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서울 1] 퇴사하고 떠난 90일 세계일주 — 어릴 때 떠나야 하는 이유
나오는 길 하나.
사이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뜬금없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친구가 던진 말 한마디
떠나기 전에 걱정이 많았다.
해외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데 첫 여행을 이렇게 크게 잡아도 되나 싶었다.
그때 대학 때부터 알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시에는 그 말이 꽤 인상깊었다.

나를 찾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건 아니었다.
단지 얼마나 혼자서 잘 버티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보니 다시 돌이켜봤을때
나는 그 막막함보다는
어떤 인생에서 돈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과 생각
그리고 내가 얼마나 여행에 친화적인 사람인지 알 게 되었다.

이 글을 우연히 읽게 된 여러분들에게도 그 마음과 생각을 전달해주고 싶어서
블로그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

출발 전에 결제한 항공권은 이게 전부다.
당시 가격 그대로 적어둔다.
| 구간 | 항공사 | 가격 |
|---|---|---|
| 인천 → 홍콩 | HK Express | 125,000원 |
| 홍콩 → 쿠알라룸푸르 | 에어아시아 | 67,050원 |
| 쿠알라룸푸르 → 콜롬보 | 에어아시아 | 92,438원 |
| 콜롬보 → 두바이 | 플라이두바이 | 128,417원 |
| 두바이 → 소피아 | WIZZ | 87,693원 |
| 모스크바 → 인천 | S7 | 250,000원 |

한 번에 결제한 게 아니다.
두바이에서 소피아로 넘어가는 편을 먼저 찾아놓고, 홍콩에서 쿠알라룸푸르 가는 편을 그다음에 맞췄다.
노선을 다 이어놓고도 결제를 못 하고 하루를 넘겼다. 지른다 지른다 하면서 창을 닫았다 열었다 했다.
버튼을 누른 건 그다음 날이다.
지도로 펼쳐놓고 보니 적도 근처를 길게 훑는 노선이었다. 보기만 해도 더웠다.
들어가는 길이 50만원, 나오는 길이 25만원.
75만원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내린 뒤부터 모스크바까지가 통째로 비어 있었다.
어떻게 갈지 정하지 않았다. 사실 정할 줄도 몰랐다.
어떻게든 가지겠지 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원래 이런 모험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게 그때 드러난 것 같다.

여권도 그때 처음 만들었다. 사증란이 통째로 비어 있었다. (이게 90일 뒤엔 도장으로 꽉 찬다)
원래는 1년이었다
처음 계획은 1년이 넘는 여행이었다.
줄어든 이유는 돈이다.
일하면서 모아둔 게 있었고 그걸 통째로 쓸 생각이었다.
계산해 보니 1년은 무리였다. 그래서 90일로 잘랐다.
계획적으로 모은 여행 자금이라기보다 그냥 있던 돈을 질렀다. 충동에 가까웠다.

출발일은 친형 결혼식이 끝나는 날에 맞췄다.
형 결혼식을 보고, 그 며칠 뒤에 인천공항으로 갔다.
빠니보틀이 못 된 이유
이 여행에서 겪은 일들은 지금 여행 유튜브에서 보는 것들보다 덜 재미있지 않았다.
히치하이킹으로 국경을 넘었고 남의 집 사우나에 들어갔다.

숲에서 블루베리를 따다 파이를 구웠고, 공항에서만 열네 번 잤다. (세어보고 나도 놀랐다)

그런데 영상으로 남길 생각을 아예 못 했다.
여행 유튜브가 장르가 되기 전이었고, 나는 그냥 사진만 찍었다.
남은 건 사진 18,000여 장과 메모뿐이다.
계획표를 들고 간 도시는 하나뿐이었다

첫 도시가 홍콩이었는데, 여기만 유별나게 준비를 했다.
몇 시에 어디를 가고 뭘 먹을지를 출발 전에 다 적어뒀다.
금붕어 시장에 도착할 시각까지 정해놨다. 겁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홍콩에서는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길에서 누가 말을 걸면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그게 무너진 건 말레이시아부터다.

낯선 사람을 따라나서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여행이 완전히 달라졌다.

혹시 떠날까 말까 재고 있다면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
혼자 가는 게 무서운 사람.
나도 그랬다.
겁먹은 채로 어떻게 첫 발을 뗐는지, 그 90일이 나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하나씩 적어볼 생각이다.
다음 편은 아직 한국이다.
떠나기 아흐레 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동물원에 갔던 하루. 그게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 하루가 됐다.

댓글
댓글 쓰기