홍콩에서 쿠알라룸푸르 가는 편을 그다음에 맞췄다.

노선을 다 이어놓고도 결제를 못 하고 하루를 넘겼다. 지른다 지른다 하면서 창을 닫았다 열었다 했다.

버튼을 누른 건 그다음 날이다.

지도로 펼쳐놓고 보니 적도 근처를 길게 훑는 노선이었다. 보기만 해도 더웠다.

들어가는 길이 50만원, 나오는 길이 25만원.

75만원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내린 뒤부터 모스크바까지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어떻게 갈지 정하지 않았다. 사실 정할 줄도 몰랐다.

어떻게든 가지겠지 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원래 이런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게 그때 드러난 것 같다.

여권 사증란에 붙은 자동출입국심사 등록 스티커
사증란이 아직 하얗다

여권도 그때 처음 만들었다. 사증란이 통째로 비어 있었다. (이게 90일 뒤엔 도장으로 꽉 찬다)

원래는 1년이었다

처음 계획은 1년이 넘는 여행이었다.

줄어든 이유는 돈이다.

일하면서 모아둔 게 있었고 그걸 통째로 쓸 생각이었다.

계산해 보니 1년은 무리였다. 그래서 90일로 잘랐다.

계획적으로 모은 여행 자금이라기보다 그냥 있던 돈을 질렀다. 충동에 가까웠다.

론강이 보이는 리옹 숙소 발코니
이런 발코니에서 여드레를 묵었다

출발일은 친형 결혼식이 끝나는 날에 맞췄다.

형 결혼식을 보고, 그 며칠 뒤에 인천공항으로 갔다.

빠니보틀이 못 된 이유

이 여행에서 겪은 일들은 지금 여행 유튜브에서 보는 것들보다 덜 재미있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으로 국경을 넘었고 남의 집 사우나에 들어갔다.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차 안, 어둠이 내려오고 있다
얻어 탄 차 안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숲에서 블루베리를 따다 파이를 구웠고, 공항에서만 열네 번 잤다. (세어보고 나도 놀랐다)

포리 근교 숲에서 블루베리를 따는 모습
블루베리는 이런 데서 딴다

그런데 영상으로 남길 생각을 아예 못 했다.

여행 유튜브가 장르가 되기 전이었고, 나는 그냥 사진만 찍었다.

남은 건 사진 18,000여 장과 메모뿐이다.

계획표를 들고 간 도시는 하나뿐이었다

블루아워의 빅토리아피크에서 내려다본 홍콩 스카이라인
첫 도시는 여기였다

첫 도시가 홍콩이었는데, 여기만 유별나게 준비를 했다.

몇 시에 어디를 가고 뭘 먹을지를 출발 전에 다 적어뒀다.

금붕어 시장에 도착할 시각까지 정해놨다.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길에서 누가 말을 걸면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그게 무너진 건 말레이시아부터다.

밤에 손에 든 F&N 라이치 주스 캔
밤에 길에서 마신 리치 주스 한 캔

낯선 사람을 따라나서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행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드라섬, 돌로 된 아치 통로 너머로 이어지는 골목
이 문을 지나면 골목이 이어졌다

혹시 떠날까 말까 재고 있다면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혼자 가는 게 무서운 사람.

나도 그랬다.

겁먹은 채로 어떻게 첫 발을 뗐는지, 그 90일이 나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하나씩 적어볼 생각이다.

여기서 출발해 여기로 돌아왔다. 90일 동안 이 점을 떠나 있었다

다음 편은 아직 한국이다.

떠나기 아흐레 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원에 갔던 하루. 그게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가 됐다.

서울 · 2편 중 1편
12
#한국 #한국여행 #한국자유여행 #세계일주 #배낭여행 #세계일주항공권 #장기여행 #퇴사여행 #혼자여행 #첫해외여행 #20대여행 #세계일주비용 #세계여행준비 #한국여행코스 #한국가볼만한곳 #한국배낭여행 #한국여행기 #한국혼자여행 #한국물가 #한국여행경비 #한국여행후기 #한국3박4일 #한국여행일정 #한국여행준비 #한국추천 #한국맛집 #해외여행 #자유여행 #90일세계일주 #세계일주루트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90일간의 세계여행 - 배낭 메고 23개국

[중국 · 홍콩 3] 피크트램 줄 얼마나 길까, 한 시간 서보고 내린 결론

[말레이시아 · 쿠알라룸푸르 3] "팬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갈래?" 말레이시아에서 낯선 사람 차 타고 따라간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